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pe Aug 12. 2022

손이 많이 갈 것 같아도 일단 도전

두부 강된장과 케일 쌈밥

루틴이 바뀌면서 요리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요리에 '도전'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회사를 다닐 때는 컨디션 조절을 한답시고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지키기 위해 금요일이나 주말에 요리를 시도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은 조급하지만) 몸이 편한 때인 만큼, SNS를 보다가 재미있는 레시피가 나오면 바로 도전해보는 중이다.


예전에 저장해뒀던 레시피 링크가 있다. 바로 두부 강된장과 케일 쌈밥. 건강한 재료들인 데다가 비주얼도 예뻐 보여서 언젠가 만들어보려고 저장해둔 것이다. 최근에 닭가슴살과 함께 구운 야채샐러드를 종종 해 먹었는데 재료도 그와 비슷해서, 한 두 가지 재료만 더 사면 되었다. 요즘 마트를 들르면 참 재미있다. 우연히 편의점에서 포켓몬 빵을 사게 된 이후, 보이는 마트마다 들르면서 구경한다. 주변에 있는 시장과 마트마다 가격 비교를 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확실히, 물가가 많이 오르긴 올랐다...)



애호박, 버섯, 두부를 작게 깍둑썰기한다. 나중에 숟가락으로 퍼먹기 편하게끔. 먼저 다진 돼지고기와 다진 파를 함께 볶으면서 파 기름을 낸 다음, 애호박과 버섯을 넣고 볶는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고춧가루를 넣어준다. 그러면 맛깔스러운 고추기름과 함께 더 맛있는 냄새가 올라온다.


그다음 물을 자작하게 붓고, 된장을 풀어준다. 이때 간 조절을 잘해야 한다. 예전에 국물이 자작해야 하는 음식을 할 때마다 욕심이 앞서서 물이 넘치곤 했다. 욕심을 좀 덜 부리자는 마음으로 물을 부으니, 딱 적당했다. 그렇게 끓이면서 졸이다가 마지막에 두부와 고추를 넣는다. 두부가 으깨질 수 있으니 살짝 섞어 데운다는 느낌으로. 저녁식사인만큼 두부와 고추는 아빠와 동생의 퇴근길에 맞춰 넣기로 했다.



문제는 케일 쌈밥이었다. 건강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예쁜 비주얼로 내 눈을 사로잡았던 주인공. 나는 요리를 하다가 이렇게 중얼거릴 때가 있다. "다음엔 다시 못할 것 같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레시피를 만났을 때 하는 말. 왠지 케일 쌈밥의 미래일 것 같았다.


씻은 케일을 냄비에 담고, 찬물을 채워 불에 올린다. 끓기 시작하면 30초에서 1분 정도 데쳐야 하는데. 생각보다 좀처럼 끓지 않았다. 케일 양이 많았나? 아님 냄비가 작았나? 아님 내 인내심이 부족했던 건가. 언제 끓어오를지도 알 수 없어 계속 가스레인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작은 기포가 생기는 것을 보자 내 마음도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데친 케일을 바로 찬물에 헹궈낸 다음 참기름, 소금, 깨로 양념한 밥을 준비했다. 그렇게 무념무상의 쌈밥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밥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 케일 옆으로 삐져나오고 해서 애를 먹었다. 생각보다 밥의 양을 적게 쥐어야 했다. 어느새 퇴근한 동생이 옆에 와서, 밥과 케일을 따로 두고 각자 싸 먹자고 했다. 애쓰는 내 모습이 신경 쓰였나 보다. 하지만 나는 처음 레시피를 보았을 때의 예쁜 비주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지 (^^)'를 되뇌면서 말이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망해서 중간에 집어먹은 것을 제외하고 21개의 케일 쌈밥을 완성했다.


만들어놓은 강된장에 두부와 고추를 넣고 다시 데우며 섞어준 다음, 넓은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그 위에 (망하지 않은) 케일 쌈밥을 한 줄로 올렸다. 물론 먹으면 금방 사라지고 말 음식이지만. 자기만족이었다. 이만큼 해낸데 대한 뿌듯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다음 케일 쌈밥은 그냥 셀프로 싸 먹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짭조름한 강된장과 심심하고 건강한 간의 케일 쌈밥. 특히 케일 쌈밥은 손이 많이 갔지만, 그만큼 먹을 때 쏙쏙 손쉽게 먹을 수 있음에 이상한 위안(?)을 느꼈다. 요리는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들었다. 나 자신이 먹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고, 또 예쁘게 꾸며 놓는 것 자체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그 자존감이 극대화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저장해놓은 레시피는 또 꾸준히 쌓이고 있다. 바보같이.


두부 강된장보다 케일 쌈밥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 듯…?


매거진의 이전글 비 올 때 생각나는 음식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