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해킹의 대안은 결국 타자기로 만드는 종이문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빅데이터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개인의 일상 자체가 정보로 취급된다. 나의 신용카드 사용처나, 구매하는 물품도 정보가 된다. 내가 네비게이션앱으로 검색하고 다니는 목적지, 심지어 내가 포털 검색창에 검색한 검색어까지 일상적인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 모든 것들이 정보와 데이터가 된다. 최근 국내 거대 통신사 SKT와 KT 같은 기업들이 줄줄이 해킹으로 인해 고객들의 정보가 유출되고 자신도 모르게 모바일 결제가 이루어져 돈이 빠져나가는 등의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 뿐인가? 신용카드 회사에서도 고객들의 정보가 해킹을 당해서 잘 사용하고 있던 신용카드를 폐기하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도 발생했다. 그 보다 더 불편한 것은 유출된 개인정보로 앞으로 어떤 사고가 또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제 우리는 정보보안이 가장 중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기업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보며 통신사를 신뢰했지만, 보기 좋게 배신 당했다. 사고 후 뉴스를 통해 해당 통신사의 관리 책임자의 보안인식과 대비수준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정보의 저장매체도 이제는 대부분 온라인이다. 예전 같으면 업무상 필요한 자료를 이동할 때 USB라는 저장매체를 이용하여 외장하드나 PC에서 PC로 데이터를 옮겼다. 하지만 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 된 지금 USB 같은 저장매체도 이제는 번거롭게 되어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모든 데이터는 내가 이용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클라우드에 전송이 되고, 나는 세계 어디를 가던지 온라인에 접속이 가능하다면 해당 플랫폼의 클라우드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너무나 편리한 혜택을 누리고 산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은 데이터의 안전이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다. 한 가지 더, 전기가 들어와야 사용 가능한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보안에 헛점이 생긴다면? 전기가 셧다운 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로 어제 정부의 국가전산망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리튬배터리 화재로 정부의 국가 전산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배터리 화재가 원인이지만 전산화 된 데이터가 보관된 시설의 화재로 국가의 행정망이 먹통이 되고 많은 국민들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는 일로 번져가는 일련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전산데이터의 안전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서 이제 '보안'은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다. 온라인에 연결된 나의 모든 정보는 해킹, 바이러스, 데이터 유실의 위협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밀문서부터 기업의 영업비밀까지, 디지털화된 정보는 언제나 외부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아무리 복잡한 암호와 강력한 방화벽을 구축하더라도, 이를 뚫으려는 해커들의 기술 역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이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결국 온라인에 존재하는 한, 정보 유출의 위험은 0%가 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타자기'는 시대를 역행하는 가장 완벽한 대안이 될 것이다. 타자기는 전자 신호가 아닌 물리적인 힘으로 종이에 잉크를 찍어내는, 100% 아날로그 기기다. 네트워크에도, 와이파이에도, 블루투스도 필요없다. 인터넷과 완전히 단절된, 이른바 '에어 갭(Air-gapped)' 상태를 유지한다. 해커가 원격으로 접근해 정보를 빼내거나 문서를 변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타자기로 작성된 문서를 훔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종이 원본을 직접 손에 넣는 것뿐이다. 이처럼 단순하고 고전적인 방식이, 역설적으로 현대의 첨단 디지털 보안 기술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보안문서 생산을위해 타자기를 다시 도입하여 사용하는 국가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4년 신문기사에는 독일, 러시아에서 실제로 해킹의 위협에서 보안을 지키기 위해 타자기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보안은 과연 어떨까? 빠른 일처리로 국민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행정처리 속도를 감안해 본다면 오히려 대한민국이라말로 만의하나를 위해서라도 해외처럼 오프라인 보안문서 대응 전담팀이라도 꾸려놔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 영상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의 한 정면이다. 영상에서 정보기관 요원들이 최첨단 디지털 장비 대신 구식 타자기를 사용해서 보안문서를 작성하는 장면은 최첨단 기술의 역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엔티티(The entity)는 통제가 불가능해져서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는 무서운 상황이다. 영화에서는 인공지능의 공격 앞에 어떤 디지털 보안시스템도 무력해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결국 모든 것이 연결된 디지털 시대에 가장 안전한 정보 보관 방식이, 가장 원시적인 아날로그 수단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새로운 위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첩보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스파이들이 극비 정보를 다룰 때, 의외의 아날로그 장비인 타자기를 사용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다. 실제로 각국의 정보기관이나 군대에서는 외부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최고 등급의 보안 문서를 작성할 때 여전히 타자기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파일은 삭제해도 복구될 수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복제본이 어딘가에 떠돌 수 있지만, 타자기로 찍어낸 문서는 세상에 단 한 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 공문서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는 숫자였다. 특히 위조나 변조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산화 이전 시대의 행정가들은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정교한 아날로그 보안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그 중심에는 '갖은자(갖은字)'가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 유래가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신라시대 유물에서도 갖은자가 발견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일종의 문서보안 기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갖은자(갖은字)라는 것은, 한자에서 같은 뜻을 지닌 원(原)글자보다 획을 더 많이 구성하여 보통 쓰는 한자보다 모양과 구성이 전혀 다르게 된 한자를 말한다. 이렇게 획을 더 복잡하게 써서 금전을 다루는 중요한 서류인 공문서, 계약서, 영수증 등에서 금액이나 숫자표기를 할 때 위, 변조를 방지할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자의 획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위조가 어렵고, 고쳐도 표가 쉽게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一’에 세로로 획을 하나 추가해 버리면 십‘十’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금전이 오가는 중요한 문서라면 금액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었다. 일억이 십억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갖은자의 한자표기는 아래와 같다.
일(一)은 壹, 이(二)는 貳, 삼(三)은 參, 사(四)는 肆, 오(五)는 伍, 육(六)은 陸, 칠(七)은 柒, 팔(八)은 捌, 구(九)는 玖, 십(十)은 拾으로 표기한다. 그외에도 타자기에는 백百, 천千, 만萬 까지의 활자가 있다. ‘0’영(零)의 경우는 실제 금전표기 시 ‘0’을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숫자로 2,090을 한자로 쓰면 貳仟玖拾이라고 썼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보안의 가치는 비단 스파이의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는 결코 잃어버리거나 위변조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서들이 있다. 유언장, 중요한 계약서, 혹은 평생에 걸쳐 쓴 소설의 원고가 한순간의 랜섬웨어 공격이나 하드웨어 고장으로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라. 디지털 파일은 영구적이지 않다. 저장 매체는 수명이 있고, 소프트웨어는 에러나 버그가 생기거나 언젠가 호환이 중단될 수도 있다.
반면, 좋은 종이에 타자기로 작성된 문서는 수십, 수백 년을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저장'을 넘어선 '박제'에 가깝다. 디지털 시대에 타자기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나의 가장 소중한 정보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가장 확실한 백업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