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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6.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07

퇴근길을 돌려다오 02

당장은 딱히 방법이 없다.

무조건 일단은 심 서방을 붙들고 늘어지는 수밖에. 학교 와라, 일단 전화 좀 해주라, 부모님 전화번호 알려다오, 경찰이 왔다 갔다, 어디냐, 연락해라, 자수하면 광명 찾는다, 살려줄 테니 학교부터 나와라, 숨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와줄 테니 연락해라, 별의별 소리르 다해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전화 신호는 가고 있고, 문자도 확인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차피 이런 말은 통하지도 않을 거라면, 어쩔 수 없다. 정공법이다. 



'여친네 학교에 가는 중'

10초 만에 전화가 왔다. 지금 학교에 오겠다고 한다. 부모님 번호부터 대라. 부모님은 빼고 얘기하자고? 그런 얘긴 경찰에 가서 직접 하시고요. 곧장 부모님 전화번호도 술술 나온다. 엄마한테는 전화하지 말란다. 아빠 번호만 자꾸 들이댄다. 엄마 번호는 죽어도 안 된단다. 일단은 여기까지 해놓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내 번호가 심 서방의 아버지에게 노출된 것이. 아버지는 경찰과 해야 할 이야기도 모두 나에게 전달하도록 명하셨고, 부모가 해결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바쁘다며 나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하셨다. 직접 오셔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은 부모 대리인으로 담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다 처리하도록 당부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심서방네 아버지의 비서가 되어버렸다. 사업을 하느라 바쁘다고 하셨다. 무슨 건축 사무소에서 설계를 하신다고. 항상 현장에 쫓겨 다니느라 너무나도 정신이 없지만, 아들을 위해 딱 시간을 정해둘 테니 저녁 6시에 전화하겠노라고. 경찰 상황, 학생부 상황, 아이 상태와 상담 내용 등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매일 저녁 6시만 되면 수화기를 붙들고 낱낱이 보고하게 되었다. 



사실 그 시간은 나도 퇴근 중이다.

강변북로 막히는 길을 주행하면서 정각 6시만 되면 알람처럼 걸려오는 전화에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아이를 위해 신경 쓰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지만, 점점 횟수와 강도가 더해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아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담임을 비서처럼 업무 대행하도록 지시하여 매일 때맞추어 업무 보고하도록 연락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방식인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네, 선생님, 오늘 우리 아이가 어떻게 지냈죠? 아침 등교 시간 보고는 받았고요. 술 냄새가 나진 않았죠? 어제는 제가 좀 늦게 들어가서 아이 얼굴을 못 봤거든요. 

아, 선생님, 제가 어제는 애를 데리고 낚시를 다녀왔걸랑요. 별 이야기 없던가요? 애는 낚시 싫어하죠. 그래도 옆에 앉혀두면 뭐라도 한 마디 하려나 싶어서요. 따라간 게 용하다고요? 용돈 주면 다 따라옵니다. 네네.

아, 선생님, 제가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30분 후에 전화드려도 되나요? 기다리실까 봐 미리 잠깐 연락드렸습니다. 네네.



그러던 것이 점점 개인 상담사가 되어가기도 했다.

아버님, 외람되지만 혹시 어머니랑 연락할 수는 없을까요? 아이가 어머니랑 연락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아버님이 이렇게 바쁘시면 제가 어머니랑 같이 아이 관리를 해보려고 합니다만.

선생님, 제 얘기 좀 들어보시죠. 이 아이 엄마라는 사람이 말입니다. 참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희가 지금 별거 중이거든요. 애한테 관심이 없어요. 애가 짐이래요, 짐. 나 닮아서 싫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참 나쁜 여자예요. 선생님도 애가 있나요? 애 있는 엄마들이 이럴 순 없는 거잖아요. 내가 얼마나 애 키우느라 고생하면서 사는데. 똑같이 건축 일 하면서, 자기만 잘났어. 이상한 여자 아닙니까, 예?



도대체 왜 이런 하소연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이후로 그야말로 갖가지 심서방네 패밀리 사연은 정말 TMI, 그걸 강제로 들으며 건성으로, 네, 그랬군요, 라는 대답을 앵무새처럼 내뱉었다. 이 꽉 막힌 도로처럼 내 귀도 꽉 막히고, 옆 차선으로 들락거려도 딱히 달라질 것 없는 것처럼 딴청을 해보아도 무용지물이었다. 며칠이 흘렀을까? 이러다간 나도 이 집 패밀리가 될 것만 같은 상상이 뻗쳐올랐다. 김 집사, 오늘 집안 상황 보고해. 눼눼. 아우, 끔찍해. 내가 당신 마누라야? 도대체 왜 이래? 심 서방이 내 아들이야?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그래서 이별을 고했다. 

아버님, 이제 통화는 그만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황은 그렇게 수습이 되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필요한 일 있으시면 연락 주시고요. 저도 꾸준히 아이 등교에 신경 쓰고 필요할 땐 연락 남겨드릴게요. 그간 아버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들로도 충분히 아이 상황을 알 것 같고요. 사실 제가 거의 매일 운전 중에 통화를 하다 보니 쉽지 않아서요. 시간이 늘 이렇게 겹쳐버리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아, 네네. 그랬군요.

하더니 안녕히 계시라며 황급히 끊었다. 그렇게 이젠 해방을 맞이했어야 했다.



<제목 이미지 : 한국일보 2017년 12월 13일 뉴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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