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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기술 혁신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레뜨로핏 Rettrofit
인공지능과 협업하여 타자기로 글을 쓰고 있는 장면을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표지이미지를 만들어 보았다


이 이야기는 타자기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타자기 대신 컴퓨터의 편리함에 기대 살다가 이제 인공지능의 편리함으로 인간들의 일자리와 인간 고유의 지능까지 잠식당해 갈 지금의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복고’ 또는 ‘뉴트로’ 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필름 카메라나 마이마이에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듣거나 LP판으로 턴테이블에서 음악감상을 하며 과거의 감성과 낭만을 다시금 만끽하곤 했다. 하지만 2024년부터 MZ세대가 복고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왜냐면 그들은 태어나서 타자기나 필름 카메라, 마이마이, 워크맨, LP와 턴테이블 같은 물건을 구경조차 해 보지 못한 세대들이다. 기성세대들에게나 향수의 물건이지 지금의 MZ세대에게는 처음보는 생소한 물건이다. 물건 자체는 오래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마치 신문물과 같은 것이다. 백스페이스는 있지만 한 번 쓴 글자는 지울수가 없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신중을 기해야 하는 타자기나 필름 한 롤에 담긴 24컷 중에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셔터 한 번 누를 때마다 신중을 기했던 것처럼 그런 감성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어른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MZ들이 복고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은 디지털에 지워져 버린 아날로그만의 인간적 '감성'과 '가치'를 다시 발굴하고 느껴보기 위한 것이고 할 수 있다.


※ MZ세대는 M(Millennials)세대와 Z(Generation Z)세대를 합쳐 부르는 한국식 용어로 해외에서는 두 세대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M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에 출생한 세대이고 Z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이다.






혁신을 통한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매체를 과거의 유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술적,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우리 인류의 삶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왔다. 혁신으로 부상하며 떠오른 매체의 반대편에는 대중의 관심과 시야에서 사라지며 가라앉은 매체들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계속 있었다. 활판인쇄 기술은 20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사용되었으나, 사진 식자기(Phototypesetting)와 컴퓨터 기반의 조판 기술에 밀려 쇠퇴했다. 텔렉스(Telex)는 20세기 중반까지 국제 통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1980~90년대 팩스와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사라졌다. 공중전화는 1980년대까지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으나,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자리를 잃었다. 카세트테이프 및 워크맨은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해 휴대용 음악 시장을 주도했으나, 1990년대 CD와 MP3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필름 카메라는 21세기 초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2000년대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비디오 테이프(VHS)는 홈비디오 시장을 주도했으나, 이 후 DVD와 블루레이가 활성화되다가 2010년대 이후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물리적인 미디어를 찾지 않게 되었다. 삐삐(무선호출기)도 1990년대 후반까지 저렴한 통신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 휴대전화의 폭발적인 보급으로 인해 사라지게 된다.


타자기도 마찬가지다. 1868년 최초의 타자기가 상용화되면서 사무 환경의 혁신을 가져왔고, 여성이 ‘타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회진출하는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때 사무실의 필수품이었던 타자기는 1980년대 말이 되자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면서 거대한 기술의 파도에 밀리기 시작했다. PC는 오타를 쉽게 수정할 수 있었고, 문서 복사나 편집도 순식간에 해냈다. 타자기의 '불편함'은 곧 '비효율'로 낙인찍혔고, 타자기는 사무기기라는 고유의 용도에서 폐기되었다. 사람들은 타자기를 집안 옷장속이나 창고에 처박아두거나 고물상에 고철로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타자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타자기는 정말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갔을까? LP판이 그랬듯, 필름 카메라가 그랬듯, 타자기도 MZ세대 같은 젊은층에게 이제 '힙'한 문화로 재조명되고 있다.(어쩌면 필자의 바람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사용하는 유행을 넘어선다. LP판이 음질의 '따뜻함'을, 필름 카메라가 '기다림'의 미학을 남겼다면, 타자기는 '사유하는 글쓰기'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남겼다. 손가락으로 힘껏 키를 누를 때마다 울리는 '찰칵, 찰칵' 소리, 종이에 또렷이 박히는 검은 잉크 자국, 오타를 수정할 수 없어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던 그 시간들. 타자기는 우리에게 '생각의 속도'를 되찾아 주었다. 컴퓨터 앞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복사'하고 '붙여넣기'에 익숙해질 때, 타자기는 한 글자의 무게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편하게 효율을 극대화하고 생산성을 높여가며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AI가 대신 해주는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능뿐만 아니라 감각까지 AI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타자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하는 힘, 창작의 고통을 즐기는 기쁨,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지능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타자기가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소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타자기로 글을 쓰더라도 디지털디바이스는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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