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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로 Nov 08. 2024

학교폭력. 그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피해자들의 구원

드라마 더글로리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재밌게보았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좋아하는편은 아닙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호흡이 길고 적어도 6편이상은 화수가 정해져있는 영상을 꾸준히 볼만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라는 것을 제대로 본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잘나질 않네요. 재밌다고 소문난것들중 흥미가 동하는것은 유튜브요약집으로 대충 몇개보다 결말만 보고 그런식이었습니다.

더 글로리는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보게되었습니다. 사실 임지연이라는 배우는 더 글로리를 통해 처음 알았고 극중 아는 배우라고는 이병헌과 올인을 찍었던 송혜교 하나뿐이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 쇼츠에서 학창시절 괴롭힘당하는 문동은에 관한 짤을 본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아주 솔직하게는, 뭔가 자극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저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장면, 그 장면이 지나가고 주인공이 와신상담하여 복수를 행하는 플롯은 제가 좋아하는 한 장르소설과 너무도 닮아있었습니다. 바로 무협소설말입니다.



아무튼 무공도, 비결도 없는 현대 시대에서 주인공의 복수는 어떻게 이루어질것인가에 대한 기대로 영상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첫감상은 학교폭력에 대한 연출이 꽤나 잘되어있었다였습니다. 복수를 위한 빌드업과정을 훌륭히 마쳐야 나중에 주인공의 복수가 더욱 처절하고,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법이니까요.

저도 10대시절을 지나왔지만, 10대 아이들의 어떠한 면모는 딱 한가지의 얼굴만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0대의 학생들은 순진무구한면모도 있지만, 그에 비례한만큼의 잔인함도 다른얼굴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곤충을 좋아하던 소년은 잠자리를 잡아 웃으며 날개를 찢어버리고, 아무런 죄책감없이 다른 잠자리를 향해 움직입니다. 물론 10대중후반부터는 그런일이 줄어들지만 사실 동심속에서 순진함과 잔인함의 차이는 종이 한장,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적은 차이이지않을까 생각하던시절이 저도 있었습니다.

잠자리를 좋아하여 웃으며 날개를 쥐어뜯던 유년기를 지난 청소년들이 화면안에 있습니다. 잠자리가 아니라 나약한 친구를 타겟삼아 그녀 날개를 비틀어 찢어가는 과정의 웃음이 더욱 소름끼치는것은, 그 친구들은 문동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점이 확실하기 때문일겁니다.

10대시절에 겪는 학교폭력이라는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잔인합니다. 모든 일은 친구라는 미명하에서 이루어지고, 친구가 인생의 전부인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의 피해자에게는 구원이라는것이 없습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친구가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학교를 떠나는 방법 뿐이지만, 인생을 고작 십 몇년 살아온 학생에게 학교를 떠난다는것은 곧 인생에서의 이탈과 다름이 없습니다. 탈선한 기차는 고쳐주는 수리공들이 항상 대기중이지만, 탈선된 인생은 감히 수리공을 자처할 사람이 흔치않습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시가 되어오고있고, 그중에는 무척이나 효과적으로보이는 방법들이 있기도합니다. 우리가 아는 영화 '말죽거리잔혹사' 속의 주인공처럼 일진들을 쥐어패는 무력을 갖추는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하지만 학교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학생들간의 학폭은 사실 신체적인 강압보다는 정신지배에 의한 내부적붕괴가 더 큰 후유증을 가지고 온다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학교 다니던시절 일진한테 작정하고 달려들어서 줘패놓으니까 학교생활 편해졌다는 수기들은 어쨌든 스스로를 구원한 일화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더글로리 속 문동은에게 싸움 잘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요? 제가 생각해보았을때 단순히 싸움만 잘해서는 안됩니다. 기본적으로 평균이상의 외모에 싸움을 무척 잘하고, 때에따라서는 필요이상의 폭력을 행할수있는 잔혹성,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것을 무마시켜줄 수있는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갖춰지더라도 그 학급반 아이들이 문동은을 이전과는 다른, 동등한 친구로서의 문동은으로 봐줄지가 의문으로 남습니다. 얼굴은 예쁘지만 가난하고 다소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찍혀버린 그녀의 학교생활은 일종의 관성을 지니고 계속해서 암흑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학창시절을 보내보신분들은 대부분 느껴보셨겠지만, 학교안에서 어떠한 '이미지'로 낙인찍혀진 친구들은 3년내내 그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인것이든, 부정적인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sns까지 발달해서 한 학교에서 왕따는 다른학교로 전학을 가도 왕따라고 합니다. 잔인하죠.

차라리 남학교의 싸움에서 지는바람에 빵셔틀이 되어버린경우는 학교생활의 궤도를 돌리기 비교적 쉬운편일겁니다. 어쨌든 자기를 괴롭히는 놈 한명만 제대로 꺾어놓으면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그걸로 끝이거든요. 더글로리 속 문동은 피해의 핵심은 바로 박연진이라는, 같은 여학생으로부터의 멘탈적 파괴입니다. 가끔은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의 문제에서 더욱 답을 찾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바로 이런점때문일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살아'라는 일본책이 한국에서도 히트를 친적이있습니다. 아마도 읽어보신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습니다. 책을 읽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10대여학생들에게서 행해지는 이지메라는것은 너무도 잔혹합니다. 그저 뭘모르고 잠자리 날개뜯는 유년의 웃음소리보다도 청소년기의 '학교폭력'이 소름끼치는점은 그 피해의 양상을 다들 알고있으면서도 그런행동을 한다는점입니다. 마치 어떻게 해야 하나의 인간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지 연구하는것처럼 느껴질정도로요.

개인의 철저한 파괴. 부모나 학교에서도 해결법을 찾지못한 위에적은 책의 저자 오히로미쓰요씨는 15살의 나이에 할복자살을 시도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그 처절함에 내 뱃가죽이 아파오는 착각까지들게되는데요. 칼로 배를 긋는순간 너무나 아파서 곧바로 후회했다는 작가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오히로씨는 그 뒤로 아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학교를 자퇴하고 정신적으로 붕괴된 상태에서 자신을 받아주는곳이라면 어디든 좋다라는 일념으로 떠돌다 야쿠자의 아내가 됩니다. 그때가 그녀의 나이16살이었습니다.

5년후 야쿠자와 이혼하고 주점에서 일을하다가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됩니다. 이탈된 인생행로를 고쳐줄 수리공이 그녀의 인생에 등장한것입니다. 아버지의 친구는 오히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너의 인생이 망가진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 너 자신을 망가뜨리는것은 너 스스로의 책임이다'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고라는것을 해준 어른은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이 처음이었다고합니다. 고작 저 두마디로 인생이 뒤바뀌었다고?라고 의문을 표하기전에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가진 말과 글의 힘을 되도록 크게 생각하고 살아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별뜻없이 전한말이 듣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위로가 되었던 경우를 우린 충분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던진 몇마디로 사람을 주저앉게 만드는 일은 그보다도 더 흔한일이죠.

아무튼 저 뒤로 오히로씨는 공인중개사자격증을 취득, 그러다 법무사에 도전하여 법무사자격증까지 따게됩니다. 그리고 결국 변호사 자격증까지 획득하게되는데요. 동급생, 같은 인간에 의해 탈선된 인생행로가 제 궤도로 돌아오는데에 필요했던것은 진정한 어른, 역시 같은 인간의 애정어린 조언 몇마디였습니다.



더글로리속 문동은도 어쨌든 복수를 마치고 허해진 마음을 위로한 존재는 역시나 주여정이라는 인간의 존재였습니다. 인간을 가장 증오하는것도 인간이고, 인간을 가장 사랑하는것도 결국 인간이라는 구절이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평생갑니다. 어린시절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옅어지긴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고 느끼는데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직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준 상처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다 여물지못한 곳을 미리 헤집어 놓으면 그 상처부위는 완전히 아물지 못합니다. 온전한 인격체의 완전한 파괴가 아직 미성숙한 인격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참회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해서 다행이라는 생각 이전에, 이제는 아이들의 문제로만 치부되던 것이 수면위로 떠올랐다는점에서 저는 이 더글로리라는 작품에 높은점수를 주고싶습니다. 드라마속 주인공처럼 복수를 하는것도 속 시원한 일이겠지만, 저는 그보다도 이제는 학폭이라는 지옥에 빠진 학생들을 구원해줄 외부인들의 존재가 이전보다는 확연히 늘어났을것이라는 기대를 품게된 점. 남의 눈에 눈물나게 만드는 삶에는 업보가 따른다는점.


제가 좋아하는 무협이라는 장르와 비슷하여, 단순히 그 점이 좋아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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