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노력이 쌓여 관계가 만들어진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났지만 처음부터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부모님이 찾아오셨을 때 "행복하지?"라는 시아버지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시그널이 있다는데,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는데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눈앞의 자식이라는 존재가 언제 졸린지 언제 배고픈지 몰라서 목이 마르다고 울 때 기저귀를 들여다봤고, 졸리다고 울 때 젖병을 물렸다. 매일이 우당탕탕이었다.
그렇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계속 시도했던 이유는 부모라는 책임감과 오늘은 충분히 엉망이었으니까 내일은 당연히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아기의 작은 몸짓과 표정, 울음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어쩔 때 울음이 잦아드는지 그리고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타이밍을 기록하고 앞뒤를 끼워 맞추며 데이터를 쌓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기에게 "이렇게 졸려서 어째.", "배고프지? 밥 줄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말대로 아기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경지에 이르러 아기가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줄 수 있게 되었다. 눈빛을 나누고, 안고, 토닥이고, 쓰다듬는 수많은 순간을 거치며 개발한 직감 덕분이었다.
어린왕자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인간관계가 대체로 그렇다. 부모 자식 간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 친구 사이, 동료 사이 어떤 관계도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없다. 마음을 써서 관찰하고, 시도하고, 실수하면서 조금씩 연결되는 것이다.
이때 관계를 만드는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말이다. 여기에서 '말'은 음성언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 존재와 연결은 소리 없는 말들로 이루어지고, 상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연결의 시작이다.
하물며 대화가 가능한 사이라면 말의 쓰임새가 더 많다. 말이 오가는 사이가 모두 좋은 관계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을 건네지 않으면 관계는 멈춘다. 말을 건넨다는 건 상대를 바라보고, 존재로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제스처다.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가꿔지지 않는다. 시간이 쌓여야 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말을 뿌리며 마음에 길을 내고, 물을 주고, 볕을 쬔다.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관찰하고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율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래서 가치 있다. 어린왕자 구절처럼 우리가 서로 특별해진 까닭은 서로를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다.
낯선 아기와 날들이 쌓였다. 시간과 노력, 관찰, 시도,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여 우리 사이가 만들어졌다. 세상에 다시없을 특별하고 끈끈한 사이. 자식을 향한 사랑은 애써 키우면서 우러나오는 감정인 듯하다. 낯설었던 그 아기는 이제 새끼 코알라마냥 나에게 업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