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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8시에 클래식 공연을 보려면

중얼중얼

by 유진

생각보다 잘해야 한다.

뭘 잘해야 하겠나?

연주를 잘해야겠지.


일반 대중을 남부터미널역에서 20분은 걸어야 하는 예술의전당까지 발걸음 하게 만들려면, 그것도 콘서트홀이 아닌 IBK기업은행홀이나 리사이틀홀, 혹은 인춘아트홀로 ‘직접’ 찾아오게 하려면, 생각보다 매 순간 명작을 찍어내야 한다.


왜냐. 모든 사소한 계기를 운명적 순간으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때에 따라 합이 잘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높은 퀄리티의 서사를 그 안에서 '이미' 재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는 번뜩 깨닫게 된다.


“어, 뭐야, 클래식, 이 장르 뭐지?” (내가 그리하였으니..)


눈이 번쩍이는 감흥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해줄 만큼의 설득력이 소리와 선율에 가득해야 한다. 하루의 상념을 잠시라도 내려놓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 관중을 위해, 듣는 이를 위해서.


그렇다면 가장 가까이서 당신의 소리를 듣는 이는 누구인가? 사실, 연주자 자신이다. 결국 돌고 돌아 연주를 잘해낸다는 것은 눈앞의 관객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멀리 보면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일전에 주말 오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색다른 시야를 느껴보고 싶어 박스석에 자리를 예매했다. 그 자리의 시야가 어떨 것 같은가? 연주자보다 관중석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줄지어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보였다.


나는 어떤 관중이었을까. 이 세계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매번 새로움을 맞이해야 하는 초심자급의 청자였다. 관심 있는 공연이라면 미리 예습도 해 가는 편이다.


그날의 레퍼토리를 완전히 정복하진 못하더라도, 세 곡 중 한 곡은 이미 들어본 적 있었고 나머지 두 곡은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버전으로 익혀갔다. 실제 연주자들이 어떻게 표현할지,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지 감이라도 잡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믿음이 있었다.

아무리 영상의 음질이 좋다고 해도, 실제 공연장에서 듣는 것보다 나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나는 조금 당황했다. 방금 들었던 선율이 아예 없거나, 예상치 못한 뒤처짐이 가득했다. 절대 그리 하지 않을 것 같은 이력의 연주가들이 한가득이어서 더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


클래식 공연을 다니며 하나 확신하게 된 게 있다.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연주자가 몰입해 곡을 장악하면 누구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긴다는 것.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응시’하게 된다.


그 밤 8시의 무대는 어땠을까.

중구난방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최선은 아니었다. 미묘하게 끝까지 몰입도가 떨어졌다. 그게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나는 관객석을 보았다. 절반 이상이 “이 곡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클래식은 원래 어려우니까 그냥 졸지만 말자”는 얼굴이었다. 나는 탄식했다.


왜 그들은 이들의 집중을 이끌지 못하는가. 왜 마음을 빼앗지 못하는가.


클래식 연주자들은 단순히 잘해야 하는 게 아니다. ‘생각 이상으로’ 잘해야 한다. 서사를 이끌고, 캐릭터성을 분명히 하고, 잔잔한 곡일수록 치밀하게 소리를 응집시켜야만 일반 대중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 안주해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보던 사람’만 계속 향유할 것이다. 아는 지인들만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한눈에 반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은 만나기 어려워진다.


사람의 취향은 생각보다 확고하다. 한 번 어렵다고 느낀 장르는, 다시 마음에 들이기 쉽지 않다. 그것도 돈과 시간을 써가며 교양 수준의 난이도를 지닌 이 장르를 좋아하게 될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공연을 혼자서도 잘 다니지만, 함께하고 싶은 공연은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데려간다. 그럴 때마다 꽤 도박이다.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 그날의 공연이 몰입적일 수도, 무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상치 못한 날 지인을 데려갔는데, 그날의 연주가 무미건조하다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워진다.


단 한 번의 경험, 첫눈의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한다. 반드시!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이 장르도 그리해야 단 한 명이라도 발걸음하게 된다. 다만 클래식은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낯선 언어로 쓰인 세계다. 그러니 연주자들은 생각보다 더, 친절하고 예민하게, 끝없이 다가와야 한다.


인간적이고 생동감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치밀하게 연습하고, 소리를 모아달라. 서사를 그려달라. 이야기를 펼쳐달라.


무대 안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해달라. 그리해야만, 우리는 저녁 7시 반의 시작에서 밤 9시의 박수까지, 그들의 세계 안에 머물 수 있다. 음, 그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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