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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5.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06

퇴근길을 돌려다오 01

샛별이가 떠나고 그 짝꿍은 좀 심심했다.

이름은 심 서방이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던 여친과 1년이 넘었는데, 여친이 불러주는 '여보' 대신 친구들은 그 아이를 심 서방이라고 부른다. 샛별이와 마찬가지로 졸업만이 유일한 목표인데, 샛별이의 좌절이 제법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마음 다잡고 학교 생활을 잘해보려고 하니 여러 가지 걸리는 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우선은 아무래도 서열이었다.



이 학교는 일반적인 학교들과 조금 다르다.

인문계와 전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학교 안에 섞여있다. 인문계 가기엔 성적이 미흡한 경우뿐만 아니라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에도 역시나 성적이 미흡한 경우 모두에게 열린 학교이다. 비평준화로 만들어진 학교 간 성적별 순위의 최하위에 속한 학교들 중 하나. 여기서 성적에 대해 논하자면 좀 섭섭하다. 또 한 가지 함부로 논하면 섭섭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주먹 세계의 성적이다. 학교 성적의 순위와 완전히 반대로, 주먹으로는 전국에서 제법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 북부 지역의 내로라하는 짱들이 다 모여있고, 그중에 놀랍게도 지역 짱들 중 탑 쓰리가 우리 반에 집결해 있었다.



이 사실은 샛별이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미 알려주었다.

샛별이는 여태껏 어디든 이름만 대면 움찔하는 짱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아이이다. 어디서 난데없이 나타나 온 학교를 휘젓고 교사들과 싸우며 기행을 일삼았다. 그야말로 떠오르는 샛별, 노는 아이들 세계의 신성이었다. 샛별이가 샛별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샛별이는 이미 혜성처럼 사라졌다. 얼렁뚱땅 3-4주가 지나가고 있다. 이제 다시 서열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심 서방은 사실 서열 정리와는 무관한 아이였다.

무리 지어 힘자랑하는 아이들과 달리 개인적인 노선을 걸었다. 주먹질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기행을 일삼지도 않았다. 그 아이의 삶은 늘 예측 가능한 것이었고, 학교생활과 방과 후 생활에 그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다만, 그 아이에게 서열이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 그 힘과 친하게 지내는 것, 그게 그 아이의 생존 전략이었다. 자기 뒤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종종 그들의 뒤를 봐주기도 하면서 각자가 누리는 어둠의 즐거움을 적당히 지켜나가길 원했던 것이다. 무리가 아니기 때문에 쓸데없이 표적이 되어야 하는 불편을 피하고, 무리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드려야 하는 충성도 피하는, 그야말로 참 영리한 생존 방식이다.



마침내 서열이 정리되자, 심 서방은 최고 권위자의 옆자리를 꿰찼다.

무리 속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일짱 아이와 사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가장 사적인 일과를 일짱과 나누는 것이었다. 심 서방은 전날 누군가의 빈집으로 일짱과 몇몇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여친과 그녀의 친구들을 불러 다 같이 좀 마신 모양이었다. 적지 않은 인원이 모였으니 준비했던 술도 빨리 동이 났을 터. 여친도 있겠다, 약간의 호기는 사나이의 멋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심 서방은 또래보다 현저히 키가 작았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조달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일짱의 무리에 들어가진 않더라도 적당한 실력은 선보이며 신망을 쌓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심 서방이 선택한 것은 훔치는 것이었다. 그래, 여기까진 그럴 듯한 분석이다. 나는 참으로 수사 반장같은 안목이 있다.



다음날 아침부터 교무실이 소란스러웠다.

학생부 건물은 정문에서 가장 처음 학생들을 맞이하는 곳에 위치해있다. 마치 행랑채와 흡사한 모양새이다. 들어오는 학생들을 제일 먼저 만나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제일 나중에 보내주는 곳. 종종 우리 교육계와 경찰계가 통합이 된다면 이 학교 학생부는 반드시 경찰 중에서도 강력계로 전환이 가능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누가 뭐래도 이 학생부는 대한민국의 안녕과 질서의 핵심이자 밑거름이 되는 곳이 분명하다. 그런 학생부가 바빠지고 금세 몇 가지 문서가 교무실로 날아왔다. 편의점을 턴 학생이 혹시 1학년이 맞는지 확인을 부탁한다며. 



아니,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아직 3월 달력이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입학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녀석들이 밖에서 신고가 들어와서 안에서 수사 협조를 해야겠냔 말이다. 심지어 지금 상황을 훤하게 다 알고 있다는 듯, 심 서방은 아직 출근 전이시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자 부모님께 연락을 먼저 드리고자 했으나, 입학 첫날 받아둔 부모님 연락처는 죄다 거짓이었다. 어쩜 이럴 수가. 샛별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집 나간 샛별이랑 비교한다. 가장 심한 경우의 예시는 샛별이. 그 이상을 넘어가면 인간도 아니다. 



도대체 심 서방네 부모님이랑은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매일 매일이 새로운 퀴즈 세계. 심심하지 않은 좋은 학교.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이라는 거지. 사고 치고 답도 없는 녀석,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벌써 내일이 기다려진다.








<제목 이미지: pixabay 도둑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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