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코르푸 섬에서.
남쪽 해안가 작은 마을에 있는 별장 같은 시골집을 빌렸다. 여주인은 해수욕장이 집에서 50미터 지점에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어림잡아 그 두 배의 거리였고, 말이 해수욕장이지 초라하기 그지없다. 백사장은 모래보다 말라빠진 해초가 더 많아 퍽석한 흙길을 걷는 기분이다. 게다가 벌레처럼 젖은 종아리에 마구 들어붙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바닥에 눕거나 앉기는 더더욱 싫었다. 또 물에 발을 담그면 옥빛이나 남색 바다는 온데간데가 없고 뿌연 흙먼지처럼 진흙탕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수면이 낮아 수영하기에 적당치 않을뿐더러, 바닥은 온통 돌투성이에다 이끼가 잔뜩 끼어 위험하기조차 하다. 혹여나 미끄러져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나라를 떠나 멀리서 난감한 처지에 놓일 판이다.
바다의 파도는 출렁거리기보다 중얼중얼거린다. 잔잔한 호수 같다.
이러한 조건 탓에 지금까지 서정적 분위기를 잘 간직할 수 있었나 보다. 그러나 이 평온한 분위기도 멀지 않아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미 바캉스를 위한 펜션이나 호텔들이 여기저기 들어선 가운데, 바다를 전망으로 공사 중인 곳도 더러 보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다른 곳처럼 산업형 관광지로 변할 날도 시간문제구나 생각하니 아쉬움부터 앞선다. 넓은 오지랖일까?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낭만적이고 시적이다. 작은 항구를 낀 고즈넉한 시골의 어촌마을, 이 목가적인 풍경은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 바다 건너편 저 멀리 아득히 이어진 그리스의 본토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정취 속에서 수영보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스케치가 하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사실 어촌이라고는 하나 불과 두, 세척의 작은 배가 정박해 있을 뿐, 이미 그 영예가 사라진 지는 오래된 것 같다. 그럼에도 어느 아침에 이동 생선장수의 소형 트럭을 보고서 반가운 마음으로 점심거리 생선을 사 들고 왔다. 프랑스와 달리 아직 근방에서 고기잡이 배가 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프랑스 근해에서는 고깃배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그래서 금방 잡은 날생선을 보기가 힘들고 매우 비싸기 때문에 먹기도 쉽지 않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중 하나다.
하루는 불쑥 부슬비가 내리던 가운데 바닷물로 빠져드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오징어 튀김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그 작은 항구에 하나 있는 식당으로 어거정어거정 들어갔다. 식당의 범위가 결코 작지 않다. 안팎으로 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삼대가 함께 운영하며 모여 사는 분위기다. 이 작은 시골에 어떤 손님들이 찾아와 이 공간을 다 채울까 살짝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현재는 우리 둘 뿐, 손님이 없으니 썰렁하다. 방금 세 사람이 요트에서 내려더니 들어온다.
오징어가 신선해서 맛은 좋다. 하지만 가격만큼은 시골이라고 절대 얕보아서는 안되었다. 애초 메뉴판이 없어 약간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는데, 부디 바가지요금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집은 넓고 깨끗하다. 이웃집과의 거리도 멀어 서로 방해를 받지 않는다. 아주 조용하다. 널따란 뜰 끝에는 둥치가 한아름 되는 올리브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우거져 있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마당 한가운데서 새까만 띠처럼 가늘고 긴 줄이 매우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흡사 미니아튀르 고속도로를 연상케 한다. 이게 뭔가 하고 가만히 다가가 살펴보니 이런!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개미들이 새까맣게 양쪽 방향으로 열을 지어 열심히 분주하게 움직있고 있다. 뭔가를 나르고 있는 일개미들이다. 그 가운데서 몸집이 약간 더 크고 양쪽에 날개를 가진 여왕개미도 두 마리나 보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지나다닌 길에서 고랑처럼 얕게 파인 흔적이다. 경악스럽다. 마치 젖은 땅에 지렁이가 기어간 흔적처럼.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이 작은 미물에 불과한 개미들이 얼마나 수없이 이 길을 왕래했으면 잔디가 파헤쳐진 채 다시 자라지 못했을까. 잡초마저도 고스란히 그들에게 길을 내어 주고 있었다. 이 반복된 행위의 노력에 풀조차 숨을 죽인 것이다. 분명 한 마리의 개미가 이루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공동체가 이루어낸 엄청난 힘의 결과다.
수영하기 딱 좋은 날이다. 섬에서 멋지기로 손꼽힌다는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거의 왕복 5킬로미터를 걸었다. 맹렬하게 내리쬐는 땡볕아래서 오솔길도 아닌 아스팔트 포장길을. 신발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발이 아스팔트길에 닿을 때면 그 열기가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도로가 펄펄 끓어올랐다. 내리막길은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오르막길에서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멋진 해수욕장이라도 이 더위에 걸어서는 두 번 다시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자동차가 '쌩'하니 매연이라도 뿜고 지나칠 땐 마구 짜증이 났다. 부러운 마음에서 화가 났다. 운전면허증을 들고 오지 못한 어리석음에 또다시 화가 났다. 후회가 막심한 순간이다.
하나 그때뿐. 하루 이틀 지나면서, 가까운 곳에서 은밀하고 소담한 해수욕장을 찾아 매일같이 수영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전망 좋은 카페에 들러 우조 한잔으로 갈증을 해소하며, 들꽃을 꺾어 물컵에다 꽂아 놓고 내 집처럼 분위기를 내기도, 그늘을 찾아 소설책에 빠져들다 깜빡 낮잠에 빠지기도, 어찌 되었든 간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 고통스럽던 순간마저도 거친 껍질이 벗겨져 추억 속 말랑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있었다.
만약에 바캉스를, 여행을, 특별한 사건도 없이, 파라솔 아래 비치의자에 누워서, 밋밋하고 편하게만 보낸다면 그냥 집에서 보낸 일상의 휴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아주 힘들거나 좋은 기억들은 추억 속 알찬 흥밋거리가 되어 오랫동안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 인생이란 희로애락이라는 양념이 든 서사다. 양념이 빠진 인생은 싱거울 뿐이다.
해수욕장은 고운 황금빛 모래가 까마득히 끝도 모르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늘 한점 없는 곳이라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파라솔도 없다. 그런데 백사장 끝에 촘촘히 설치된 파라솔이 보인다. 호텔이다. 수영장까지 갖추었다. 그리고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길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다. 마을이 온통 여름한철 관광객을 위한 영업소다. 호텔 수영장 앞에 빼곡하게 설치된 파라솔과 그 아래 비치의자에 수영복 차림으로 빈틈없이 누워있는 사람들. 그 광경에서 양 떼들을 연상시켰다. 양들은 한결같이 무리 지어 움직인다. 모험심이 없어 거의 단독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인가? 어쩐지 그 모습이 전혀 여유롭고 편안하게 보이지 않았다. 숨 막히게 보인다. 답답하지는 않은지? 가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들도 분명 도심의 밀집된 공간을 탈피해 여기까지 왔을 텐데, 꼭 저렇게 무릎이 닿을 정도 밀착되어 무리들 속에서 표정 없이 지내고 싶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비록 자동차 없이도 가능한 매일같이 재미를 바꿔가며 수영도 하고, 올리브 숲을 거닐기도, 오솔길 따라 때때로 풀숲을 헤쳐가며 약간의 모험도 즐겼다. 그 덕분에 걷기 운동을 충분히 대신했다.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도 못했던 불안한 순간을 맞이했다. 아침나절에 집주인은 자동차로 마을의 버스정거장까지 친절하게 태워주었다. 국제항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정된 도착시간이 지났음에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우리 곁에 있던 북유럽에서 온 부부가 조바심을 내며 우버택시를 예약한다. 매우 촉박한 듯싶다. 다행히도 우리는 시간적으로 약간의 여유를 두고 나왔기 때문에 그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버스가 도착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버스가 섰고, 문이 열렸다. 버스에 막 올라타려는데 개찰원이 문을 막아선다. 자리가 없으니 다음 버스를 이용하란다. 이 버스를 타지 못하면 예약한 배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무조건 태워달라고 청했으나 극구 반대다. 막무가내다. 곧 다음 버스가 올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휑하니 떠나버렸다.
우리는 사실상 그 말을 전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리스인들의 말에서 익히 모순된 어폐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속절없이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다음 버스는 두 시간 후에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우버택시를 불러야 하나 서로의 의견을 내는 중에 도로 저 끝에서 내리막길을 휘청거리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버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개찰원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좌석까지 많아서 골라 앉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물론 배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