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간고사
로스쿨 첫 시험을 앞두고 있다.
로스쿨은 시험 한 달 전부터 시험 기간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첫 중간고사가 4월 세 번째 주부터 시작하니, 사실상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자마자 공부에 투신하라는 뜻이겠다. 이렇게나 삭막한 공간이 있을 수 있나. 노는 게 제일 좋은 나로서는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다. 새 학기, 새 학교, 새 동료들이 잔뜩 있는데 마음 놓고 커피 한 잔 마신 날이 거의 없다.
물론 시험 기간이 되었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긴장하면서 공부하고, 조금 더 피곤한 상태로 공부하게 된다. 원래부터 수업 끝나면 다 함께 열람실로 직행했으니까, 시험 기간이라고 ‘특별히’ 공부 시간이 길어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의무감을 가지고 열람실에 앉아있는 정도이다.
학업 외적인 부분에서는 변화가 눈에 보인다. 열람실에 들고 가는 책들이 조금 더 다양해지고, 출력물이 조금 더 지저분하게 쌓인다. 빨래하는 주기가 조금씩 길어진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카페인 섭취가 늘어난다. 좋아하는 달리기도 시간이 아까워서 쉬이 하지 못한다. 요약하자면, 시험 기간은 위생과 건강으로부터 나를 격리한다. 딱히 공부를 더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몰골은 엉망이 되어간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소소한 재미는 있다. 물론, 학부 새내기 때처럼 함께 축제를 다니거나 술자리에 가고, 밥 먹고 카페 가서 수다 떠는 여유로움은 없다. 그래서일까. 짧은 시간을 가장 즐겁게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로스쿨에는 2층 엘리베이터와 열람실 사이에 만남의 광장처럼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쇼파와 탁자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빨쇼(빨간 쇼파)’라고 부른다. 처음 빨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별 단어를 쓸데없이 줄여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빨쇼라는 말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빨쇼에서 5분, 10분씩 나누는 이야기들은 힘든 공부의 도파민이고, 옥시토신이고, 때론 (그러면 안되는 수업 시간임에도) 멜라토닌이다.
나름의 낭만도 챙기고 있다. 민법총칙 교수님께서는 수업 30분 전, 우리를 데리고 벚꽃 사진을 찍자며 교정으로 나가주셨다. 다들 수상하게도 (평소에 입지 않던) 밝은 옷들을 꺼내입은 것이 퍽 웃겼다. 무채색이었던 삶에 30분이나마 밝은색을 덧입혔다. 수업 시간에 불쑥 나가서 산책하는 로스쿨생이라니.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수업 전후로도 최대한 낭만을 챙기려고 한다. 쉬는 시간에 고등학생들처럼 떠들기도 하고, 강의실을 오고 가며 실없는 농담을 나눈다. 그런 기억들로 하루를 짜낸다.
어느덧 중간고사까지 남은 기간이 열흘이 채 되지 않는다. 열람실에는 로스쿨 첫 학기 첫 시험을 앞두고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답안지에 아무것도 적지 못하는, 소위 ‘통백’의 주인공이 내가 될까,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을까,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고민을 더한다. 넘어가는 책장 속에서 매일 새로운 성취감과 불안감을 교환한다. 대개 후자가 더 커서 문제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단 해낸다.
어떤 말들엔 그것만의 의미를 머금을 수 있는 시한이 있다. 청구기간이 지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는 의미를 머금지 못한다. 승낙적격을 잃어버린 승낙은 효력을 가질 수 없다. 어색한 법학 용어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종료된 야구 경기를 대상으로 양 팀의 전력을 기반으로 하여 결과를 예측하는 것, 추리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추측을 늘어놓는 것, 우리를 둘러싼 말들은 각자의 유통기한을 지닌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나 긴 서론을 적었냐면, “로스쿨 첫 학기 공부는 분명히 즐거웠다”.
매번 끙끙 앓으며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붙잡다가 시간을 흘려보내지만, 대체로 그런 시간도 즐겁다. 사례형 문제집을 풀어두고 정답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나 확실하게 목차가 다를 수 있구나-하며 놀라지만, 그래도 분명히 즐겁다.
학업 옆에 즐겁다는 수식어를 덧대는 것은 조심스럽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는 성적 때문이겠다. 고려대 학부의 안락한 절대평가에서 벗어나 엄격한 상대평가의 늪에 놓여 있는 지금,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즐겁다는 말을 할 때는 괜히 책임이 따르는 느낌이다. 성적이 잘 나오면 본전이고, 낮은 점수를 받으면 ‘재밌게 했다면서 성적은 그 모양이네’라는 냉소를 받기 정말 쉬운 말이니까.
그렇지만, 분명히 재미있었다. 지난 한 달의 학업 과정들은 앞으로의 숱한 이야기 속에서 흐려질 것이다. 성적을 잘 받으면 잘 받았다는 이유로, 아쉬운 성적을 받으면 아쉬웠다는 이유로 지금의 시간은 달리 평가될 것이다. 멋모르던 새내기가 앞으로의 3년에 펼쳐질 숱한 어려움을 직시하지 못하기에 하는 말일 수 있다. 그래서, 첫 시험 전이라서만 할 수 있는 말을 서둘러 담아낸다. 흐려지기 전에, 왜곡되기 전에 서둘러 재미있었다는 말을 뱉어본다. 훗날 너무 지치고 힘들어 지나온 기간을 죄다 부정하고 싶을 때, 법학 공부의 시작은 치열함과 재미라는 단어를 동시에 얻어내는 것만큼은 성공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동봉한다.
... 물론, 열흘 뒤의 내 손에는 ‘잘 해냈다’는 징표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이곳의 종착지는 성과주의인가보다. 이제 다시 공부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