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관계를 이어나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말도 섞기 싫고 한 며칠 쌩까고 싶을 때가 있다. 옛날 같았으면 마음 풀릴 때까지 며칠 거리를 뒀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함께 키워야 할 아기가 있으니까. 무시조차 사치가 된 상황이 참으로 난감하고 곤란하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도, 목표에 다가가는 방식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다. 그는 아기가 편하게 자기를 바라는 마음에 쪽쪽이를 구입했고, 유두혼동을 걱정하던 나는 일찍부터 쪽쪽이를 물리고 싶지 않았다. 그도 아기를 생각했고 나도 아기를 생각했다. 우리 둘 다 아기를 생각했는데 그 모습이 달랐던 거다. 사공이 둘만 있어도 배는 위태롭게 흔들린다.
여럿이 목표에 도달하려면 팀워크가 필요하다. 방향을 확인하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우리는 종종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잘 키우고 싶어.'라는 말 안에 무한한 방향과 흔들리지 않는 각자의 철학이 있음을 놓친다. 누구에게 잘 키운다는 것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의미이고, 누구에게는 욕구를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별 것 아닌 이유로 언쟁을 했고 서먹해져 버렸다. 잘라낼 수 없는 관계를 풀어야만 한다. 어떻게? 대화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여간 기분이 안 난다. 난감하고 곤란하다. 그때 '아기를 위한 마음'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 다가가도록 용기를 줬다. 얼굴에 철판 깔고 용건을 말했다. 그 역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내 이야기를 들었다. 편안한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아까 일을 사과했고 남편도 내민 손을 잡아줬다. "자기 말대로 하자."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한 방식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목적지에 닿을 수 있고, 어쩌면 더 멋진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목적지로 가고 싶은 마음은 상대나 나나 매한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