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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Nov 23.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41

두 얼굴의 사나이 03

온유는 생각이 많았다.

혹시나 하고 나름대로 찾아보았다. 시험에 학력 제한은 없다. 그러니 꼭 고등학교 악착같이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본 과목에 국어 영어 한국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건 어딜 가든 배우긴 해야 한다. 그리고 20세부터 응시가 가능하다. 어차피 당장 시험 볼 나이도 아니다. 시간은 충분하고, 체력 시험도 있으니 이제 다시 몸 관리도 하면 된다. 잘할 수 있을까? 여자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 할 일도 아니다. 아버지 같은 사람들, 철없는 사람들, 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양심은 지켜내야 하고 나중에 가정과 사회로 복귀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 그런 사람을 뽑는다면, 여성은 현저히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그건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온유는 호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스며드는 걸 느꼈다.




"쌤, 일단 학교는 다녀볼래요."

"좋아, 그렇다면 수업도 들어보면 더 좋고."

"그러려고요. 선별적으로 듣고 공부는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응, 몸도 좀 관리해보자."

"엄마랑 병원 예약해뒀어요. 사실 검사 시작하면 쌤도 귀찮을 거예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진료 확인서나 잘 챙겨 와.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관리 잘해야지."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주말에 마지막 파티를 열거예요. 그때 쌤한테 영통해도 되죠?"

"무슨 파티인데 영상통화씩이나 해, 나랑?"

"우리 마지막 음주요."

"됐거든? 전화하기만 해 봐, 엄마랑 현장 검거할 테니까."

"으음, 친구들한테 쌤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아쉽네."

이 녀석들이 점점 내가 친구인 줄 안다니까. 확 꼰대질 발동시켜버려?

"마지막 음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딱 술 끊어. 담배도 끊고. 몸 생각해서. 호르몬 이상이면 음주 흡연 완전 조심해야 하는 건데, 심하게 무식했다, 그동안. 응? 끊어, 끊어, 끊으라고. 알았지?"

"오호, 쌤, 알았어요. 커밍 쑨."



역시 운동했던 애라 그런가, 좀 다르다.

딱 마음먹고 앉아서 시작하니까, 벌써 국어랑 영어, 한국사는 프린트도 착착 잘 챙기고, 수행 평가도 완전히 제대로 한다. 중간고사에서 국어는 94점, 영어는 89점, 역사는 무려 100점이다! 이게 가능해?

"것 봐요, 제가 공부는 한다면 하는 거랬잖아요."

공부 머리가 있는 녀석인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역도를 하면서도 성적은 곧잘 상위권이었다. 중1 때는 전교권에서 놀았던 바 있다. 그렇구나,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공부는 하면 하는 거라 이거지? 좋았어. 성적으로 보여주는 열의. 별로 걱정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인성과 양심에 대해 논할 때가 되었다.

교도관이 목표라면 청결한 양심과 철저한 준법정신, 그리고 함부로 법을 넘나들던 사람들에게 큰소리 칠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도덕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온유는 별로 그런 쪽에 가까운 편은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서 온갖 꼼수와 차별, 때로는 돈이나 폭력의 능력, 등등을 이미 보고 배웠다. 사회가 참 거시기하구나, 하고. 정직하면 손해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 바보가 된다. 운동의 세계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변호사와 입을 맞추어 진술하려던 것과 달리 솔직하게 그날 일을 발설함으로써 응당한 대가이지만 피할 수도 있었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양심, 도덕, 법, 질서, 이런 건 지키는 사람이 바보이다.

"그런 마인드라면 교도관이 무슨 소용이야? 막살면 되겠네, 다들."

"그러게요, 제가 생각해도 모순이네요."




온유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교도소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도소에 관심이 있으니 내가 교도관을 제안했을 때에도 뭔지 모르게 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가치관을 꺼내어 보니 이야기가 다르다. 온유는 정직한 인생에 대해 관심이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50만큼 공부해서 100만큼 얻는 게 효율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한 게 있으면 깎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깎아서 처벌받아도 억울한 일이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이 아니라면 규칙이나 법은 살짝 넘어갔다 돌아와도 뭐 좀 어떠냐, 잘 지키는 사람도 있고 적당히 지키는 사람도 있고, 가끔은 안 지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인생, 걸리면 운이 나쁜 것이고 안 걸리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것, 사람 산다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약간의 노력과 약간의 돈으로 조율하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니 약간의 '모'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요령 없는 삶이 어디 있나?




온유는 늙어버린 것 같다.

벌써 능구렁이 같은 삶의 방식을 터득해버렸다. 나처럼 고지식하고 답답한 종류의 인간들, 딱 네모 세모 정방형의 인생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길. 아버지는 재판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일말의 교훈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가 그렇게 교육적이지는 못했다. 부모의 인생은 그 자체로 이미 산 교육이기에. 그분의 마지막 양심선언이 그간의 삶을 포장해주진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요령 없는 선택의 말로가 얼마나 분수 넘는 짓인지, 남은 가족들에게 큰 상처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유가 꼭 그런 생각을 해야만 했나?

나는 생각할수록 그 모순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생긴 아이, 운동선수 출신이면서 운동은 접고 공부는 잘하는 아이, 교도관이 되겠다면서 법과 양심에 대해서는 무딘 아이, 삶의 소망을 다 꺼뜨려놓고도 꿈을 꾸는 아이, 몸이 아픈데 음주 흡연을 못 끊은 아이, 아버지가 보고 싶어도 사랑 대신 원망으로 날짜를 세는 아이, 이 아이러니를 풀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 열쇠를 잠시 발견한 것 같다.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나 할 법한 행사이긴 하지만, 요즘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부쩍 줄어 친구들끼리도 패드립을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세상 망할 분위기에 대한 우려 가운데 어버이날 세대 공감 편지 쓰기 행사가 열렸다. 이건 학교가 아니라 시(市)에서 주최하는 '가족의 달' 문화 행사 중 하나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뜻밖에도 '시'에서 공문이 왔다. 다름 아닌, 온유의 입상 내역이 담긴 공문 한 장. 온유가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데, 떠억 하니 입상까지 해서 시장 직인이 찍힌 공문으로 보란 듯이 소식이 전해지니 이건 대형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나? 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날이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너 뭐냐?"

"그러게요. 이럴 줄이야."

"글 잘 쓰더라. 무슨 편지를 그렇게 잘 썼기에 입상을 다 했누?"

"그냥 썼어요. 엄마가 면회 갈 때 아버지 드리라고 쓴 건데, 손편지는 좀 낯간지러워서 한글 파일로 썼거든요. 써놓은 게 있어서 그냥 그대로 파일 전송해봤는데, 상줄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나 봐요."

"겸손이 지나치네. 아무나 입상하나? 글이란 게 진정성이 있어야 감동을 주는 법인데."

"그냥, 밤에 술 먹고 잠이 안 와서, 아버지 생각이 나서 썼어요."

"보고 싶겠다."

"하아, 맞아요. 보고 싶어요."




한심한 아버지.

술 먹고 사고 치고 온 세상 비난 짊어지고 감방 들어가서 면회도 못 오게 하는 짜증 나는 아버지. 그가 보고 싶다. 그곳이 어떤지 상상해본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만사가 다 싫어졌는데, 그래도 아버지 보고 싶은 이 마음은 왜 아직도 그대로인지. 답답해서 끄적인 글, 결국은 차마 아버지께 건네지 못한 글. 그게 엉뚱한 곳에 도착해서 상을 받았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다 필요 없다. 상장은 나중에 따로 도착한단다.

"상장이 오면 복사해줄게. 편지 출력해서 같이 전해드리자."




아버지에 대한 삐뚤어진 감정들.

주체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때로는 스스로 깨달을 수도 없는 자신의 온갖 어지러운 마음을 따라 같이 삐뚤어지고 싶었던 시간들. 맞불 놓듯 나도 막살아서 아버지 열 받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볼 수 없어서 혼자만의 모노드라마가 되곤 했던 시간들. 가끔은 마음 다잡고 반듯하게 살아볼까 했는데, 나도 모르게 뒷덜미 잡힐 것만 같은 빨간 전과자 아버지 꼬리표. 그 시간에 대한 어떤 보상도 되지 못하겠지만, 새하얀 봉투에 반듯하게 줄 그어진 편지지, 모나미 볼펜으로 한 자씩 눌러쓴 편지, 온유는 아버지의 답장을 받았다. 그걸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온유는 항상 쩍벌에 뒤로 젖혀 앉던 모습 대신 살짝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울었다. 눈물에 온유의 온유하지 않은 온갖 독소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딱히 더 달라진 건 없다.

가끔 아버지와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았고, 일단 술은 끊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몸이 심각하게 안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도관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건 좋은데 국어 영어 한국사 시간 외에는 그냥 소설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뻔뻔함도 그대로. 그래도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든다. 법과 양심을 지키고 사람 사이의 관계성도 잘 지키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버지가 편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온유는 점차 몸도 마음도 한 걸음씩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름과 맞지 않게 독기를 뿜던 아우라도 좀 순해졌다. 달라진 건 없다고 해놓고, 말하다 보니 달라진 게 참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교내 무슨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무조건 온유부터 불렀다. 대회라는 게 최소한의 참가 인원은 있어야 맛인데, 이 학교에서는 열 명에게 상을 주려고 도서상품권을 준비해도 다섯 명만 제출하는 형편이니 대회를 연다는 게 무색할 지경이다. 최소 인원에 온유는 꼭 넣어줘야 한다. 온유는 심드렁했지만, 나는 악착같이 글 한 편은 받아냈다. 으하핫, 나는 참으로 영악한 교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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