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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49)

구겨진 마음을 펴는 건

by 김 미 선

나는 밤늦게까지 독서를 할 때가 많다.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어둠이 지배하는 심야에도 내 방엔 불이 켜져 있다.

당연 이튿날은 소금 먹은 배추다.

소금 먹은 배춘건 내 사정이지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밥을 짓는다.

아침밥을 먹여 남편을 내 보내고 집안을 치우는 건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일상이다.


집안을 치우고 나면 유난히 좀 자고 싶은 날이 있다.

한 삼십 분만 이라도.

엊그제도 그랬다.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서 나를 잠 속으로 빠뜨렸다.

얼마 못 가 옆에 있던 핸드폰이 암팡지게 울어댄다.

실눈으로 들여다본 전화번호는 모르는 번호였고 문자로 들어온 내용은 고혼진.

(젠장! 핸드폰이나 멀리 치워둘걸)


고혼진이고 뭐고 달아난 내 잠을 어쩔래.

잠만 잘 자면 고혼진 같은 거 필요 없어.

`잠보다 더 좋은 보약 있대?`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알았지?`


그때부터 잠은 100리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고~ 혼진 인지 고구만 지 참 밉다.

고작 10분도 안 됐는데 깨우는 건 뭐야.

적어도 30분 이상은 재우고 깨우든지 말든지.


상대방은 내가 단잠을 자려고 버둥거렸는지 밥을 먹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나하고 안 맞는 조합인 거다.

왜 하필 그때냐 말이다.

선잠 자다 깬 어린아이처럼 화딱지가 부풀어 오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산책이나 가보자.

늘 속상하거나 답답하거나 뭔가 궁리를 좀 해야 할 때 산책길은 처방길이다.

엘리베이터가 중간층까지 내려갔을 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뿔싸.


그 애는 혼자가 아닌 송아지만 한 누런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동승했다.

정말로 송아지만 한 덩치다.

엘리베이터가 그들먹하다.

개는 흘끗거리며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강아지도 무서워 피해 다니는 겁쟁인데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무슨 지옥행인고.

숨도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섭다.

주인은 여유롭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나는 온몸이 경직 그 자체다.


개와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져 보려고

엘리베이터 구석에 바짝 붙어서 초긴장 상태로 개주인을 쳐다보았다.

`차렷, 그대로 꼼짝 마.`

그건 개와 개 주인이 내게 하는 명령어였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도 그 시간만큼은 고장 난 듯 느리다.

양보하지 말고 제발 얼른 먼저 내려다오.

`먼저 내리세요.` 말하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얼른 내리란 말이다.

심장 떨어지기 전에.


그 앞에선 한 마디도 못하다가 학생이 저만치 사라져 버리자 나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큰 개를 실내에서 키우나.

남의 심장, 간, 다 떨어지게. 참 이상한 집구석이야."

한 마디만 했다간 개가 `컹` 짖기만 해도 `쿵` 실신할 것 같은 위기감 속에서

겨우 해방된 뒤풀이다.


여러 사람이 사는 아파트는 별별 별종들이 다 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는 거다.

어른도 이렇게 무서운데 어린 아기는 또 얼마나 무서울건지.


이렇게 큰 개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하긴 처음이다.

새로 이사를 왔다면 이거 큰일이다.

다음에도 이 개와 마주하지 말란 보장이 없는데 그땐 어쩌지?

참 묘한 고민거리가 또 하나 보태졌다.


견주들이 하는 소리는 매번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물든 안 물든 큰 개 앞에서는 누구나 쫄린다.

개가 이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급박하면 언제든지 물 수 있다.

견주에겐 애완이지만 타인에겐 공포다.

견주는 늘 이런 입장을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겁먹게 해서는 안된다.


구시렁거렸지만 산책길은 언제나 옳다.

파란 하늘 아래 고추잠자리들이 군무를 즐긴다.

귀여운 것들, 무해한 것들, 유순한 것들.

산책길 주변은 늘 부산스럽다.

개미가 줄지어 기어가고 하루살이가 앞길을 막아서고,

어제 못 피었던 들꽃이 청순한 자태를 드러낸다.


부산스럽지만 질서가 있고 온전한 너와 내 차례가 있다.

속상했던 일, 짠했던 일들이 쫑알쫑알 피어나 내 마음에 정화수를 끼얹는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나를 대접하는 시간이다.


산책을 다녀와서 조금은 꿀꿀했던 기분이 사라졌고 저녁상을 차리는 일에도 활기가 붙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문자가 오길 "저녁 안 먹어. 누굴 만나기로 했어."

뭐야.

남아도는 저 고봉밥은 내가 며칠씩 물 말아먹어야 할 헌 밥이 된 거다.


오늘은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날인가.

마음이 죄다 구겨졌다.

구겨진 마음을 펴는 건 그림을 그리는 것.


산책길에서 만난 이쁜 고추잠자리, 걔네들을 화폭으로 불러들이기로 했다.

화구 앞에 앉으면 구겨진 마음도 펴진다.

이래서 취미는 보약이다.

하얀 캔버스가 구름으로 꽃으로 잠자리로 피어나 나를 달래준다.


진짜 내 편은 나뿐이다.

누가 나를 잠시 위로해 줄지라도 그건 금세 사라진다.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할 때 내가 나를 제대로 달래줘야 진정한 보살핌이 된다.

애쓰고 고달픈 하루라도 내가 기댈 곳이 진정으로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건 안온한 하루를 마감 짓는 소박한 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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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것들. oil on canvas.20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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