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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빌라 청소를 하며

5년 거주 빌라 이사 전 청소하기

by 하루

"1년 안에 나갈거면 몇달 전에 말씀 드리면 될까요?"


처음 빌라에 이사를 오면서 집주인께 한 얘기였다. 짧게는 1년, 길어도 2년 안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햇수로는 5년 가까이 한 집에 살게 되었다. 보증금 500만원 남짓에 월세 50만원 정도인 방 한칸 짜리 빌라였다. 처음 입주할 당시에 보증금 500만원도 지인에게 겨우 빌려서 마련하였는데 그 집은 보증금 1000만원 짜리 집이어서 하마터면 못 들어갈 뻔 했다. 다행히 집주인 분께서 500만원으로도 낮추어 주셨다.


그곳에서 얼른 돈을 모아 전세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아파트 투자 광풍에 휩쓸려 전세보다는 무조건 아파트를 매매하겠다는 생각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 전세를 갔으면 내가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전세로 안 간 것은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5년 동안 산 집은 사실 먼지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5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가구 밑에는 먼지가 바닥 러그마냥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이런 곳에 내가 살았단 말이야?'


스스로 가꾸 방을 내 눈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부끄럽게도 방은 굉장히 청결치 못했다. 생각해보면 먼지를 잘 눈치 못챘던 건 내가 가진 독특한 습관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방은 아주 어둡게 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낮에도 암막 커튼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어두운 방안에 조명하나면 켜놓고 살았는데, 알게 모르게 먼지가 조금씩 쌓였다. 가구를 드러내고 나서 먼지를 쓸고 닦으니 훤한 바닥이 들어났다. 일종의 마음 속의 쾌감이 일어났다. 에어컨과 냉장고는 모두 오래되어 한 때는 하얗게 있었을 것들은 누런 때 깔을 나타내며 스스로의 노후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 실리콘에는 더이상 지워지지 않는 검은 곰팡이가 베여있었는데, 다이소에서 산 곰팡이제거제와 솔로 빡빡 밀어서 어느 정도는 지워졌지만, 몇몇 남은 곰파이는 결국 실리콘을 벗기고 새로 해야했다. 문득 5년 동안 산 자취방의 모습은 왠지 내 내면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생활을 하고나서 겪은 이런 저런 상처들로 상해가 새겨진 마음이 내 방에 투영된 것 같았다.


이상하게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감추고 싶었던 마음 탓인지 좀처럼 밝은 공간에서 있는 것이 불편했다.

어둠 속에 있으면 나의 흠과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인지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고, 밝은 곳에 있을 때 느끼는 부담감이 한결 나아졌다.


방 안에 암막 커튼을 치듯, 어쩐지 그 간 외부 사람들과 마음의 장벽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잊혀진 채로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 처음 맞닥뜨린 사회라는 곳은 생존과도 연관있는 곳이라 쉽게 도망치지도 못했기에 그렇게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둠 속에 스스로를 침전시키고 싶었다. 건강하지 못한 현실 도피랄까. 그렇다고 내가 살던 집이 흔히 말하는 "쓰레기집"은 아니지만, 흡사 그곳에 살고 계시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쾌쾌 묵은 먼지를 물걸레로 닦으면서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청소라는 행위는 어쩌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먼지를 닦고 쓸어내리며 훤해지는 방 안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깨끗이 씻겨나가는 듯한,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방 한 켠에는 이전에 쓰던 접시와 용기들을 정리해뒀다. 사실은 썼다기보다는 쓸려고 둔 접시와 후라이팬들이었는데, 생각보다 자주 쓰지 못했다. 그것들을 새로운 집으로 가져오고 싶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과거에 있었던 시절 겪은 아픔들도 함께 딸려올 것만 같아 쓸 수 있는 것들도 과감하게 버리기 시작했다. 많기도 한 것이 마대 자루 하나를 가득채우고도 부족하여 따로 더 버려야 했다.


쾌쾌 묵은 옷들도 꺼내어 버리기 시작했다. 애지중지하게 생각했던 '미니언즈 티셔츠'도 이제 놓아주기로 했다.

옷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왜 진작에 버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언젠가 한번쯤 입겠지하고 둔 옷들은 비좁은 방 안을 차지했고, 그 옷들을 꺼낼 때면 오래된 옷에서 나는 기분 나쁜 냄새들도 같이 딸려왔다. 꽤 괜찮은 옷들도 있었지만 모두 버리기로 했다.

minions-2680727_1280.jpg 미니언즈

한 여름에하는 청소라 온 몸은 비에 젖은 것 마냥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힘들지가 않았다. 내가 지나온 과거를 스스로 허물어 뜨리고 버리는 게 어쩐지 너무나 행복했다. 집주인에게 보여주기 전 훤해지 방을 쳐다보았다. 이제 나말고 다른 누군가가 살 집이지만 훤한 환경에서 사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어쩐지 훤해지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집주인은 이후 오셔서 그냥 청소 안 하고 가는 분들도 많은데 청소까지 해주고 가서 고맙다고 했다. 5년 동안 이런 저런 일로 정들었던 집주인 부부와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정들었지만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은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인생의 작은 한 막이 닫히고 새로운 막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공간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삶의 방향이 달라지듯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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