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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un 04. 2023

카자흐스탄에서의 추억

-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11

 1. 국제버스로 국경을 넘다      


  번거롭고, 지루하고, 피곤한 세세한 일정들… 그러나 자유여행이란 이러한 어려움과 당혹감, 고난과 매번 마주하기 마련이다. 간혹 예기치 않은 사건이 생기고 기대하지 않았던 도움 속에서 극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운명인 양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생을 각오하지 않았다면 한국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늘 아쉬운 잠, 지속적인 장의 긴장, 검게 탄 얼굴, 터진 입술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낯선 사물과 마주침,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는 미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와 나를 제외하고 다른 일행은 타슈켄트에서 여객기로 알마티로 떠났다. 우리는 국제버스 편으로 간다. 겨울에는 17시간, 여름에는 12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국경 검문소, 세관, 입국심사대를 지나는 데만 1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결국 15시간 만에 알마티에 도착했다. 

2층 버스 맨 앞 좌석에서 찰칵

운전석 위쪽만 2층으로 된 버스에 올라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불편한 중간쯤의 좌석에서 2층 맨 앞의 빈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나마 시야가 확 트인 좌석에서 전망을 조망하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버스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차한다. 출국수속을 밟아야 한다. 길게 늘어서 심사받는 도중에 우즈베키스탄 출국사무소의 한 직원이 다가와 묻는다. ‘어디서 왔냐?’고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 관광객이라며 그가 줄의 맨 앞으로 오라고 한다. 다들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데,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미안해 현지인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버스에는 대략 40명 정도의 승객이 있었지만, 관광객은 이 교수와 나, 둘 뿐이다. 다들 국적이 우즈베키스탄인지, 카자흐스탄인지도 알 수도 없고 구별도 되지 않는다. 우리도 모자와 선글라스만 벗으면 아마 현지인으로 보일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출국하자마자 곧바로 카자흐스탄의 검문소와 입국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경에서 한 시간 정도 소요하고 나서야 다시 버스에 오른다. 과거 여행했던 사람들에 의하면 검문소에서 돈을 요구하거나 배낭을 샅샅이 뒤지는 등 수모를 겪었다고 하던데 그런 일은 이제 없는 것 같다. 다만 수시로 여권을 보여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버스는 서너 시간을 달려 날이 어두워져서야 휴게소에 들렀다. 우리는 식당에서 잠시 허기를 면하고 나는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샀다. 한국에서 웨하스라고 부르는, 중간에 크림과 초콜릿이 있는 과자다.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 우리 돈 천 원 정도다. 벤치에서 쉬면서 과자를 먹는 나를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꼬마 소녀들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과자를 나누어주자 부끄러운 듯 사양하다가 고맙다는 표정으로 받아 든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버스에 오른 나는 깜짝 놀랐다. 과자를 나누어준 말끔한 두 소녀가 버스 안에서 구걸하는 것이다. 현지어로 무어라고 소리치며 동냥한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아마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등등의 동정을 유발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세상에! 옷도 깔끔하게 입었고 생김생김도 귀여운 아이들이 동냥할 줄이야?

  알마티로 가는 길은 우리의 고속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황폐한 평원을 계속 내달리는 것만 빼고.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다가 깨어났다. 알마티가 가까워진다. 가끔 언덕과 고개를 지나기도 하고 멀리 산들도 보인다. 오후 4시 40분쯤 출발해서 오전 6시를 넘어서야 알마티 터미널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버스에서 보낸 것이다.     

          

    2. 알마티에서 산책을     


  알마티에서 숙소는 윤 선생님이 소개해 준 투르키스탄 호텔이다. 바자르 앞에 4층 건물에 있는 호텔은 값은 저렴했지만, 시설은 아주 낡았다. 그래도 하룻밤은 어쩔 수 없이 묵어야 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 우리는 짐을 호텔 라운지에 맡기고 아침 식사도 할 겸 산책에 나섰다.

  카자흐스탄은 인구가 1천5백만이지만 국토는 한반도의 12배에 달하는 넓은 영토의 나라다. 넓은 땅인 만큼 카스피해와 아랄해와 접해 있고 발하쉬 호수를 품고 있는, 다양한 자연과 유산을 지닌 국가이다. 연감을 보면 민족은 카작인이 절반을 넘지만, 러시아인들도 30%에 달하고 종교도 이슬람교에 버금갈 만큼 러시아 정교 신자 수도 많다. 워낙 넓은 곳이라 우리는 며칠간 알마티 주변만 돌아보기로 했다.

  알마티에서 첫 방문지인 길 건너 바자르는 비교적 규모가 컸다. 과일점, 정육점 등이 늘어선 1층을 지나면 의류, 전자제품 판매점까지 서민들이 자주 찾는 생활필수품들이 널려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과일과 견과류를 사고 나서 인근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오 교수가 소개해 준 서 사장님을 만나기로 했다. 얼굴이 둥글고 선한 인상을 한 서 사장은 통화 후 곧장 푸시킨 거리에 있는 엘도로(Eldoro) 레스토랑으로 왔다. 우리는 그에게 여행에 관한 여러 정보와 카자흐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엘도로 레스토랑에서 체크인이 가능한 시간까지 기다리다 우리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산책 겸 시내 관광을 나섰다. 바자르를 지나 조금만 걷자 곧바로 판필로브 공원이 나온다. 소나무들이 줄 지어선 길을 따라 걷자 동방정교회의 젠코브 성당도 보인다. 채색된 돔형의 뾰족 지붕들이 러시아풍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당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출입문이 닫혀있다. 우리는 비둘기들이 즐비한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만을 찍었다. 도시 남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천산산맥 덕분인지 공기도 맑고 그리 무덥지 않다. 타슈켄트보다 선선한 바람이 반갑다.  

        

    3. 알마티에서 차른 캐년(Charyn Canyon)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둘째 날이다. 우리는 뒤늦게 중앙아시아 여행을 시작한 백 사장님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는 나와 같은 안성에 살고 있으며, 타슈켄트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의 계획은 알마티에서 출발하여 차른 캐년을 들른 다음 사티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카인디 호수를 보고 오는 것이다. 

  우리를 싣고 떠날 차가 백 사장이 머물고 있는 코나크 호텔 정문 앞에 주차해 있다. 러시아계의 덩치 큰 기사가 우리에게 인사한다. 그런데 차종은 한국산 낡은 코란도이다. 염려는 되지만 그냥 타고 가기로 한다. 차삮은 1박 2일 동안 1인당 4만 텡게, 한화로 12만 원가량이다. 이곳에서는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알마티를 떠나서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정차한다. 그곳에서 기사가 기름을 넣는 동안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출발은 순탄했던 일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에 봉착한다. 에어컨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더니, 이번에는 허허벌판에서 차가 멈춘 것이다. 기사는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하더니, 다른 차가 오기로 했으니 기다리란다. 따가운 햇볕이 비추는 황량한 평원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차른 캐년까지 버티며 그냥 가기로 했다. 

  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골골거리며 간신히 차른 캐년의 입구에 도달했다. 가는 동안 냉각수의 온도를 지시하는 바늘은 고온을 지시하는 최고 높이에서 꿈쩍도 안 한다. 엔진 소리는 내가 들어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알마티에서 220Km에 떨어진 1차 목적지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차른 캐년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처럼 침식으로 이루어진 협곡이다. 나무는 물론 풀들도 거의 없는 황폐한 산과 침식되어 맨살을 드러낸 지층들이 마치 탑처럼 쌓여있는 협곡 입구에서 걸어서 한참을 계곡이 거의 끝나는 곳에서 나는 쉬기로 한다. 반면에 에너지가 넘치는 이 교수와 백 사장은 계곡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한참을 내려간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강이 흐르고 그곳에서 차를 타고 입구까지 돌아올 수 있다고 했지만, 이 교수도 얼마 못 가서 돌아온다. 내리쬐는 햇볕과 뜨거운 공기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입구 쪽으로 돌아와 물을 마시며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우리 차의 기사는 인근 수돗가에서 물을 떠다가 계속 차에다가 붓는다. 열기를 식히려고 하는지 아니면 냉각수를 보충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사티 마을까지 갈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고장 난 코란도 대신에 오기로 한 차는 감감무소식이다. 일단 코란도로 가는 데까지 가자는 배짱으로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어떻게 손을 썼는지 차가 말짱하게 잘 달린다. 그나마 다행이다. 평원과 구릉을 한참 달려 늦은 오후에 우리는 사티 마을의 민박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4. 사티 마을에서 카인디 호수(Kaindi Lake)로     


  카인디 호수로 가기 전에 머문 사티 마을은 앞산, 뒷산이 가슴을 열어 동네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동네를 가로질러 시냇물이 흐르고 멀리 앞산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다.

  밤이 되자 강물 소리는 민박집까지 닿아온다. 앞마당과 뒷마당이 넓은 민박집은 사립문이 늘 닫혀있다. 제주도의 민가처럼 가축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리라. 앞마당에는 한창 익은 살구들이 나무 의자 근처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작약과 장미가 작은 정원에 심겨 있다. 민박집은 알마티에서 사업을 하는 김 사장이 소개한 곳으로 아버지와 세 딸이 운영하고 있다.

  아침 5시에 눈을 떠 사립문을 열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집 앞에 펼쳐진 넓은 목초지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여린 햇빛은 고요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다. 자갈길을 따라 동네 가운데로 접어들자, 소들과 말들이 동네 길을 어슬렁거린다. 옆집의 아주머니는 소젖을 짜고 아저씨는 여물을 쌓아 올린다. 시냇물과 강물 덕분인지 카자흐스탄의 여느 풍경과는 다른 푸르른 지대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집들이 연달아 있고, 도로에도 차는 보이지 않는다.

  냇물 근처에는 오래된 나무들도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물은 아주 맑다. 멀리 천산 산맥이 거의 끝나가는 지역이라선지 눈이 쌓인 설산은 아니지만 가파른 돌산의 정상도 보인다. 엉컹퀴(밀크 시슬)와 작은 들꽃들이 피어난 풀밭이 길게 이어지고 시냇물 소리만 정겨운 공기 깨끗하고 물 맑은 평화로운 동네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위안감에 잠시 나도 평안해진다.

  엊저녁 밤에 잠시 바라본 하늘에는 별들이 마치 이곳의 풀꽃들처럼 가득 돋아있었다. 오지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처럼 아름답거나 낭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대자연과 교감하면서 사는 것은 축복일는지도 모른다. 

  사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곳은 높은 고원지대가 아닌데도 어제부터 몸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운이 없다. 심장박동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며칠 동안 계속된 불편한 장의 상태와 함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계속된 강행군(?), 우리가 타고 온 코란도처럼 낡은, 내 몸의 엔진에 과부하가 걸린 것일 테다. 알마티로 돌아가면 PCR검사 이후 귀국인데 그때까지만이라도 큰 문제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이전, 코로나19 감염 후유증으로 한 달간 체력이 저하되었었고, 허리 부상으로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떠나온 것이 원인일 것이다.

  카인디 호수는 사티 마을에서 15Km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입구에 차를 놓고 우리는 잠시 걸어 호숫가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진으로 형성된 호수이고, 석회석 성분 때문에 썩지 않은 고사목들이 마치 푸른 호수 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다. 카인디 호수는 사진과 방송에서 목격한 그대로의 형상이다. 아름다운 푸른 물빛 사이의 고사한 삼나무들이 하늘을 버티고 있는 듯한 광경은 장관이다. 그저 쉽게 만날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산과 물과 나무와 하늘이 이뤄낸 한 장의 그림 같은 풍경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작은 여울에 잠시 손을 씻고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호수 앞에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한참을 멍 때리다가 돌아오는 오솔길에서 만나는 초롱꽃, 제라늄노도숨, 분홍바늘꽃과 이름 모르는 들꽃을 사진에 담았다. 그들은 내 사진 속에서만은 지지 않고 늘 피어 있을 것이다. 

     

    5. 쉼블락(Symbulak) 정상 능선에서 커피를


  이 교수와 카인디 호수에서 돌아와 투르키스탄 호텔에서 백 사장이 묵고 있는 코나크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투르키스탄 호텔은 숙박비는 저렴했지만 그만큼 건물이 낡았고, 서비스도 부실한 편이었다. 특히 덜렁거리는 세면대는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코나크 호텔은 판필로브 공원 앞의 오래된 4층 건물이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낫다. 방이 7~80여 개쯤 되어 보이는 규모가 큰 호텔이다.  

호텔 정문 앞에서

  벽화가 그려진 둥근 천장의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 아침을 먹은 뒤 우리는 백 사장과 아쉽게 헤어졌다. 그는 한국에서 입국하는 동료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 교수와 나는 택시를 타고 쉼블락으로 향했다.

쉼블락은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여름에는 관광과 트레킹의 명소로 유명하다. 특히 알마티에서 12번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장소이기에 현지인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2천 텡게의 택시비를 지출하고 케이블카 입구에서 내렸다. 만년설이 있다는 3,200m까지 오르려면 세 번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무더운 여름이어서인지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위주다. 그래도 줄을 서지 않고 금세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세 번째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천산산맥의 봉우리들이 눈에 가득 차온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멀리 5천 미터 급의 타이가 봉도 보이고 바로 앞의 우치텔 봉우리에도 만년설이 남아있다.

이 교수는 걸어서 만년설까지 가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몸의 상태를 생각해서 커피숍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노라고 했다. 산군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처음으로 세 명의 한국인들과 반갑게 조우했다. 잠깐 서로의 여행담을 주고받았다.

세 번째 케이블카가 도착한 해발 3,200미터의 능선은 겨울에는 스키 레인의 출발선이다. 능선을 따라 곤돌라 시설도 되어 있다. 반면 여름에는 패러글라이딩의 출발선인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산 아래로 하강한다. 몇 년 젊었더라면 겨울에는 스키를, 여름인 지금은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해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다. 온전치 못한 허리와 심장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설산이 훤히 보이는 전망이 좋은 찻집에서 홀로 차를 마신다. 고산지역이지만 숨이 가쁘다든가 가슴이 답답한 고산증은 전혀 없다. 서빙하는 젊은 친구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제안에 응해 웃는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홀로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다.

  이 교수는 거의 두 시간 뒤에 돌아왔다. 그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다 1차 정류장 근처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식당이 밀집해 있는 공간에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우리는 전망이 좋은 2층 야외식당에서 소고기, 양고기로 만든 요리와 밥을 시켰다. 고기와 양파, 토마토, 오이 등이 곁들어 나오는 베쉬바르막 비슷한 요리가 8천6백 텡게(한화 약  2만 5천 원)라고 한다. 현지에서는 비싼 가격이지만, 두 명이 맛있는 고기를 먹었으니 그래도 만족한다.

  문제는 다시 알마티 시내로 가는 택시를 잡는 것이다. 기사들과 택시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데 케이블카를 같이 타고 내려온 현지의 젊은 친구가 앱을 통해 택시를 불러준다. 그런데 잠시 후 나타난 택시는 벤츠 S클래스였다. 중앙아시아에서 에어컨 불능의 소형차들만 타다가 갑자기 호화스러운 승용차에 올라타니 기분이 묘하다. 승용차의 젊은 기사는 2천5백 텡게(한화 7천5백 원)를 받고 우리를 호텔 앞까지 태워주었다. 

  저녁을 먹고 알마티의 문화의 거리로 알려진 아르바트 거리로 산책을 나갔다. 저녁이라서 그런지 보행자들은 별로 없다. 현지의 가게 몇 군데를 잠깐 들러본 뒤에 맥주 전문점에서 독일과 체코산 생맥주를 마셨다. 맛과 가격 모두가 우리를 만족시킨 밤이었다.  

     

 귀향 – 돌아오는 길목에서     


  7월 28일, 카자흐스탄에서 5일 차이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같이 여행했던 윤 선생님을 비롯한 일행들은 이미 25일에 귀국했고, 이 교수와 둘이서 나흘을 더 카자흐스탄에서 보냈다. 

내일 귀국을 위해 PCR 검사를 해야 한다. 이 교수와 나 모두 이미 한국에서 코로나19를 앓은 적이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감염되었다면 현지에서 일주일은 더 머물러야 한다. 음성확인서가 없다면 귀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국하기 전 여러 지인이 코로나19가 극성인데 무슨 여행이냐고 했지만, 내가 여행한 나라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백신접종증명서를 여러 통이나 떼어서 준비했지만, 한 번도 써먹은 적도 없고 마스크도 마찬가지였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녀 봐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다. 현지의 국내선 여객기에서조차 마스크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에서 코로나19는 걱정거리도 아니고, 심각한 질병으로 여기지도 않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 입국 전 코로나19 검사, 입국 뒤 다시 PCR 검사를 또 해야 한다. 그나마 카자흐스탄에서 PCR 검사 비용은 한화 1만 원 정도이니 다행이지만, 유럽에서는 10만 원이 넘는 돈을 아깝게 지불해야 한다. 

PCR 검사는 알마티 시내 곳곳에 있는 OLYMP라는 병원에서 하고 있었다. 이곳은 검진이나 치료는 안 하고 여러 검사만 전담하는 병원 같았다. 병원의 직원들과는 영어로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구글 번역기와 보디랭귀지로 신청하고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휴대전화 앱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내일 오전에 다시 올 테니 음성확인서 출력을 부탁한다고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식욕이 떨어진 우리는 현지의 한국 음식점 ‘맛있소’에서 비빔밥과 김치찌개로 속을 달랬다. 

  29일 오전에 OLYMP에서 음성확인서를 받았다. 귀국행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으로 23시 출발이다. 낮 동안 우리는 아르바트 거리에서 잠깐의 산책과 커피숍에서 휴식 그리고 엘도로 레스토랑에서 작은 만두가 들어있는 수프와 스파게티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일찍 도착한 알마티 공항은 역시나 한국의 터미널보다도 작았다. 

  수속을 밟기 위해 출국장으로 들어서자 항공사 직원은 음성확인서부터 검사한다. 그리고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요구한다. 몇몇 현지인들이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든다. 음성확인서를 일일이 대조한 뒤에야 발권해 준다. 이 교수와 가방을 부친 뒤 출국 대기장에서 산 호밀빵 버거로 저녁을 대신하고 여객기에 올랐다. 

  여객기의 작은 창문으로 알마티 시내의 불빛들이 아련하게 멀어진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불현듯 떠오른다. 지난 여행의 순간순간이 지나가고 1만 미터 상공 위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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