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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되셨어요?

by 메타보이


나는 시골 산중턱에서 TeaBar 형태의 다소 독특한 콘셉트의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보통 찻집은 TeaHouse로 표기하는데 내 가게엔 일반적인 좌석 대신 Bar 하나만

존재한다. 처음 오신 손님들은 술집인지 찻집인지 카페인지 다소 혼선이 오는 게 당연하다.

나도 종종 헷갈리니까....;


1층은 한 팀만 받을 수 있는 bar가 있고 2층은 3팀이 이용할 수 있는 좌식룸으로 꾸몄다

좌식룸은 열선을 깔고 페브릭 매트를 설치해 성인이 온전히 이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거나 간단히 요가를 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물론 코 골고 한숨 주무시고 가시는 분들이 더 많지만.


산속에 찻집이 있는 이유는 솔직히 교사를 10년 이상 하다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1인 자영업자의 흔한 실수이다.

지금은 어차피 1000명이 지나가도 1명 들어올까 말까 한 찻집이니

예약 손님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위하고 자위하지만 하루에 2팀 채우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상시 영업은 포기하고 완전 예약제로만 운영을 돌리고

차명상, 보이차수업 그리고 콤부차 원데이클래스로 주중의 시간을 채워 넣는다.


찻집을 만들면서 산속 깊은 곳까지(실제 주소가 깊은실길) 손님을 끌어오는데

필승 전략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하지 않은 곳, 반드시 여기 와야 하는 이유를 손님들에게 만들어야 했다.


첫 번째 전략은 2층의 명상공간. 그저 멍 때리는 힐링카페가 아닌 실제 명상을 제공하는 제대로 된 명상카페.


두 번째 전략은 차 + 오마카세 = 차마카세. 쉽게 말해 티코스인데

정해진 티코스가 아닌 손님 개인의 취향에 맞춘 차 종과 쓴맛 단맛 바디감, 그리고 카페인까지 조절하는 극 미세조정으로 초개인화(Personalization)된 그리고 투명한 티코스.


세 번째 전략은 직접 만들어서 내어드리는 보이차로 만든 생콤부차와 원데이 클래스의 제공이다.

콤부차를 파는 가게는 종종 보여도 콤부차를 만들어 제공하는 가게는 아직 거의 드문 상황.

정말 건강하고 맛있는 음료로 만드는 나조차도 아껴마시게 되는 애정하는 콤부차.

이 정도 조합이면 안 올 수 있겠나? 아는 사람이면 무조건 오겠다!라는 계산이 있었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 맞기 전에는)


티코스로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드리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일까지 하시게 된 거예요?"

독특한 콘셉트의 티코스를 접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보통은 접하기 힘든 차문화와 찻집의 구성을 보고 궁금해서 물어보시게 된다.

처음 오시는 손님들이 자주 물어보시니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처음엔 약간 지칠 때도 있었어지만

지금은 당연한 반응이 되어 오히려 더 즐겁게 차분히 말씀해드리곤 한다.


몇 가지 버전이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찻집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와인부터 이야기한다.

원래는 대학생 때부터 와인을 마시고 공부하면서 와인바를 열고 싶었었다.

와인은 소주가 너무 맛이 없어 마시기 힘든 나에게 술이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인생의 술이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와인을 한 종류라도 더 마셔보고 싶었다.

가난한 자취방에 빈 와인병이 늘어나는 것이 뿌듯할 때가 있었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와인 동호회에도 들어가 보고 직장 내에 와인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와인도 본질은 결국 술. 수십 수백만 원짜리 와인을 마셔도 결국 몸에는 좋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고 아침엔 커피를 마시는 평범한 생활을 10년 지속하다 보니

몸에 슬슬 한계가 찾아왔다.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 하는 양이 늘어나고 하루 종일 커피를 달고 살게 됐다.

진한 드립커피를 하루에 3-5잔씩 마셔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인 하루 최대 카페인 허용치 450mg 초과량)


결국 심장박동이 이상해지고 불편함을 못 견디고 병원에 가보니 부정맥이라서 카페인 섭취를 금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하루아침에 커피를 끊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커피는 한잔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대용차들을 찾아봤다.

이것저것 마셔보다 보니 금세 질려서 꾸준히 마시는 것이 어려웠지만

홍차는 커피랑 비슷한 점도 있고 해서 마실만했었다. 구하기도 쉬웠고 티백으로 마시기도 쉬운 편이라

홍차를 집중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홍차를 마시다 보니 좀 더 맛있고 좋은 홍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와인 공부하던 게 어디 가겠는가. 홍차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읽어보니 홍차 중에서도 특히 중국 홍차가 궁금해졌다. 한국 그리고 영국홍차만 알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느낌이었다. 방대한 지역과 양의 중국 홍차 세계가 있었다.

좋은 홍차를 찾아서 이것저것 구입해 마시다가 그 맛의 다양함과 차원이 다른 단맛과 묵직한 바디감에 금세 매료되었다. 차의 종주국 중국에서 만들고 마시는 찻잎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것을 알고 나서

중국의 거의 모든 차를 경험해 봐야겠다는 탐구심이 불꽃같이 일어났다.

그중에서 가장 깊게 빠져버린 세상이 발효차(흑차)의 세상. 즉. 보이차의 발견이었다.

신비한 스토리까지 겸비된 이 고대의 차는 나를 신화의 세계로까지 끌고 들어갔다.

그때부터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오직 보이차만을 사고 마시고 공부했다.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300종류의 보이차를 일단 마셔보는 것.

닥치는 대로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전국을 가리지 않고 찻집과 차 상인들을 만나 보이차를 마셨다.

2017년부터 2018년 2년여간에 그렇게 미친 듯 차를 마시고 구입하다

아 와인이 아닌 찻집을 해야겠다. 적어도 차를 만들고 파는 행위를 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즐거운 세상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부정맥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해 주고 나를 명상에 세계로 초대해 주었으며

차를 마셨을 뿐인데 정신까지 맑아지고 마음 수련까지 하게 해주는 이 신비로운 차!

이 아름답고 고요한 세계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다.

여러분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커피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푸근한 나를 회복시켜 주는

지속가능한 음료. 차의 세계로 함께 떠나고자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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