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정성이라 생각했었지만 남편이 하는 요리를 보면서 요리도 아이디어가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예를 들어 보자. 닭죽을 끓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만들까?
일단 절차를 생각하는 내 경우 닭을 사서 찹쌀을 아래에 깔아 놓고 누룽지 백숙을 만든 다음 남은 살로 죽을 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남편은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는데회사에서 편의식으로 가져온 닭가슴 살이 메인이 된다.
밥 + 야채 + 찢은 닭가슴살 + 물 + 소금 + 불 = 닭죽
아주 초 간단 닭죽이다. 대박인 건 아이들도 잘 먹는다.
요리를 할 때 매번 육수를 내고 원산지와 제철 재료 상태를 살피는 나에게는 신선 함이었다.
한 번은 저녁에 피자를 먹고 싶다 했더니 신랑이 1초도 안되어 "내가 해줄게"라 말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피자 재료라고는 치즈와 양파뿐이었다.
"재료도 없는데 피자를 어떻게 만들어요"했더니 "잠시만 기다려" 소리 10분 뒤 피자가 나왔다.
재료는 다음과 같다.
라이스페이퍼(도우) + 일회용 케첩 + 양파 + 치즈 + 계란 = 피자
순간 감탄사가 나왔다. 집에 케첩도 없었는데 일회용 케첩 3개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고 케첩 대신 사용할 줄이야.
내 경우라는 토마토를 익혀서 케첩을 만들거나 한살림 케첩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피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갖춘 재료를 좋아하는 나에 비해 신랑은 반대로 편하게 대충 먹자이다. 성격이 그대로 요리에 반영되었는데 너무 웃음이 나왔다. 신랑 성격처럼 맛도 좋으니 지적 보단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제일 걱정 많았던 요리를 잘하니 다른 것은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맞벌이로 회사에 있을 때는 아이들 등하교뿐 아니라 놀이터에서 놀고 온다는 말에도 걱정으로 일에 집중이 힘들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지?
다치면 어쩌지?
길을 잃으면 어쩌지?
'어쩌지'는 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한시름 놓지만 제2의 걱정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가스 불 만지는 거 아닐까?
뜨거운 물로 다치지 않을까?
위급 상황 시 대피하는 방법은 알까?
나의 걱정은 정말 어쩌지 못할 정도로 많다.
이런 걱정 역시 다 사라졌다.
놀이터에서 놀고 와도 무슨 일 있으면 남편이 있으니, 간식을 먹을 때도 남편이 있으니 마음이 이리 편할 수없었다.그리 며칠을 보내고 있으니 '아, 내가 두 사람 벌이를 하면 남편이 집에 있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들었다.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게 되었다.
다만, 회사에서 두 사람 벌이를하기에는 내 능력 부족이다.
알고 보면 남편은숨고다. 진정한 숨은 고수인 남편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인테리어 사업 무척 기대가 된다.
어쩜 우리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 고수가 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고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