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살려주세요, 누구든 나 좀 빼주세요, 제발요, 거기 누구 없어요?
한 여인이 애원한다. 불 구덩이 속에서 살려달라고... “저 좀 구해주세요.” 저 바닥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나는 순간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가 너무 작아서 어디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지 바로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찾다 보니 바닥에서부터 나오는 소리였다. 작은 틈. 나무로 된 바닥에 작은 틈이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틈 속에 그 여인이 애원하고 있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 PS1에서 내가 처음 만난 미디어 작품이다.
PS1은 MOMA에서 운영하는 현대 예술작품 중 가장 실험적인 전시를 하는 미술관이다. 미디어 작품의 제목은 “selfless in the bath of lava” 화염이 일어나고 그 속에 작가가 살려달라는 퍼포먼스를 촬영한 영상을 3cm x 3cm 정도 크기의 초소형 스크린에 나타낸 것이다. 이 작품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작은 스크린을 나무 바닥, 그것도 자연스레 생긴 틈 속에 숨겨둔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관의 입구 바닥에 숨겨져 있다. 이 미디어 작품이 ‘PS1:가장 실험적인 현대 미술 전시’라는 미술관의 정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
내가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찾아갔던 미술관이기도 하다. 디자인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달려갔던 곳이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모든 건물은 사람을 위해 디자인이 되고 사람이 편안하게 거주하기 위해 설계된다. 사람 이외의 모든 물건은 부수적으로 머무르거나 필요에 의해 계속 교체된다. 미술관은 작품을 위해 디자인이 된다. 작품이 머물기 위한 공간이다. 사람은 지나가고 흘러간다.
이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나선형 건물로서 전시실이라는 구획된 공간이 없이 나선형 통로가 곧 공간이다.밖의 길에서 입구를 지나 건물에 들어온 사람은 나선형 통로를 따라 계속 걸으며 전시된 작품을 감상한다. 길과 건물의 공간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로 연결된 흐름이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예술의 도시를 느끼며 걷다가 작품을 보고 다시 그 거리로 흘러나온다. 뉴욕이 곧 작품이고 작품이 곧 뉴욕이다. 미술관을 향해 걷는 순간부터 설레는 마음에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생각이 확장되었다. 뉴욕이라는 거리가 주는 창의력의 원천이 미술관으로 연결이 되면 마침내 영감이 분출되어 나왔다.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방문하는 미술관은 감상만을 위한 미술관과 다르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나에게 맞는 보석을 찾는 과정이 된다. 입구 가까이 전시된 작품 중에 그날의 보석을 만날 때도 있고, 꼭대기 층에서 만날 때도 있다. 한 작품, 한 작품 지나가면서 본다. 많은 얘기를 던진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한다. 다양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작품이 있고, 들리는 이야기는 적어도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는 작품도 있다.
나에게 교훈을 주고 내 마음을 흔들었던 많은 작품들 중 기억에 남는 작품 몇 가지가 있다. 작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 (MOMA)에 가면 10점 정도의 로스코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생의 마지막까지의 작품이다. 각 작품마다 당시 로스코가 했던 표현과 글이 함께 전시되어있다. 끊임없이 탐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인가의 감정에 대한 그의 작업들이다. 로스코 자신에 대한 연구이기도 했을 것이다. 작품 속에 나타난 허무함, 공허함, 답을 찾지 못하는 자괴감, 그 모든 무거운 근심과 짐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다.
로스코는 결국 66세에 자살을 선택한다. 초기 작품은 곡선 등 기하학적인 요소와 여러 가지 색의 조화가 나타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와 선은 단순해지고 색도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색만을 사용한다. 단순해지는 작품이 뿜어내는 힘은 더 강해진다. 단 한 가지 색으로 2m x 3m 크기의 텅 빈 캔버스를 채운다고 생각해보자. 물리적으로는 2m x 3m의 캔버스이지만 무(없을 무 한자)의 개념 공간이다. 그곳에 자신의 무한한 이야기와 철학을 담는다. 유한한 공간이 무한하게 되며 무한한 자신의 철학을 유한 하게 표현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단 한 가지 색으로만.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던 과정과 노력, 평생을 바친 시간, 하지만 끝내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지 못한, 찾지 못한 그 마음. 미칠 것 같고, 터질 것 같은 감정을, 갈등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표현한 이 모든 것이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서면 그대로 느껴진다. 내가 그 작품 앞에서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가 언어로 설명을 했다면 이 모든 내용들을 과연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미술 작품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작품 앞에서 몇 번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작가의 고뇌, 처절함, 치열함이 느껴져서, 그리고 이 작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철학과 그 작품을 만들 당시 작가의 감정,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나타난다. 작가와 얼굴을 대면하고 대화하는 것보다 작품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이 위대한 작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내가 작품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아이폰은 전 세계 누구나 아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아이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상징이다. 어떻게 아이폰이 개발되었는지 많은 얘기들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의 원천은 ‘미술작품이었다’ 라고 한다면 의아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기업의 대표로서 아이폰이라는 신제품 개발뿐아니라, 기업의 경영과 사람들 간의 관계, 수많은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매 순간 해결했어야 할 것이다.
단 한순간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순간이 없었을 것이다. 원래 인간의 뇌는 무의식 중에도, 잠을 자는 동안에도 계속 작동을 한다고 한다. 하물며 아이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의 뇌는 얼마나 작동을 하고 있었을까?
모든 사람들의 뇌는 의식 중 무의식 중 풀가동 중이다. 컴퓨터로 비유한다면,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동시에 가동하면서 메모리가 꽉 찬 상태로 사용 중인 것이다. 이렇게 컴퓨터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가 버벅 거리고 느려진다는 것을… 그런 때 최고의 해결책은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것이다. 즉 전원을 껐다 켜서 메모리와 모든 기능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풀가동이 되는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한 번씩 휴가를 떠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지 휴가를 간다고 뇌가 재부팅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뇌도 잠시 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전원이 off 된 이후 다시 on이 되기는 어렵다. 우리 인간의 뇌도 재부팅할 수 있다면, 엄청난 기능 향상이 될 텐데, 과연 인간의 뇌도 재부팅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미술 작품의 진가가 나온다. 우리는 누구나 상상을 하고 무언가 그려보고 창작을 할 수 있다. 미술이나 음악, 운동 등 예능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정말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다 보니 멀어지게 되고, 좋아하지 않게 된 경우일 것이다.즉,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타고난 예술성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미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작품을 감상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남자일 경우, 이성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품을 처음으로 감상할 때, '밤이구나, 별 도보이네 무언가 바람이 부는 듯한 특이한 소용돌이 구름도 있네, 저 멀리 마을도 보이고, 제일 앞에 큰 나무가 있구나, '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바라보면서 감상을 시작하면 된다. 여성의 경우, 감성적으로 본다면 '어두운 밤인데도 푸른색이 참 예쁘다, 고요한 적막감이 흐르면서도 무언가 바람이 부는듯한 모습이 역동적이기도 하고, 노랑 별들이 따뜻하게도 느껴지네.' 이렇게 나에게 맞도록 편하게 작품을 대하면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고,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 항상 맴돌던 기존의 생각들이 off 된다. 항상 진행되던 생각의 주파수가 새로운 영역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주제에 몰입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여전히 뇌는 가동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을 통해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을 위해 작동하던 뇌 하고는 다른 상태가 된다. 명상의 효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던 것으로 유명하다. 소파, 침대, 테이블 등 기본 가구도 없었다고 한다. 본인에게 정말 필요한 최소의 것들만 있었고 그중에 예술 작품들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하고 큰 영향을 받은 작가는 마크 로스코이다. 마크 로스코의 원작 앞에 서면 그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로지 작가와 나 그리고 내면의 나만 존재하게 된다. 이 경험은 예술 작품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렵다. 이러한 작품들이 유일하게 걸려있던 스티브 잡스의 집, 그의 공간. 아무리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가 풀가동된 상태에서도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서는 순간 그의 뇌는 파워 off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재가동된 뇌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이 샘솟았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미술품 투자를 한 이유이자 목적이다. 아이폰에도 녹아있는 불필요한 것을 다 없앤 그의 디자인 철학, 지금의 애플을 만든 원천이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과 맞바꾸겠다
고 한 그의 가치의 척도를 보면 예술 작품을 돈 이상의 가치로 본 것이다. 그 생각과 사고의 깊이가 현재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을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내가 경험한 미술 작품의 힘을 알기에, 현재도 그 힘의 영향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통해 나와 같이 좋은 경험을 하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