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다.

by 킴민슈

재벌이라는 또 다른 이름

"재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거대한 자본, 수많은 기업을 거느린 영향력 있는 존재.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재계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기업가의 무리.”

나는 재벌이 아니다.
재벌이라는 단어의 'ㅈ'의 한 획조차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를 "재벌 김민수"라고 소개한다.


왜?

나는 일찍부터 돈을 벌었다.
14살, 중학생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소득을 창출했다.
2005년,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뜨거웠던 내 노동의 결과는 50만 원이었다.

그 돈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짜릿함.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 나는 계속해서 일을 찾아 나섰다.


성장과 도전의 연속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말·공휴일마다 아르바이트를 했고,
빠릿빠릿한 성격 덕분에 휴게소 내 모든 업무를 경험했다.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 아르바이트 팀장으로 승진하며 또래보다 높은 시급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더 높은 보수를 향해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벽돌을 나르고, 주방 가구를 설치하며 점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대학에 가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식당, 마트 캐셔, 카페, 키즈카페, 장학재단 근로, 대외활동, 학생회장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재벌’이 되기로 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경험과 도전으로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사람이 되기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추석,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밤.
나는 다음 날 새벽 일찍 출근해야 했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출근길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걸까?"


아르바이트를 하며 늘 밝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힘든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 깨달았다.

"지금 이 시간들이 나중에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거야."

그 이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학생회장 선거에서 경쟁자는 연구실 엘리트였고, 나는 듣보잡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외쳤다.


"내가 학생회장이 되면, 꼭 변화시킬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두 배 이상의 압도적 표 차이로 학생회장이 되었다.
처음엔 손가락질받던 학생회장이었지만, 임기가 끝난 후에는 모두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어려움이든, 결국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진짜 ‘재벌’이 된다는 것

원하던 공기업에 입사했다.
좋은 조직이었지만, 내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대학 시절 활동했던 삼성전자 홍보대사 커뮤니티에서
소셜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가정집의 거실을 공유하는 Airbnb 같은 플랫폼, 세상에 없던 경험을 만들어 갈 사람을 찾습니다."

직감했다.
"이거다! 나를 위한 자리야!"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혹독했다.
성과를 내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졌고, 연봉도 40% 이상 줄었다.
서울로 올라와 생활도 빠듯했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내가 담당하던 클라이언트에게서 감사의 선물이 도착했다.
"당신 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선물은 내게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결국, 포기하지 않았다.
3년 뒤, 나는 연봉 100% 인상과 함께 사업 운영 및 기획팀을 리드하는 자리에 올랐다.

힘든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속에서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한 번 이겨냈기에 두 번째도 시도할 수 있다.
나는 세 번째 견뎌냈기에 네 번째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재벌’이 될 것이다.
내 경험과 도전이 만든 나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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