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에세이] 64인이 펼치는 팔풍의 몸짓, 일무
여기, 64명의 무용수가 있다.
그들은 소매통이 넓은 붉은 비단옷을 입고, 진현관이라 불리는 검은 관을 썼다. 왼손에는 약(籥)을, 오른손에는 적(翟)을 들고 있었다.
약은 무엇이며 적은 무엇인가. 약은 세 개의 구멍을 가진 작은 세로 관악기로, 예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아악기의 하나다. 일무를 출 때는 음을 내지 않고 왼손에 쥐어 태평과 안정을 상징하는 무구로 쓰인다.
적은 용머리 모양의 장식 위로 깃털과 술이 달린 막대로, 문덕과 평화, 조화를 뜻하는 의물이다.
약과 적을 든 예순넷의 단원들이 왜 이곳에 모여들었던가. 일무를 보여내기 위함이다. 일무란 무엇인가. 조선 왕들이 종묘대제에서 신에게 예를 올릴 때, 선왕의 신위 앞에서 바쳐지던 제례무, 곧 의식용 군무다.
어이하여 일무를 추는가. 계승을 위함이다. 조상의 전통과 문화유산, 업적 따위를 이어 나가는 일이다. 소멸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무엇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인가. 문화다. 왜 그리 해야 하는가. 한 번 사라지면 복원이 어렵고, 설령 복원된다 해도 본래의 형태 그대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다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이유가 궁금해 물음을 이어나가본다.
왜 우리가 일무를 추어야 하고, 응시해야 하는가. 그들은 답했다. 지나온 자들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뜻’은 무엇인가.
전장(全章)을 끊지 말라.
전장이 무엇이길래? 일무의 모든 곡과 춤을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추는 일이다.
왜 끊어져서는 아니 되는가.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본래 예순넷이 줄을 맞춰 추던 팔일무는 36명의 육일무로 격하되었다. 광복 이후 종묘제례악이 다시 정비되면서 비로소 팔일무가 제자리를 찾았다.
전장을 끊지 않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일무를 실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전통은 몸으로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중간이 끊기면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단다. 맥을 잇는 이유는 역사적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란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 오래도록 나를 붙들었다.
목격의 이유
그냥, 궁금했다. 64명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무용 공연을 한단다. 64라는 숫자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군다나 예악당이었다. 홍콩무용단의 <24절기> 무대를 통해 이 공간이 얼마나 깊은지 이미 지켜본 바 있지 않은가.
투명한 흰 천에 감싸인 무용수가 발 모양도 드러내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나던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번엔 예순 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같은 무대 위에 오른다고 했다. 그러니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있던 그날,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에 예악당 안으로 들어섰다. 로비의 인파가 상당했고, 관람객 연령대도 꽤 다양했다. 스님도 계셨고, 국악 전공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관계자들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나처럼 순전한 호기심만으로 온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지만, 로비의 분위기를 보니 어쩐지 무척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닐까 하는 기운이 스쳤다.
매표소로 다가가니 티켓이 분홍색 봉투에 담겨 나왔다. 분홍색 봉투? 그때부터 조금 특이하다—귀여워서—싶었는데, 프로그램북과 함께 전통 복장의 캐릭터 키링까지 받았다. 꽤 괜찮은 선물이길래 이어폰 열쇠고리에 금세 매달았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오늘 펼쳐질 일무에 대한 설명이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영상을 지켜보다가 프로그램북을 훑어보았는데, 아— 나는 이들이 왜 그렇게 친절했고 선물까지 내어주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29일, 그들은 종묘에서 왕들의 제사 때 올려지던 두 춤,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를 한데 모아 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보태평지무는 약과 적을 들고 나라의 평화를 비는 춤이고, 정대업지무는 칼과 창을 들어 조선을 세운 힘과 용맹을 기리는 춤이다. 이 두 춤을 64명이 함께 추는 팔일무로 재현해, 일제강점기 때 끊어졌던 전통을 다시 온전하게 잇는 무대였다.
그래서 관객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미를 위한 무대가 아니었다.
팔일무가 무엇인지, 왜 육일무가 되었는지,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이 춤을 이어야 하는지—그 모든 이유를 설명한 데에는 이만한 까닭이 있었다.
어쩐지 사회자가 시작과 중간에 등장해 맥락과 의의를 짚어주더라니. 프로그램북 안에는 오늘의 일무와 함께할 곡의 가사가 빼곡히 적혀 있더라니.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이 무대가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자리라는 사실을 체감하자 약간의 걱정이 밀려왔다. 내가 뭘 볼 수 있을까. 느낄 수나 있을까. 클래식만큼 어려운 교양도 벅차다고 여겼는데, 그보다 더한 것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렇게 한동안 실없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머지않아 오늘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어렵고 낯설어도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왔으니 봐야지. 경험해봐야지.
일무
일무에는 종묘제례악이 연주되었다.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이던 이 전통 궁중음악은 보태평과 정대업 두 갈래로 나뉜다.
무엇을 기억해볼까?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보자.
단원들이 보태평에 맞춰 동작을 펼칠 때, 예악당 무대 양옆에 있는 세로형 TV에 노래 가사가 띄워졌다. 가사 아래에는 간단한 해설도 함께였지만, 그걸 본다 한들 들려오는 소리와 글자를 온전히 맞춰가며 감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대 한가운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발음이 얼추 비슷한 구간을 찾아보며 ‘아, 세 번째쯤이구나’ 하고 짐작하며 흐름을 따라잡았다. 아는 언어이긴 하지만 가사에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니, 나 홀로 짝맞추기 놀이를 했다.
나보다 조금 위에서 흘러가는 소리를 바라볼 적엔, 멍한 생각을 나열했다. 소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음악이 왜 이렇게 흐르나. 듣는 이를 데려가진 않네. 멈추지도 않는구나. 타악기가 두드려질 때도, 성대가 크게 진동할 때도, 허공을 응시하는 소리가 나네.
‘문무’.
느리고 단정한 움직임이 중심이다. 보폭은 작고 일정하며, 방향 전환도 천천히 이루어진다. 팔과 손의 높이, 각도까지 모두 맞춰야 하기에 개별 동작보다 대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있다. 부드럽고 절제된 흐름 속에 태평과 안정의 의미가 스민다.
‘무무’.
박자가 뚜렷하고 동작이 크고 힘 있다. 걸음폭이 넓어지고 상체 움직임도 강조된다. 군무의 단단한 기세와 힘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64명이 같은 흐름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반복이구나. 같은 동작의 끊임없는 반복.
그들은 무엇을 반복했는가? 8명씩 8열, 64명이 천천히 같은 동작을 이어갔다. 약과 적을 들고 손을 교차하고, 서 있다가 상체를 일직선으로 유지한 채 구부린다.
적을 든 손을 바깥 아래로 그려내고, 이윽고 팔을 높이 들어 적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 다시 돌아오는 방향으로 넓은 원을 그리며 무릎을 굽힌다.
가슴 앞에 적을 얹고, 약을 적과 동일한 높이로 뻗고, 막대를 뒤로 하고, 수평선을 긋듯 원을 그린다. 몸을 옆으로 완전히 틀어 양손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도 속도가 거의 일치했다.
왜 저 속도로 팔을 내리고, 몸을 틀고, 무릎을 굽히는지. 30분 넘게 같은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다시 같은 물음을 띄워 올렸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보고는 있지만 딱히 해석할 거리가 없으니 갈피를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한눈을 팔 수 없으니 여러 의미로 답답했다. 어떻게든 응시할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왜 포기를 모르느냐고? 저 사람들이 무언가를 행하고 있음이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이 ‘천천히’이지, 손을 아래 두었다가 머리 위까지 올리는 그 전체 과정을 64명이 같은 속도로 수행하는 일 아니던가. 그 유지함에 얼마나 큰 조절력과 힘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의 표정은 어땠더라.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의도적으로 비워둔 얼굴이었다. 사사로운 감정선 하나 끼워 넣지 않고, 정해진 동작을 그대로 이어갔다. 정해진 틀대로 동시에 움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질문의 질문을 거듭하는 일뿐이었다. 내가 응시할 것은 무엇인가. 사람인가, 동작인가, 소리인가. 이 역사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서 있어야 하는 걸까. 저 사람들을 그저 지켜보면 되는 걸까. 그 정도로 충분할까.
어려웠다. 물음을 나열해도 감이 도통 오지 않으니, 무대 위에 두었던 시선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돌렸다. 1층에 있는 촬영 카메라가 눈에 잡혔다.
카메라의 작은 화면 속 무대 장면이 눈에 담겼다. 그는 적의 술을 잡아내고, 맨 앞줄 무용수의 담담한 표정을 잡고, 대열의 전경을, 손동작을 잡았다.
큰 그림으로 한 번, 화면으로 한 번. 그렇게 시선을 달리하며 번갈아 응시하기를 몇 번 이어가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자연스레 집중이란 걸 하고 있었다. 무념무상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들을 온전히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을 모으고 팔을 뻗고, 목검과 목창을 번갈아 들고, 도구를 높였다가 내리며, 시선을 한곳에 둔 채 움직임을 이어갔다. 70분이 넘도록.
나도 눈을 떼지 않았다.
70분이 넘도록.
잇는다는 것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당장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명확히 문장으로 나열하진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가지 생각만은 들었다. 글은 써야겠다. 써야겠네. 뭐 느끼지도 못했다면서 왜 쓰려 하냐고? 그러게 말이다.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 모르겠다. 그냥, 그리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잠깐. 막 이 문장을 적는 지금, 문득 그 답이 떠올랐다. 뭘까?
잇기 위함이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전통을 이으려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내가 한 일이라고는 무엇이었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뒤로 넘겨지는 약과 적의 느린 흐름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왜 64명이 모였는지, 왜 종묘제례악을 어떤 여건에서도 이어 나가려 하는지, 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앉아만 있었다. 미안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내 눈앞에는 거대한 호령이 드리워져 있었다. 형태 없는 꾸짖음 같기도 하고, 간절한 바람 같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무엇을 전하려 했더라.
지나온 상처를
잊지 말아라.
그들이 이리 모여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당부가 길게도 귓가에 맴돌았으니.
저 쉬운 부탁이 내 마음에 오래도 남았으니,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잊지 마라, 그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