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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50)

시련이 나를 찾아왔다

by 김 미 선

인생 그게 뭐라니?

인생 그게 도대체 뭐야.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것인지.

조금 더 길게 평화와 안정을 허용하고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것이냐고.


폭풍우가 지나간 뒤끝엔 또 다른 허리케인이 달려온다.

심심하면 그건 인생이 아니라고.

쇼펜하우워가 말했듯이 `권태와 따분함을 몰아내면 다시 처음의

결핍과 고통이 시작된다고.`

좋은 날 보다 궂은날 비 오는 날이 더 많기에 우리네 인생길은 늘 고달프다.


저마다의 인생길을 파보면 겉은 평화, 속은 염증 투성이다.

건강, 경제, 가족 간의 불화, 인간관계 수많은 난제들이 인생길에서

우리를 희롱할 준비를 하고 있다.

뭔가 우리를 할퀴고 있는 요소들이 늘 우리 곁에 상존한다.

그중에서 생사를 가늠하는 건강문제가 가장 골치 아프고 괴롭다.


집안 구성원중에 누군가가 아프다면 그 가족 전체는 전염병처럼 암운이 감돈다.

살다 보면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경증의 병이야 무슨 대수랴.

문제는 생사를 걱정해야 되는 중대한 발병이다.


지난 2월에 남편과 나는 국가검진을 받은 바 있다.

그때 남편은 폐에 작은 결절이 있다는 걸 알았다.

병원 측은 별거 아니니 6개월 후에 재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단다.

결절이 생긴 걸 알았으면 더 자세하게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고하든지,

상급병원을 추천해 주든지 어떤 대책을 세웠어야 옳았다.


혼자만 알고 말하지 않은 잘못도 크다.

그렇다면 가족 누구라도 앞장서 병원을 찾았을 것임에도 왜 그걸 숨기고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 저선량 CT를 찍은 결과 폐암으로 판정받았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아들이 아빠를 모시고 삼성병원으로 다섯 차례

정밀 검진을 받으러 다녔다.

감기만큼이나 흔하다는 암 판정은 그렇게 쉽고도 무력하게 우리를 점령했다.

검사 결과는 참담했다.


폐암은 사망률 1위를 지키고 있는 어려운 암인데 그중에서도

비소세포 암은 그나마 전이도 속도도 늦는데 반해,

소세포암은 급성으로 공격성이 악랄하여 방어세포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악성 종양이다.

남편은 소세포 암으로 여명을 측정할 수 없고 항암과 방사선을 병행하는 것으로

치료를 시작한다는 거였다.


환자 본인은 "사람이 살만 큼 살면 죽는 거지 뭐.

죽을 운명이면 죽는 거지 별수 있어."

이러고 태연을 가장했지만 그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는 걸 나는 안다.

차라리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은 슬픔이 더 무섭다.

남자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그는 쉽게 아프다고 표 내지 못했다.

뚜렷하게 겉으로 나타나지 않아 더 그렇게 참아냈다.


그저께는 둘이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서

남편이 펑펑 우는 거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만 우는 걸 봤는데 그 눈물은 펑크 난 물탱크처럼

굵고도 강렬했다.


흐느끼며 우는 덩치 큰 남자를 보니 가뜩이나 눈물샘 여린 나는

그의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지 마. 울지 마." 둘의 눈물은

통곡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도 겉으론 아무렇지 않았지만 속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누가 들으면 저 집 초상났나 싶게 둘은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함께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랐고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나 싶어 안도했건만,

현실은 이렇게 크나큰 시련을 우리 앞에 던져놓았다.

거의 매일 눈물을 달고 살아선지 위장, 대장 다 탈이나 버린 나도 지금 정상이 아니다.


교통사고가 났어도, 뇌진탕으로 이명과 두통이 그렇게나 극심했어도

놓지 않던 수요일 글줄기를 이제 잠시 내려놓으려 한다.

앞으로 입원과 통원의 고단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나 독하고 힘든 항암과 방사선에 몸을 내맡긴다는 것은 회생을 한다 해도

본래의 건강했던 기력을 되찾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욱신거린다.


우리가 살면서 극명하게 절망감을 느낄 때는 건강이 무너졌을 때다.

집이 무너져도 사업이 망해도 건강하기만 하면 재건할 수 있다.

건강이 망하면 만사가 망하는 거다.

치료를 하면서 심신이 안정되면 다시 찾아와 그동안의 생활을 쏟아내겠다.

글을 쓰면서도 계속 눈물이 솟아 이만 글을 줄여야겠다.


당분간은 가족의 건강을 찾는데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위로해 주시고 기다려주시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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