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보통 아무 날도 아닌 그런 날 소리 없이 찾아온다.
학교에서 한 교무실에 일하는 후배교사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제 갓 30살이 된 여전히 앳된 얼굴의 그녀는 올해 내가 일하는 학교로 전근을 왔었다. 나이는 서로 다르지만 야무지고 성격 좋은 그녀와 나는 금세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둘 다 말썽 많은 3학년 아이들의 담임이고, 무엇보다 서로의 반을 가르치고 있어서 더욱 가까워질 수가 있었다.
지난 주말 밤, 외출 후 귀가하는 길에 울먹이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2년 정도 암 투병 중인 엄마의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가족 돌봄 휴가를 2주간 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위독하다며 계속 울고 있는 그녀에게 어떤 위로도 위로가 돼주지 못한다는 현실에 더해, 핸드폰너머에서 울고 있는 그녀의 슬픔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주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시간 강사가 채우고 있는 그녀의 자리를 보기를 일주일, 기적적인 소식을 간절하게 바랬건만 결국 지난 새벽에 그녀의 어머니께서 하직하셨다는 메시지를 받고 말았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교사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홀로 장례식장으로 찾아가는 길. 하늘은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고 바람은 마치 좋게 불고 있었다.
비극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아름다운 날을 택하여 방문한다.
장례식장안으로 들어서니 그녀는 보이지 않고 조문객들이 안쪽 방을 채운 채 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울음을 참아가며 눈물을 훔쳐가며 부르는 찬송가였다. 식장을 가득 메운 숙연한 기운은 그녀를 홀로 만나야 하는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어떤 얼굴을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울지 않고 그녀를 토닥여줄 수는 있을까?
이윽고 안쪽에서 창백한 얼굴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흰 핀을 머리에 꽂고 검정 한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에 나의 안쪽 어딘 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지만, 힘을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그녀를 안아주었다. 방금 전 괜찮은 듯 다가왔던 그녀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냐고 물을 수도 없었고, 슬픔의 한가운데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테니 나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게 내 곁에 계시는 내가 그녀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여 무슨 말이라도 꺼내기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그렇게 식장의 한 구석에서 잠시동안 껴안은 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나오는 길. 말할 수 없는 착잡함, 설명이 안 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당연히 나에게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일 테지만, 아직은 아무 일도 없으니 다행이라는 극단적 이기심마저 새어 나왔다.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둔 그녀가 엄마의 빈자리를 보고 얼마나 슬퍼할지를 생각하자 그제야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샘, 난 아직도 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어떤 말을 해도 샘의 슬픔에 가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네요. 대신 다음 주에 돌아오면 따뜻한 커피 한잔 내려 줄게요. 우리 그냥 말없이 커피 한잔 해요, 샘.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