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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Mar 13.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15

삼총사의 진짜 싸움 04

태수가 학급에서 군기를 잡는 사이, 서열 2위 정우는 다른 것에 빠져있었다.

정우는 꿀알바를 그만두고도 여전히 늦잠에 시달렸다. 밤새 뭐하느라 안 자고 아침잠으로 내 모닝콜을 못 듣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우 귓구멍엔 최신 에어팟이 꽂혀있었고, 수업시간에도 빈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졸았다. 밤에는 음악을 하신단다. 수업 시간엔 때로 잠에서 부스스 일어나, 오늘은 삘이 딱 오는데 이럴 때 이 감정을 공기와 함께 폐 깊숙이 들이마시면 거품 같은 내 인생이 가사로 술술 나올 것만 같다며 돼먹지 못한 흡연 욕구에 거추장스러운 미사여구를 곁들이기도 했다. 그렇다, 정우는 요즘 래퍼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우는 늘 삘이 충만했다. 

점심시간에 내가 애정하는 음악이 나와서 내 눈이 동그래지면, 그새를 못 참고 툭 튀어나와 갈라진 목소리로 흥을 깨며 따라 불렀다. 노는 세계가 달라서 좋아하는 음악도 다를 것 같았는데, 다른 세대, 다른 성별, 다른 나라에 사는 우리가 그나마의 은근한 동질감을 느낄 때가 바로 음악이 흐를 때였다. 특히 쇼 미더 머니 방송이 있는 날이면 악착같이 본방을 사수하고 다음날 바로 유튜브에 올라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발 빠르게 힙합의 세계를 선도했다. 몇몇 알아듣는 노래에 호응하면 일부러 교무실까지 찾아와 얼굴을 디밀며 두터운 팬심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뭘 어쩌라는 건지. 그리곤 쌤이 한번 봐달라며 예술적 정취가 넘치는 너덜너덜한 노트에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로 갈겨쓴 가사를 가져오기도 했다. 



혼자 라면을 끓이는 오늘,

나 홀로 아무리 맛있는 척 해도 늘,

후후 불다가 내 속이 불어 터질, 라면,

오늘 밤 니가 나의 천사, 라면, 예예,

나 늘, 나의 하늘, 에 감사할 텐데, 마눌, 예예,

오늘 밤 내가 너의 전사, 라면, 예예,

나 늘, 나의 그늘, 에 널 묶어둘 텐데, 사슬, 예예, 

하지만 불어 터진 라면, 후후 불다가 내 속이 불어 터질, 라면, 예예, 



가사란 게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라면송, 가방송, 지각송, 소주송, 그러다 종종 뭔가 낭만적이고 감미로운 느낌의 가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건 써놓고도 다음날 아침엔 기억하지 못하거나 찢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노래 실력이었다. 한 마디로, 정말 못 들어주겠다. 제발 내 애정송에까지 침 발라 망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그냥 립싱크만 하면 다행이다. 눈 감고 못 본 척하면 되니까. 하지만 목소리를 얹기 시작하면 정말 짜증이 진심으로 솟구친다. 입을 꿰매버릴 수도 없고, 청테이프로 발라버릴 수도 없고, 그러게 각자 자기의 공간에서 듣자니까, 좀. 점심시간에 방송반에다가 음악을 신청하는 유일한 교사인 나를 위해 틀어주는, 내 신청곡만 나오면 귀신같이 알고 교무실로 쳐들어와서 걸쭉한 흥얼거림으로 꿀같은 휴식을 망친단 말이다. 그런 정우가 오디션에 나가겠다고 할 땐, 진심과 충성을 다해 말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왜?"

"예? 쌤, 제자가 원대한 꿈을 이루겠다고 하면, 캬, 응원도 해주고 그래야죠."

"아니, 그니까, 난 제자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할 건데, 근데, 그걸 네가 왜?"

"쌤, 제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왜요, 안 될 것 같아요?"

"응, 매우."

"쌤, 저 나쁘지 않아요."

"즉흥 랩 해봐. 보통 래퍼는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줄줄 나오잖아."

"너는 나에게 안 된다고 했지, 맨날 지각만 면하라고 했지, 언제까지 내가 그래그래, 이 모양, 아무 생각 없이 그래그래, 이모야, 넌 알지, 내가 가진 꿈과 고독, 한 번쯤 손뼉 쳐줘 내가 갈 길, 내가 길길이 날뛰는 널 뛰는 이 마음을 알아줘, 한 번쯤 손뼉 쳐줘, 내 불쌍한 마이크, 달리지 못하는 내 바이크. 예."

"그래, 네 불쌍한 마이크, 절대 달려선 안 되는 네 바이크, 제발 이젠 나가줘, 이러는 거 아이 돈 라이크, 예예, 거기가 어디라고 나가니, 오디션,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니, 교무실, 거긴 전국 꾼들의 놀이터, 여긴 4층 쌤들의 일터, 예예."

"쌤, 아, 나갈게요. 와, 쌤, 잘하시네. 가사 좀 써줘요, 예? 쌤, 와, 언어의 마술사. 쌤, 쌤."

그렇게 쫓겨나던 정우는 드디어 오디션에 이름 석 자를 떡 하니 접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정우의 가사 속에 자주 돌아다니는 '달리지 못하는 바이크'가 사고를 쳤다.

거기에 정우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도 한 몫했다. 정우는 다른 학교 친구네 집에 모셔둔 자기 오토바이를 가져와 달라고 종종 친구에게 전화해 학교 앞에 오토바이를 대기시켰다. 큰 키에 흩날리는 노란 단발머리, 난데없는 가죽 재킷에 역시나 돼먹지 못하게 눈을 찡긋 하고는 있는 폼 없는 폼 똥폼 다 잡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면, 여학생들은 배시시 웃었고 나는 빙구라고 욕했다. 그렇게 헬멧을 쓰라고 해도, 꼭 학교 앞을 지나갈 때는 헬멧을 쓰지 않았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잘난 척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골목만 딱 빠져나가면 대로변에서부터는 꼭 헬멧을 썼다. 저 녀석의 뇌구조는 한번 열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여기서 잠깐 원동기와 바이크의 면허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동기 면허 기준은 만 16세 생일을 지난 자, 125cc 이상 바이크의 경우 만 18세 생일을 지난 자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이 녀석이 가진 오토바이는 배달용 귀욤귀욤한 돌돌이는 아닌 것 같고, 분명 125cc 이상의 고소음 고속력 바이크인 것 같은데, 아직 만 16세밖에 안 된 신정우 씨가 도대체 면허는 뭘로 딴 걸까? 법을 뛰어넘으셨거나, 법을 뭉개셨거나, 차라리 알바를 하던 시절이 나을 뻔했다. 이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면허도 애매한 녀석이 그날따라 너무 흥에 취했다.

헬멧은 자기도 목숨은 중한지라 습관적으로 챙겨 쓰긴 했다. 문제는 음악이었다. 귀에 또 습관적으로 에어팟을 꽂았다. 음량은 최대치, 바람소리 때문에 가뜩이나 소음이 심한데, 음악이 없는 주행은 떡 없는 떡볶이다. 그날따라 비가 왔다. 마음은 더욱 센티해졌다. 술을 마시진 않았다고 우겨보지만, 제정신이면 비 오는 날 귓구녕 틀어막고 굳이 오토바이를 타겠느냔 말이다. 경찰에서 제일 먼저 연락을 받은 분은 아버지였고, 다음날 병원으로 제일 먼저 찾아간 분은 담임교사, 나였다. 아버지는 처음 뵐 때보다 더욱 강렬해진 용무늬 셔츠에 여전히 목걸이를 점잖게 출렁이며 인사해오셨다. 



"아버님, 아이고, 정우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다리몽둥이가 양쪽이 다 뽀사졌어야 하는데, 내 아들이지만, 참, 간뎅이가 저렇게 부어서 어쩌면 좋습니까?"

"쌤, 아아, 쌤."

"아픈 척하지 마, 이게 뭐니? 얼굴로 박았냐? 왜 얼굴까지 이래?"

정우는 서열 정리 때 맞아서 부었던 쪽 반대편이 사고 때 바닥으로 뒹굴면서 쫘라락 쓸려 나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리도 한쪽이 부러졌고, 팔도 한쪽 해 드셨고, 퇴근하고 왔을 땐 그럭저럭 급한 처치는 다 되어 있었다. 그래도 멀리서 사고가 난 건 아니었다. 집 근처로 끌고 나와서 눈 감고도 다니는 사거리였는데, 툭 튀어나오는 차에 부딪혀 옆으로 쓰러지고 뒹굴면서 다친 게 이 정도였다. 도로에 나가서 달리다 부딪혔으면 병실로 면회를 올 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갈린 얼굴 재생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오디션은 물 건너갔다. 당분간 모닝콜해줄 필요도 없이 좁아터진 이 침대에서 침울한 마음에 욕설을 섞어 돼먹지 못한 가사를 또 써야 할 것 같다.



바이크를 없애야 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소희와 어떻게 이별하라는 거냐며, 두 눈을 부릅 떴으나, 아버지는 완고했다. 이미 소희도 많이 다쳤다. 소희는 여배우의 이름을 딴 이놈의 애마 바이크의 이름이다. 눈치로 봐선 이 바이크가 전적으로 정우의 완전한 소유물인 것 같지 않다. 누군가와 돈을 보태서 적당한 누군가의 이름을 빌려 뿜빠이로 사용하는 공용 애마임에 틀림없다. 이걸 혼자 처리해버리기엔 뒷일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다. 우선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고, 다시는 타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분명히 정우는 퇴원하면 또 탈 것이 뻔하다. 그래도 그만하면 아버지와는 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꿈과 사랑을 모두 잃었다.

정우는 비 오던 그날 밤 사고로 내팽개쳐진 길바닥에 삶의 의욕도 같이 내팽개쳐진 것 같았다. 출신 지역 아이들이 수시로 얼굴을 내밀어 심심치 않게 병실을 방문하며 여전한 충성심과 우정을 과시했으나 정우는 그나마 불태우던 열정이 방향을 잃어 시무룩해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리광을 받아주기엔 난 너무 바빴다. 그래도 종종 잊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하나씩 카톡에 공유해주기도 했다. 시시해요, 별로예요, 취향이 왜 이래요, 뭐, 그럭저럭, 이 따위의 평들을 곁들여,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에게 보내줄 때도 있었는데, 그런 음악이야말로 난 놉놉, 너 나한테 욕하고 싶어서 일부러 골라서 보낸 거 아니니, 이런 노래 듣는 너는 얼마나 마음이 시커먼 거니, 구려, 별로야, 됐거든, 병원 내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음악 배틀이 지겨워질 무렵, 정우는 우울한 얼굴로 등교했다.



래퍼의 귀환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정우야, 오디션은 아직 기회가 많잖냐. 바이크는 달리지 못하지만, 마이크는 달리고 달려 네 꿈에 도착하게 해 줄 거야. 응원해달라며? 찌그러진 얼굴 좀 펴고 가사 써라, 응?



<제목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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