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초콜릿 사건(1929) 앤서니 버클리
클럽의 나라인 영국에는 직위, 취미, 직업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수많은 클럽이 존재한다. 추리소설을 꽃피운 나라답게 추리소설 작가의 모임인 '추리 클럽'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 애거서 크리스티, G.K. 체스터턴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이 까다로운 입회 조건을 통과해 초기 멤버로 활동하며 영감을 교류했다. 1930년에 이 클럽을 만든 앤서니 버클리는 일 년 앞선 1929년 발표한 『독 초콜릿 사건』에서 비슷한 추리 클럽을 묘사했다. 여섯 명의 준 탐정이 모인 '범죄 연구회'. 오늘의 회합은 평소와 매우 다르게 진행된다.
사건 또한 사교클럽에서 벌어진다. 유스터스 경은 '메이슨 앤드 선스사'에서 보내온 초콜릿을 다른 회원인 그레이엄 벤딕스에서 건네준다. 이 초콜릿을 받아서 맛본 벤딕스 부인은 즉사한다. 초콜릿에 들어 있었던 니트로벤젠이 원인이다. 범인은 누구일까? 독살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연히 초콜릿을 먹은 벤딕스 부인이 아닌 실제 목표물은 누구였을까? 모든 것이 미궁에 빠진 상황. 런던 경찰청의 모르즈비 경감은 '범죄 연구회'에 도움을 요청한다. 여섯 명의 회원은 한 명씩 돌아가며 추론을 말하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범인을 잡기로 한다.
이 말은 작가가 여섯 개의 독립된 추리 세계를 구축해야 함을 뜻한다. 게다가 끝까지 독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그중 하나도 허술해서는 안 된다. 자신 나름의 추리를 전개하는 '제7의 탐정'인 독자는 차례대로 이어지는 추리와 이에 대한 반박이 상당한 논리 체계를 갖추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다중 해결' 설정은 현대 미스터리에서는 새로움을 부각하는 도구로서 '특수 설정'으로 선택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추리 소설의 초기 황금시대인 1920년대에 이토록 어렵고 야심 찬 형식을 구상하고 세련되게 완성했다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한 성취다.
이야기가 경연 형식을 취한 것을 보면 진실에 다가가는 탐정은 마지막 여섯 번째 주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앤서니 버클리는 당시 득세한 전지전능함이라는 탐정의 전형성에 반기를 든 작가다. 대신 수줍음이 많은 '평범해서 특별한' 명탐정 앰브로즈 치터웍을 창조했다. 치터웍을 내세워 기고만장한 탐정들의 논리를 격파함으로써 추리소설 속 탐정 캐릭터의 다변화를 이루었다(논박당한 사람 중 작가의 또 다른 대표 탐정인 로저 셰링엄이 포함된 것은 귀여운 반전이다). 즉 앤서니 버클리는 추리소설을 완성함과 동시에 확장까지 고민한 작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