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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되지 않는 아날로그 라이프

필사부터 창작까지 힙하게 타자기 사용하기

by 레뜨로핏 Rettrofit

이제 당신은 타자기를 고르고,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을 익혔다. 하지만 이 아날로그 파트너와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할지?' 혹은 '어떻게 즐겨야 할지?' 여전히 머릿속에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행위가 당신의 삶을 디지털 환경에서 잠시 분리해, 사유와 감각을 회복하는 '디지털 디톡스'의 과정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점이다. 꼭 거창한 창작이 아니어도 좋다. 필자가 제안하는 몇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타자기와 함께하는 아날로그 라이프를 편하게 즐겨보길 바란다.


기록하고 소통하라

타자기로 나의 삶에 지표가 되고 영감을 주는 '필사'를 해도 되고, 자신의 하루를 성찰하는 기록으로 '일기'를 써도 좋겠다. 특히 타자기로 주변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도 추천한다. 소인이 찍힌 우표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는 나이 불문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우체국에 가서 우표도 직접 사 보길 권한다. 필자는 우표를 살 때 일부러 아이를 데리고 가서 우체국에서 직접 우표를 사도록 한 적도 있다. 우표를 샀다면 타자기로 정성스럽게 타이핑한 편지를 접어 우체통에 넣어보자. 편지는 며칠 뒤에 지인의 손에 도착할 것이다. 스마트폰 당장 메시지를 보내 소통할 수 있지만, 우편을 통해 시간을 두고 느리게 소통하는 기회는 이제 거의 없다. 타자기를 통해 느린 소통도 해 보길 권한다. 특히 '편지'라는 문화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자녀들과 편지를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도 최근에 현관 앞에 박스로 작은 우체통을 만들어 두었다. 필자에게는 알파세대인 초등학생 자녀가 둘이 있는데, 아이들을 위한 타자기 편지를 준비하고 있다.


타자기로 산성비 게임을

아이들은 아빠가 타자기만 만지고 자신들과는 놀아주지 않는다는 불평을 가끔 늘어놓기도 하지만, 이는 필자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최근 2년간 쌓인 불만이다.(다음 연재의 스포가 될지 모르지만, 타자기 수집 전에 필자는 열정적인 육아기를 보냈다 그래서 다음 연재는 필자의 육아스토리를 준비 중이다) 그래서 타자기로 아이들과 즐길 새로운 게임을 구상 중이다. 타자기를 이용해 타이핑 연습용 게임인 산성비 게임을 아이들과 해 보려고 한다. 엄마의 도움도 필요하다. 엄마가 단어를 불어주면 제한 시간에 재빨리 타자기로 단어를 타이핑해 가는 것이다. 산성비 게임처럼 제한된 시간 내에 단어를 빨리 타이핑하지 못하면 계속 밀리게 될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불러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하고, 손가락은 재빨리 자판을 눌러서 단어를 입력해야 한다. 시간제한이 있어서 긴장감도 고조될 것이다. 여기에 상품까지 걸어 둔다면 아이들과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인원수 대로 타자기가 충분하지만, 타자기가 한 대 밖에 없는 경우라면 한 사람씩 기록을 측정해서 순위를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시도해 보자.


창작의 매개체, 타자기

창작에 관한 활용은 이미 5화에서 초고를 타자기로 써 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어떤 장르의 글도 상관없다. '타자기'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글쓰기는 잠시라도 당신에게 디지털 디톡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타이핑으로 남는 결과물은 스크랩하여 잘 모아둔다면 나중에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에는 글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타자기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다. 해외작가로는 영국의 '제임스 쿡'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제임스쿡 외에도 타자기를 그림 그리는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다. 국내 예술가 중에 조소희 작가는 타자기로 매일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자신의 예술작업으로 작품화해 가는 사례도 있다.


타자기의 기계적 미학 즐기기

창작의 매개체로 쓸 수도 있지만, 타자기 그 자체가 훌륭한 예술적 오브제로 탄생할 수도 있다. 타자기를 즐기는 방식은 사람마다 취향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타자기는 본디,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타자기'라는 기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수집에 집중하여 테마별로 타자기를 소장하는 마니아도 있다. 또한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의 타자기를 직접 분해해서 청소하고 '오버홀'을 통해 다시 사용이 가능한 물건으로 되살려내는 리스토어 작업으로 타자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필자도 타자기를 즐기는 방식의 일부분으로 타자기 리스토어와 수집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온전히 내 취향에 맞춰 타자기를 개조하는 커스텀 작업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기능적인 커스텀 중심이지만, 향후에는 타자기 자체를 예술적 오브제로 만드는 커스텀 작업도 구상하거나, 타자기를 활용한 공연도 구상하고 있다.

타자기를 예술적 오브제로 구상하는 아이디어 중 일부를 ai로 만든 이미지 ⓒ 2025. Rettrofit. All Rights Reserved.



에필로그; 종속되지 않는 아날로그 라이프

이제 세상의 모든 일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야흐로 AI 전성시대다. 필자도 직장에서 업무에 필요한 이미지 생성이나 회의내용 요약정리 등에 인공지능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편리하게 잘 활용하고 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불안함과 불편한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다. 도대체 이 불편한 마음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을 유용하게 잘 활용해서 일의 효율성은 높아졌다. 덕분에 나는 스마트하게 업무처리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인공지능을 활용하기로 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사실 일처리는 인공지능이 한 것인데, 마치 그 일처리를 내가 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난도가 높은 일을 짧은 시간에 처리해서 효율을 높였다 해도, 정작 내 머릿속에 그 난도 높은 일의 해결과정이 남아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해결과정이 내 머릿속에 남아서 경험이 되고 나의 지식이 되는 것인데, 나에게 남은 것은 업무를 처리한 결과뿐이다.


이제는 AI를 영리하게 잘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그 활용의 범위는 넓어졌다. 하지만 사용자의 인공지능 활용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인공지능에 의존도 또한 높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의존도가 높을수록 사용자는 인공지능에 종속될 가능성도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종속될 것인가? 주체적인 사용자가 될 것인가?

알고리즘 추천을 해제한 필자의 유튜브 초기화면

인공지능뿐만이 아니라, 유튜브나 각종 SNS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나 기타 SNS의 알고리즘은 내 검색어나 열람 콘텐츠를 기반으로 그 관심사에 맞춰 연관된 콘텐츠를 맞춤으로 제공해 준다. 그것을 우리는 무료한 시간에 별생각 없이 소비하고 있다. 이미 세상에 많은 사용자들은 '쇼츠'라는 짧은 영상콘텐츠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짧은 시간에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점점 쇼츠에 종속되어 버렸다. 요긴한 정보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지는 않다.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저급한 영상이나 가짜 뉴스도 많다. 알고리즘이 편리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필자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한 지식과 정보의 한계성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유튜브에서 알고리즘 추천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앱을 열 때마다 일일이 검색을 해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편하게 느껴진다. 알고리즘의 불필요한 추천에 불필요한 영상을 보는 시간낭비를 줄였다고 생각한다. 알고리즘의 편리함과 편협함에 종속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최근에 트렌트 전문가 김난도 교수가 교육 관련 모 유튜브채널에서 2026년의 트렌드키워드 중에서 강조한 키워드가 있다. ‘아네모이아(Anemoia)와 함께 ‘아날로그 리터러시’를 강조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어른 세대보다 더 쉽게 디지털 매체에 종속될 것이다. 따라서 김교수는 지금의 초등학생들인 알파세대들의 미래 경쟁력은 아날로그 역량에서 갈리게 될 것이라 했다. 이제는 디지털의 경험이 아닌 아날로그적인 진짜 경험을 가르쳐야 할 때라고 했다.

인공지능에 종속되지 않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이 책은 타자기 입문자들을 위해 타자기의 선택 방법과 기본적인 사용법, 그리고 창작의 동반자로 AI와 협업하는 방법까지를 정리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꼭 타자기가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종속되지 않는 삶을 찾는 것이고, 그 방법의 하나로 필자는 타자기를 제안했을 뿐이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의 삶이 과도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공지능과 쇼츠 등에 종속되지 않도록, 어떤 방법으로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시간'을 확보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일지 모른다.


연재를 마치며

이것으로 11회 차의 연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필자에게 타자기는 AI 전성시대를 관통하는 지금 시대에 디지털 디톡스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꼭 타자기가 아니어도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길 바란다. 끝.






필자로 인해 '타자기'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생기셨다면, 이 전에 연재했던 <아무튼, 타자기> 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muteuntajagi


그 외에도 매거진을 통해서 앞으로도 타자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하려고 하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tatata-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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