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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r 23. 2023

목욕탕 3

눈썹을 그대로 놔두시길

목욕탕에서 만나는 71살의 노인분이 계신다. 머리를 감다가도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서로 흰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더 반갑다. 머리카락 전체가 하얗지는 않다. 어깨 밑까지 길러서 파마를 하고 묶고 다니시며 가끔 자신이 밑 길이만 자른다고 하신다. 그림도 그리시니 손 솜씨가 좋은 분인가 보다.  양치질을 하며 옆으로 오신다. "근데 눈썹도 흰 털이 나네. 올해부터 나오는데 눈썹은 흰 털이 보기 싫더라구.그래서 두세 개 뽑았더니 있던 곳이 훤해져서 그나마 흰 털이 있을 때가 나아. 뽑으면 안 되겠어" 뽑아버린 털이 아쉬운지 눈썹을 손으로 문지르며 말씀하신다. 나를 향해 흰 털이 나오더라도 뽑지 말라는 얘기이다. 염색약을 조금 발라보라 했더니 눈썹에 기름기가 있어서 그런지 잘 안된다고 하신다.


털이 많던 젊은 시절에는 뽑고 밀고 깎고 자라는 족족 가만두지 않았다. 너도나도 갈매기 날아가듯 눈썹을 얇게 만들었다. 털은 지저분한 존재였고 여성스러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똑같지는 않지만 40살이 지나면 털들도 덜 자란다. 인위적으로 그리던 눈썹도 나이 들어가면 주름과 함께 예뻐 보이지 않는다. 자매인 75세 언니는 눈썹이 거의 없다. 펜으로 그리지 않으면 무섭다. 조카도 언니같이 밀고 깎고 해서 중년이 되니 눈썹 털은 아주 조금씩 자란다. 언니와 함께 그려야만 외출을 한다.  


뭐든 해도 예쁜 나이가 지나가면 민낯과 자연스러움이 멋스러운 나이가 온다. 화장을 하지 않았던 덕에 눈썹을 가만히 놔두었다. 길게 자라는 것만 작은 가위로 잘라준다. 31살 딸아이는 성화를 대는 소리에 눈썹 털이 존재하고 32살 며느리 그래도 손질해야 한다고 깎고 그린다.


그냥 놔두어보라. 나만의 매력이 있다. 많던 적던 지금이라도 원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려주자. 삐죽삐죽 올라오는 눈썹을 고마워하며 말이다. 뒷집 아저씨 딸아이 시집간다고 본인이 눈썹 문신을 하셨다. 편안해 보였던 모습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



2023년 3월 23일 목요일. 비가 천천히 오신다.

이내 이별을 해야 하는 털들인데 미리 민둥산을 만들 일이 뭐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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