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에도, 퇴사 후에도 연락하고 싶은 조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전략
웬일인지 출근이 늦어지는 직원, 그리고 낯선 번호에서 걸려오는 전화.
“OOO컴퍼니 인사 담당자 분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ㅁㅁㅁ님의 퇴직 의사를 전달하고자 연락 드렸습니다.”
믿기 힘들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퇴사 풍경이다.
이른바 ‘퇴사대행’이라고 불리는 이 서비스는 퇴사를 희망하는 직원 대신 퇴직 의사를 회사에 전해주고, 퇴직금 정산이나 각종 퇴사 절차, 심지어 사무실 짐까지 대신 정리해 주기도 한다. 퇴사대행 회사 중 하나인 M사에는 하루 평균 약 200건의 퇴사 의뢰 문의가 접수되고 있으며, 일본 기업의 인사담당자 중 약 23%는 퇴사대행을 통한 퇴직원 접수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CNN은 이러한 일본의 퇴사 문화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연휴나 휴가 시즌을 앞두고 서비스 의뢰가 급증한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이렇게 퇴사대행 서비스가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수직적이고 딱딱한 조직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상사에게 직접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 제3자의 힘을 빌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퇴사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몸이 아픈데도 병원에 다녀와서 곧바로 격무에 시달렸다’, ‘퇴사 의사를 밝혔음에도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했다’, ‘사람들 앞에 가면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을 짓게 되어 이야기를 못 꺼냈다’ 하는 등, 사소해 보이지만 여러 차례 작은 시도가 반복되다가 결단을 내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사표를 내면 그 앞에서 찢어버리거나 무릎을 꿇게 하는 등 더 강압적인 문화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거의 없지만 조직 내에서 퇴사를 결심한 구성원들이 겪는 압박은 비슷할 것이라 짐작된다.
일본의 한 채용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퇴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20대가 18.6%, 30대가 17.6%, 40대가 17.3%로 비슷한 비율을 보였고 50대도 4.4%로 드물게 있었다. 20~30대의 경우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퇴사 프로세스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40~50대의 경우 퇴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예상되는 갈등을 피하고자 전문 업체의 힘을 빌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종별로는 영업직이 25.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크리에이터/엔지니어가 18.8%, 기획/경영관리 등 지원직이 17%로 그 뒤를 이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나 사람과 대면하는 스트레스가 높은 직종일수록 퇴사 대행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퇴사를 직접 이야기하지 못할 정도로 소통이 어려운 조직문화는 기존 구성원들에게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 동료가 말 한마디 없이 조직을 떠난다면, 퇴사대행사의 전화를 팀원이나 팀장이 받는다면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들이 퇴사하지 않도록 리텐션 전략도 필요하지만, 퇴사를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털어놓고 말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안전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부터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의 한 IT 기업에서는 “고를 수 있는 면접관”이라는 채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채용 단계에서부터 지원자의 눈높이에 맞는 대화가 가능하도록 면접을 설계한 것이다. 지원자는 면접 전에 채용 사이트에서 면접관 후보들의 업무 분야, 경력사항을 읽어보고 원하는 면접관을 지정하여 면접을 볼 수 있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커리어 패스를 가졌거나 회사/업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선배 직원과 면접을 보는 과정은 지원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20대 사원들의 경우 상사/선배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해서 조직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업무를 배우는 과정에 대한 불만이 컸다. 과거에는 어려운 업무를 갑자기 맡아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일을 배우곤 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방식이 직원들을 떠나게 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팀장과 선배사원들도 사실 제대로 업무를 전수받거나 대화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어떻게 일을 가르치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 일대일 대화법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기업이 늘고 있으며, 교육 이후에 오히려 선배들의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반응도 많다고 한다.
퇴사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이유를 보면 ‘퇴사 절차가 귀찮거나 어려워서’라는 답변도 순위권에 있을 정도로 퇴사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퇴사 프로세스를 모를수록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규 입사자에게 온보딩(On-boarding) 프로세스가 있는 것처럼 퇴사자에게도 오프보딩(Off-boarding) 프로세스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세스에 따라 잘 퇴사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퇴사 이후에도 알럼나이(Alumni) 제도 등을 활용하여 협업을 하거나, 재입사를 추진하는 등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관리하기도 한다.
아무리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던 조직과 함께 일하던 사람과의 이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동료, 선배가 있고 상사에게도 직접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작은 대화가 쌓이고 쌓여야 어려운 이야기도 두려움 없이 꺼낼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퇴사대행 서비스’를 듣고 솔깃한 사람이 있다면, 잠시 그 마음을 내려놓고 동료와 티타임을 가져보시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