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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까

―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22

by 강산





내가 만든 눈사람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까 / 배진성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에게/갈 때를 희망하기에 불 속에서도/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네가 그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오르고/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는 영혼에게/너를 맡기고, 나는 떠날 것이다//그곳을 다스리는 황제께서는 내가/당신의 법률을 어겼기에, 그 도시에/들어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모든 곳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곳에/그분의 도시와 높은 왕좌가 있으니,/오, 그곳에 선택된 자들은 행복하도다!//나는 말했다 "시인이여, 당신이 몰랐던/하느님의 이름으로 간청하오니,/나를 이 사악한 곳에서 구해 주시고,//방금 말하신 곳으로 안내하시어/성 베드로의 문과 당신이 말한/그 슬픈 자들을 보게 해주십시오"//그분은 움직였고 나는 뒤를 따랐다 ―『신곡(神曲)』13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 한라산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한라산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제주도 한라산에 첫눈이 내렸다 오늘도 한라산에는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 한라산에 내린 눈이 나무에 옷을 입힌다 한라산에 곰과 사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라산에 사는 곰과 사자들은 겨울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겨울에만 한라산으로 오는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들을 따라서 신들의 발자국처럼 호위무사처럼 온다 겨울에는 한라산으로 내려오는 신들도 한라산으로 눕는다 겨울에는 한라산 신들의 허리선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얀 겨울에만 한라산으로 내려와서 누워보는 신들도 있다 한라산으로 내려오는 눈은 한라산 나무들의 옷이 되어준다 그리하여 한라산에서는 나무들마다 또 다른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깊을수록 한라산에는 더 많은 짐승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한라산의 겨울이 온다 한라산의 곰과 사자들이 돌아온다 하늘로 올라갔던 신들도 겨울 한라산으로 따라서 내려온다


겨울 하늘은 한라산을 거대한 눈사람으로 만들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눈사람을 만든다 해마다 내가 만들었던 눈사람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까 내가 사랑했던 눈사람, 나를 사랑했던 눈사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강물에, 바다에, 하늘에, 구름이 되어서 흐르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만날까 나를 사랑했던 눈사람, 내가 사랑했던 눈사람, 어느 봄의 골짜기를 가고 있을까 어느 여름의 강에서 놀고 있을까 어느 가을의 바다에서 승천하고 있을까 겨울에 만났던 나의 눈사람, 어느 겨울에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좀 더 깊이 생각한다 내가 만든 눈사람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잠시 외출을 하였을 뿐이다 나의 사랑과 나의 희망이 그러하듯이 나의 눈사람은 세상 구경 잘하고 꼭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내가 겨울마다 눈사람을 만들었듯이 윤동주 시인도 눈사람을 많이 만들었다 눈사람을 잘 만들던 겨울 아이였다 눈이 참 많이도 내리던 겨울, 온 세상이 하얗게 쌓이던 날, 북간도 명동촌에서 한 아이가 겨울 아이로 태어났다 예수님, 처럼 양초, 처럼 왔다 겨울에 와서 겨울에 떠난 아이, 예수님의 12월에서, 예수님의 2월까지, 양초처럼 하얗게 왔다가 슬프게 떠나간 아이, 겨울 아이는 지금도 반짝인다 평생 공부만 했던 겨울 아이, 평생 꿈만 꾸었던 겨울 아이, 죽어서 겨우 별빛으로 꽃을 피운 시인, 하늘 가득 별빛으로 꽃밭을 일구는 별빛 시인, 하늘에도 꽃이 피어나고 이 지상에도 따뜻한 꽃이 피어난다 오랜만에 윤동주 시인과 함께 대화를 한다 눈사람을 잘 만들던 눈사람 같은 윤동주 시인, 겨울 아이였던 윤동주 시인과 함께 따뜻한 촛불을 켠다 촛불을 켜고 촛불 같은 긴 겨울 이야기를 한다 「초 한 대」에 촛불을 켜고 별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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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IW6DU5EoME?si=EQJXT5IZuVY2-ZsS



겨울 아이

1. 초 한 대

16화 눈사람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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