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주변에 '오래된 것'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라는 표현이 정확히 맞을지는 모르겠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오래된 것’들은 어쩌면 완전히 사려졌다가 다시 등장 한 것이 아니라, 너무 소수여서 눈에 띄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등장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하나의 현상이자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복고 열풍'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상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MZ세대들에게 LP판, 필름 카메라, 그리고 타자기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자란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문물이다. 때문에 이런 ‘신문물(新文物)'이 또래들 사이에서는 남들과 다른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힙'한 도구이다.
복고가 아닌 '힙스터'의 신문물: LP, 필름 카메라처럼 ’타자기‘가 힙해진 이유
힙스터 문화의 핵심은 대중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을 드러내는 데 있다. 스트리밍으로 무한정 음악을 듣는 시대에, 굳이 한정된 곡이 담긴 LP판을 구매하고 듣기 불편한 턴테이블에 올리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음악을 소유하고 집중해서 듣는 경험'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원하는 만큼 실패없는 양질의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과 바로 공유할 수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 역시 '기다림과 설렘'이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소비하는 행위다.
타자기도 마찬가지다. 빠르고 편리한 PC의 워드프로세서를 두고 굳이 느리고 불편한 타자기를 찾는 이유는, 그것이 '글을 쓰는 경험'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거부하고, 시간과 노력이 드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 이것이 MZ세대들에게는 ’힙‘한 나만의 개성을 어필하는 방법이 아닐까?
#텍스트힙 #라이팅힙: ‘필사’라는 아날로그 글쓰기 문화의 부상
이러한 흐름은 SNS에서 #텍스트힙(Text-Hip), #라이팅힙(Writing-Hip) 같은 새로운 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텍스트힙은 소위 독서하는 나 자신을 힙하게 보이기 위한 행위로 자신의 독서 인증을 SNS에 올리면서 나를 더욱 세련된 사람으로 돋보이게 보이게 한다는 이미지와 결합하며 유행으로 확산되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유행은 여기에서 그치치 않고 읽기에서 쓰기로 더 확장되어 갔다는 것이다. 텍스트힙에서 이제는 ‘라이팅힙(Writing-hip)’으로 트렌드는 퍼져가고 있다. 신조어 '라이팅힙(Writing-hip)'이란 '쓰기(Writing)'와 '힙(hip)'의 합성어로, 손글씨 쓰기나 필사(筆寫)를 힙한 문화로 즐기는 현상을 뜻한다. 이 덕분에 요즘 출판, 서점, 문구업계는 호황이다. 출판사는 손글씨 필사 관련 책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고, 서점가에선 다양한 필사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사를 위한 다양한 문구들이 판매에 활기를 띠고 있다. 손글씨 수업 같은 원데이클래스가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남의 글을 베껴 쓰기는 필사를 넘어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글을 SNS에 올리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손글씨의 감각도 매력적이지만 손가락의 감각과 정신집중이 극대화되는 필사도구가 있다. 바로 타자기다. 필자는 이 라이팅힙의 정점에서 타자기의 유행이 다시 돌아올 것으로 추측한다. 이 추측의 근거가 되는 키워드는 바로 힙 hip이다. 더 새롭고, 개성 있는 것을 지향하는 힙스럽움처럼 텍스트힙, 라이팅힙에는 공통적으로 '힙'이 들어간다. 책을 읽는 행위부터 책을 읽고 필사를 하는 것까지 사람들은 이 행위를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더욱 새로운 도전과 영역으로 발전시켜왔다. 때문에 라이팅힙이 점점 더 정점을 간다면 마지막에는 타자기를 이용한 필사, 편지 쓰기, 등의 글쓰기가 한 번 더 유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사는 단순히 문장을 베껴 쓰는 행위를 넘어선다. 타자기로 한 글자씩 키를 눌러 종이에 새기는 과정 속에서 문장의 의미를 깊이 곱씹게 되고, 작가의 호흡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는 쇼츠 같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뇌에게 깊이 있는 사유의 즐거움을 되찾아주는 훌륭한 훈련이 될 것이다..
'생성'보다 '고뇌'가 힙하다: 느리고 신중한 창작의 가치
AI가 클릭 한 번으로 글을 '생성'해주는 시대에, 이들은 역설적으로 '고뇌'의 가치에 주목한다. AI가 만든 글은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인간적인 고민의 흔적이나 깊은 사유가 담겨 있지 않다. '삭제 버튼'이 없는 타자기 앞에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생각하고,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는 과정이야말로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쉽고 빠른 길을 거부하고,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AI시대에 나를 되찾는 힙한 창작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AI시대에 ‘타자기’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도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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