가불해온 가을
요즘 날씨를 보면 그늘막도 소용없다.
바람조차 온기를 머금고 있다.
온 대지는 죄다 열받고 있는 중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헉헉거리고 있다.
피할 방법은 실내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트는 일뿐 달리 방도가 없다.
냉탕에 다이빙을 하지 않는 한 모두가 헉헉거릴 수밖에.
여름은 과일도 풍성하고 낮이 길어서 좋다고 했는데,
밖은 지금 아프리카를 흉내 내고 있으니 그 말이 민망하다.
조금만 덜 더우면 정말 여름을 더 이뻐해 줄 텐데 이 무슨 심술 일꼬.
집안의 집기들 조차 만져보면 모두 열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추위는 못 견뎌하고 더위는 덜 타는 사람이라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는다.
조금만 냉기를 쐬어도 목부터 아프기 시작하고 곧바로 감기증세가 나타난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열을 동시에 받고 있다.
`저놈의 주인은 더위도 안 타나 봐.
이렇게 더운 날도 도무지 시원하게 해 줄 생각이 없으니.`
동시다발적으로 화초들이 데모라도 할 것 같다.
모두가 힘든 이 폭발 직전의 여름에 그나마 그림이 나를 잡아주고 있다.
더위를 무마하기 위해 또 가을을 앞당기는 작업을 했다.
가을 하면 파란 하늘과 코스모스다.
호젓한 길가를 다 가로막도록 셀 수 없이 많은 코스모스를 피어냈다.
저 길로 가족들과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이뻐하는 두 손녀와 이런 길을 걸어볼 계획이다.
올 가을엔 이런 길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손가락을 걸고 웃을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리.
그런 날을 위해 오늘도 더위를 여름의 훈장처럼 받아들여야겠다.
세월은 고장이 없으니 곧 가을을 불러다 줄 것이다.
화폭은 계절도 가불 해다 쓸 수 있다.
미리 그려본 코스모스 길에서 8월을 맞고 9월도 맞아보자.
뜨거운 여름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코스모스 길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혹서기에는 그저 더위를 어르고 달래서 같이 놀아보는 수밖에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인체는 체온을 36.5도라는 항상성을 유지한다.
덥다고 냉음료나 냉기와 과도하게 친해지면 우리 몸은 엄청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온도를 유지해 내기 위해 흔들려야 하는 신체의 고통을 알기나 할까.
결국 우리 몸에 철퇴를 가한다.
면역력 약화라는 철퇴.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은 콧물이 아닌 몸이 내놓는 눈물이다.
아무리 더워도 제까짓 여름이 물러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오늘도 여름과 한탕 놀아보자.
놀다 보면 파란 하늘과 코스모스가 우리를 그 현장으로 안내하리라.
단짝. oil on canvas. 30x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