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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47)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끼고 산다

by 김 미 선

청소는 정말 열심히 한다.

청소는 열심히 하지만 왠지 너저분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아무리 치웠어도 뭔가 쌓여있다면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내 오늘은 저 너저분한 것들을 다 치워주마.


주방 구석에 자리 잡은 나무탁자 위에는 건강식품들이 널려있다.

홍삼, 루테인, 오메가 3, 칼슘제. 일일이 열거하긴 너무 꼬리가 길다.

이건 나이 든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공통점일 거다.

자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서너 개씩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고 본다.


선전에 혹하고, 위축되는 자신에게 눌려 그것들은 자꾸만 새끼를 친다.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다 바닥으로 휙휙 쓸어냈다.

그것들을 깔끔하게 치우고 나니 그 밑에 자리한 유리병들이 또 나를 부른다.


여기도 있소.

어! 너네들도?

그래 오늘 너네들도 손을 봐주마.

탁상아래 다섯 개의 매실청 유리병들을 널찍한 곳으로 옮겨놓고,

2020년 산 매실청과 2024년 산 매실청을 한꺼번에 섞어버렸다.

누가 최고참인지 어떤 애가 어린지 따질 것도 없이 청들은 함께 어우러졌다.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겠지만 이미

서로를 껴안고 부르스를 추고 있는 중이다.

그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든지 말든지 시간은 포개졌다.

오래 묵은 것과 덜 묵은 것들의 중화작용은 너네들이 알아서 해.

올해부턴 매실청이고 포도청이고 깡그리 졸업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미 땀을 불렀겠다.

이제는 안방 화장대로 발걸음을 쿵쾅쿵쾅 옮겨놓고 한참을 째려보았다.

너네들도 오늘부로 내 집에서 쫓겨난다.

알았나?

알았다.


스킨로션을 사면 사은품이라는 명목으로 새끼들이 딸려온다.

딸려온 새끼들은 여행을 가거나 멀리 튈 때 주로 쓰게 되지만,

평상시에는 잘 안 쓰게 된다.

오래된 순서대로 퇴출 1순위다.


너도.

너도.

너도.

이별식도 없이 꼬마들은 평화롭던 자리에서 느닷없이 끌려 나왔다.

세상이 어찌 이렇게 야박하단 말인가.

서랍에 있던 오래된 머리띠, 머리핀이 처분대상이 되어 종량제에 담겼다.

화장대와 서랍이 한결 넓어지고 훤해졌다.


화장대 정리로 2차 숙청이 완료되고 이제 3차 숙청으로 들어간다.

거긴 안방화장실 벽장이다.

빈약한 머리카락에 비해 세제는 풍년이다.

추석, 설날 때 명절 선물로 들어온 것들이 자꾸 쌓여서 퇴적암을 이루었다.

그것들은 문을 열 때마다 `낙석주의` `물품주의`를 경고했다.


우선 여행 갈 때 사용했던 것부터 차례대로 던져지기 시작했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낼 것과 둘 것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 지었다.

밖은 쌓이고 안은 줄어들어 훨씬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다리가 달달 달,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다.


20리터 종량제 봉투 2개.

70리터 재활용 봉투 하나가 꽉꽉 채워졌다.

아마 집안을 다 뒤집어엎는다면 서랍 곳곳에 잠자고 있는 물건들이

이보다 훨씬 많겠다는 생각이다.


옷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정리하건만 여전히 장롱 속은 만원 버스다.

아무리 고급진 옷이라도 유행과 맞붙으면 왠지 촌스럽다.

빛깔도 디자인도 근사해 보이는데 어쩐지 나를 더 추레하게 만든다.

옛날 사진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촌스럽다.

그땐 그 옷이 최고의 패션이었건만 지금 보면 `어머 내가 이렇게나 촌스러웠다고?`

쓴맛으로 그때를 되짚는다.


이래서 갖다 버리려고 골라 들고나가다가 " 이거 얼마 안 입은 건데."

다시 들고 들어와 그 자리에 안착시켜 버린다.

입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놈의 욕심이고 애착인지.


요즘에는 중고의류를 수거해 가는 업체도 있다던데, 차라리 모아두었다

처분할까? 그러다가도 얼마나 된다고 하면서 또 미룬다.

이러니 옷들이나 사람마음이나 복닦이긴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 번도 꺼내보지 않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는 것.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누가 선물을 했건 본인이나 가족들이 사들였건 이렇게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끼고 살고 있다.


저것들을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면서도 그보다 더 먼저 처리할 일들로 미뤄진다.

그러다가 결국 에라! 굳이 치우지 않으면 어때로 굳어진다.

잠자던 물품들은 이사를 가야만 처분대상이 되는 거다.

매일 버리고 정리하지 않는 한 쌓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날씨가 좀 더 선선해지면 화분들도 정리할 생각이다.

화초를 좋아하다 보니 쉴 새 없이 화분들을 사들였다.

이곳에 이사 와서 두 차례나 나눔을 했건만 그래도 여전히 많다.

올 더위에 다육이들이 대거 주저앉았다.

이것을 계기로 빈 화분들을 나눠줄 계획이다.


나는, 우리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끼고 산다.

우리가 쓸 물건들은 의외로 단출하다.

그럼에도 세분화되고 고급화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사고 또 산다.

결혼기념일이라고, 생일이라고 은근슬쩍 신제품을 끌어당긴다.

기분이 좋다고 사고 우울하다고 산다.


선물이든 산 것이든 꾸역꾸역 집으로 몰려들어 이래저래 버리긴 아깝고,

결국 골동품 가게로 변질된다.

쓸데없는 포만감은 사람과 물건 모두를 성가시게 한다.


쓰지 않고 묻혀 있는 것들.

환경을 병들게 하고 돈을 멍들게 하는 악순환이다.

빈틈이 많은 집안은 치우지 않아도 깔끔하다.

통장은 살찌고 물건은 훌쭉해야 맞다.


이제는 그 물건이 없으면 내 목숨이 위태해지는 것만 사기로 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은 물건들은 그 수명이 길지 않다.

그것이 진리임을 알았다.

진리는 왜 이렇게 늘 지각생으로 오는 것일까.

참 늦게도 찾아온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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