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꿈에 그린다는 디즈니크루즈를 탄다는 건 우리에게도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두 작은 꼬마들과 함께 15시간 30분( 텍사스 경유 ) 동안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까지 날아가야 했다. 아이들에게 밥차가 총 4번 지나가는 비행기를 타고 한밤 코~자야 미국에 도착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밥차는 기내식을 뜻한다. 일본이나 홍콩등 밥차가 한번 정도 나오는 비행기는 여러 차례 경험이 있었지만 아직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는 건 꽤나 큰 모험이었다. 신랑과 의논 끝에 아이들이 어릴 때 열심히 다니자고 의견을 모았고 이 장거리 비행을 기점으로 우리가족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가족'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물론, 디즈니크루즈를 미국에 가야만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캐나다 서부에서 출발하는 알래스카로 가는 라인도 있고 유럽을 항해하는 다양한 디즈니 라인도 있지만 이 일정들은 미국 동부를 주로 항해하는 루트에 비해 훨씬 더 비싸다. 미국 동부에서 출발하는 디즈니 크루즈는 비교적 가성비가 좋아 3살 6살 아이들을 키우는 우리들의 구미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이애미를 출발해 바하마와 디즈니 섬(Castaway cay) 그리고 키웨스트(미국 최 남단도시)를 거쳐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오는 4박 5일 일정의 디즈니 크루즈가 1인 기준 $700 정도였으니 꽤 괜찮은 상품이었다. (2016년 기준)
디즈니크루즈는 온갖 디즈니캐릭터들이 총 출동하는 떠다니는 디즈니랜드와도 같다. 추억의 미키마우스부터 최신 캐릭터까지 모두 함께 배에 타고 4박 5일간 함께 여행한다. 객실도 디즈니 캐릭터들로 꾸며져 있고 크루즈 시설 곳곳이 모두 귀여운 인테리어 천지다. 식당의 인테리어도 물론이거니와 식기류와 나오는 음식들, 예를 들어 팬케익과 아이스크림 등도 모두 미키마우스 모양이다. 심지어 식사를 하고 있으면 캐릭터들이 식당에 깜짝 방문해 아이들이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고 응원해 주며 즐거운 포토타임을 갖는다.
-갑판 위의 워터 슬라이드-
조식을 마친 후 9층 갑판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오늘은 기항 관광이 없이 All day 배에서 보내는 날이다.
하선해서 따로 관광하는 일정이 없더라도 여전히 쉴 틈이 없다. 날이 좋아 아이들과 9층 야외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수영장은 총 6개인데 그중 2개는 only for kids 키즈존이다. 빨간색 옷을 입은 가드언니가 아이들을 철벽 보호하고 있다. 부모들은 둘러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맥주 타임을 갖는다. 조식을 먹고 점심도 먹을 예정이시간 식간에도 상시 뷔페가 준비되어 있다. 끼니를 놓친 승객들이나 신나게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노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인데 음식의 퀄리티가 꽤 높은 편이다. 6살 지환이는 처음으로 미로와 같은 워터 슬라이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5세~14세까지만 탈 수 있는 ONLY KIDS 전용이다. 평소에 겁이 많은 아이라 놀이터의 직진 미크럼틀도 큰 맘을 먹어야 탈 수 있는 아이인데 디즈니 크루즈의 노란 꼬불이 워터 슬라이드는 넘사벽이다. 하지만 지환이보다 더 작은 외국아이들이 까르르 즐거워하며 몇 차례나 반복해서 타는 모습을 보니 지환이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 지환이도 할 수 있어! 직접 타보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 엄청 재미있을 거야~"
용기를 내어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표정과 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겨우 함께 올라갔지만 아이는 자신이 없다고 머뭇거리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 제가 아이를 안고 함께 내려가면 안 될까요?"
"NO. SORRY"
한국에서는 엄마 무릎에 앉혀 함께 태워주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절. 대.로 안된단다.
뒤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각국의 꼬마들은 덩치가 큰 동양 아이가 왜 우는지 갸우뚱하더니 다시 꺄~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슬라이드를 탄다. 싫으면 그냥 내려가자고 할 수도 있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지고 다시 용기가 생길 때까지... 그렇게 한 줄 서기의 밀침을 당한 지 십여분이 흘렀을까?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타고 내려가니 쉽게 포기는 못하겠는지 난간을 꼭 잡고는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이제 높이 올라와 있는 게 익숙해진 걸까? 한번 타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10분을 어르고 달래는 동안 아빠는 아이의 '역사적인'슬라이드 성공기를 영상에 담겠다며 미끄럼틀 도착지점에서 팔이 빠져라 카메라를 들고 있다. 부모의 바람과 아이의 용기가 통한 걸까? 그렇게 지환이는 눈 질끈 감고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인생 첫 슬라이드를 해냈다. 겁 많은 아이의 용기가 대견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기뻐한 사람은 슬라이드 위에 있던 담당 안전 요원 언니다. 아이가 내려가자 기다려준 엄마에게 엄지 척을 날려주니 함께 긴장했던 나의 마음이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후 지환이는 여전히 긴장되지만 재미있다며 네 차례나 더 슬라이드를 즐겼다. 뭐든 처음이 떨리고 힘들다. 속도가 느린 아이들을 빨리 전진했으면 하는 욕심에 자칫 뒤에서 밀었다가 넘어져 다칠 수 있다. 저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건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작은 에피소드지만 지환이의 디즈니크루즈 인생 첫 워터슬라이드는 오래오래 우리의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었다.
-후크선장, 구피 등 캐릭터와 인사해요 -
크루즈에서 사는 4박 5일 동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귀여운 '탈'을 쓴 캐릭터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디즈니 주인공을 만나는 일정은 매일 아침 방으로 배달되는 신문'Navigat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포토그라퍼들과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데 어린이들에겐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지출의 세계로 안내하는 또 다른 마케팅의 일종이다.
꼬마 승객들은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당연히 무료이고 한 줄 서기만 잘하면 된다. 신데렐라나 라푼젤 등이 등장할 때면 금발의 예쁜 서양 꼬마친구들도 함께 드레스를 입고 나와 줄을 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외국 친구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환브로의 차례가 다가왔다. 내성적인 지환이는 좋으면서도 부끄럽기만 하다. 둘째 려환이는 만화에서만 보던 캐릭터가 현실에 등장한 게 너무 신이 나는지 3배는 큰 인형아저씨한테 몸을 던진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Hello~", "I love you" 따위지만 사실 그다지 긴 말이 필요하진 않다.
그래도 아쉬운 엄마는 한마디 건넨다.
"우리가 너네 만나러 한국에서 여기까지 15시간 비행기 타고 왔다. 대박이지?"
표정을 바꿀 수 없는 구피는 손으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우리가 인사하고 개인 사진을 찍는 동안 전문 포토그라퍼들은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낸다. 매일 저녁을 먹고 나오면 식당 입구에 사진들이 쭈~욱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승객들 사진도 구경하고 우리 가족이 찍힌 사진을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다. 물론, 이 '작품사진'들은 유료이다. 꽤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해서 실제로 구매하지는 않았는데 우리가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초점이 잘 맞지 않아 한 장 정도는 구매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디즈니가 배출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컬러 TV가 나오기도 전부터의 미키마우스 이야기와 어마어마한 흥행을 일으킨 토이스토리는 물론 어른이 봐도 재미있는 신개념 TV시리즈 꼬마의사 닥터 맥스터핀스 그리고 이젠 신데렐라 보다 더 유명한 엘사 공주님의 겨울 왕국까지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힘든 대작들을 보유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사는 보여줄 작품들도 자랑할 캐릭터들도 끊임없이 많다. 일반 크루즈에서는 댄서들의 공연이나 밴드들의 공연, 마술쇼 등을 볼 수 있다면 디즈니 크루즈에서는 당연히 디즈니 영화사의 작품들과 그 이야기들을 각색한 뮤지컬등을 볼 수 있다. 해가 넘어가는 저녁시간이 되면 기항지 관광을 나갔던 승객들이 집이 있는 마을로 돌아오듯 하나 둘 돌아오고 어느새 크루즈는 다시 야간 행사로 분주하다. 암흑 같은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크루즈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바하마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뜨거운 햇볕에 녹아들었던 우리 가족은 집처럼 편안한 배로 복귀해 저녁을 먹고 나른함을 이끌고 극장으로 향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뮤지컬'토이스토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뉴욕 브로드웨이급 초대형 뮤지컬은 아니지만 구성이나 무대 세팅이 절대 뒤지지 않은 고 퀄리티 공연이다. 낮에 무리한 탓에 혹시나 졸면 어쩌나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웬걸 아이들의 집중도는 최대치다. 영어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재미가 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기도 하고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특별한 언어의 이해 없이도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은 자리를 뜨기 싫어했고 지환이는 다음 공연도 보고 싶다며 조르기도 했다.
여느 극장의 입구에서처럼 고소한 팝콘 냄새가 진동한다. 이미 배가 부르지만 아이들은 한 바구니 사달라고 조른다. 모든 식사가 포함된 크루즈지만 '팝콘'트럭은 별개인데 다행히 가격은 $4로 비싸지는 않다. 크루즈 내에서 별도로 쇼핑이나 지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승선할 때 받은 객실카드키가 결제 수단으로도 쓰인다. 모든 걸 객실카드로 구매하고 마지막 하선할 때 한 번에 결제하는 방식이다.
매일 아침 키즈 클럽에서는 모닝체조 시간이 있는데 당시 아이들이 즐겨보던 TV프로그램의 주인공인 닥터맥스터핀스의 출연이 있다고 해서 아이들을 깨웠다. 다른 크루즈에서도 다양한 키즈 프로그램이 있는데 디즈니 크루즈는 아이들을 위한 매력적은 프로그램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아이들은 좋아하는 캐릭터 주인공을 중심으로 금세 한 팀이 되기도 한다. 얼굴을 익힌 아이들은 수영장이나 농구 코트에서 마주치게 되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달리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다른 언어는 큰 장벽이 되지 않는다. 몸으로 표현하고 웃으면 된다. 크루즈에서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배에 탄 수천 명을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의 경우 묘한 여유에서 오는 동질감이 재미난다. 국적은 달라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동네 이웃처럼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감정과 자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마음은 다 같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