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탕비실 관리 어떻게 하시나요?
팀별로 돌아가며 관리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우리 팀 순서를 나중에 둘 수 없었기에, 첫 달 관리를 우리 팀으로 두었고 데일리 관리는 틈틈이 나 혼자 했다. 10분이면 되는 일이어서 혼자로도 충분했고, 실무가 많은 하위 직급들보다 내가 잠깐씩 시간 내는 게 편했다. 하지만 월 단위로 1번씩 해야 하는 냉장고(2대) 청소를 혼자서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간 관리되지 않은 냉장고를 정리하는 일은 내용물을 싹 비우고 내부와 외부까지 닦아내야 했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참 모순되게도... 관리 안을 마련하고 앞장서면서 막내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나 역시 막상 과장, 대리, 주임들에게 같이 하자는 말을 선뜻 내밀지 못했다. 실무 영역에서 하루 내내 열심인 그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만 같았다. 냉장고 청소를 퇴근 시간 이후에 할 수도 없는 일인데, 업무 시간 중에 짬을 내라고 하기에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쉽게 말해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결국 비겁하게 나도 그들 대신 우리 팀 막내에게 같이 하자고 말하고야 말았다.
집에서 냉장고 청소, 전자레인지 청소 한번 해본 적 없는 막내는 나를 도와 냉장고 속에서 나온 썩은 음식물을 버리고, 내부 선반을 씻어 닦아내고 베이킹소다를 이용해 전자레인지 내부까지 청소했다. 집에서도 하지 않았던 한 단계 깊은 살림을 강제 체험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불평과 욕을 쏟아내며 했을지 모른다.
청소하는 동안 몇몇의 직원들이 탕비실에 다녀갔고, 수고 많으십니다... 뭐가 많네요... 그냥 가기 멋쩍은 듯한 류의 말을 했다. 두 분의 팀장님도 왔다가 많이 남았어? 수고들이 많네. 했지만, 들고 나는 사람들 중 '저도 좀 도울까요?'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게 사회생활인 거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다, 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다면 화가 날 것 같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르고, 사실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다. 어쩌면 이것은 탕비실을 잘 사용하고 정리를 잘해야겠다는 걸 배우는 현장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무책임한 모습 그리고 탕비실이라는 공간이 아직도 얼마나 차별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곳인지 배우게 되는 현장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앞으로 나는 다른 팀 관리직원이 정리하는 일도 계속 같이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탕비실 이용할 때 한 번씩 주변 정리하고, 큰 손이 드는 냉장고 정리는 나도 도울 것이다. 각자 사용한 흔적만이라도 그때그때 잘 정리해 주면 누군가의 바쁜 시간을 쏟게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얼마나 더 이곳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있는 동안은 나부터 솔선수범하며 분위기를 만들어가기로 다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