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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Jul 29. 2024

총구가 내뿜는 카타르시스

내가 심판한다(1947) 미키 스필레인

[세계추리문학전집] 47/50


미키 스필레인은 터프가이 탐정이 날뛰는 막가파 하드보일드 장르의 창시자다. 데뷔작이자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내가 심판한다에서 마이크 해머 탐정은 '깜둥이'라는 표현을 세 번, '호모'라는 표현을 한 번 사용한다. 나아가 동성애를 직설적으로 비난한다. 숨을 못 쉴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을 바라보며 '먹음직스럽다'라고 독백한다. 지금의 소설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태도다. 시대 차이를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부분인데, 한편으로는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밀어붙이는 마초 탐정의 성정을 드러내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국내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미키 스필레인의 소설은 겨우 세 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세 편을 포함해 13편까지 이어진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1억 부 넘게 판매될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실로 하드보일드의 신화적 연대기. 인기 원인은 품위와 정의감이 결여된 대신 수컷 에너지는 가득한 안티히어로 탐정 마이크 해머의 존재다. 그는 작가의 자의식이 투영된 인물이다. 작가가 그랬듯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도에 절단될 뻔한 경험이 있는 탐정은 전쟁이 낳은 도시의 허무, 불안, 타락을 가차 없이 응징한다. 미국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불길하다. 전장을 같이 누볐던 전우 잭이 45구경 총에 맞은 채로 발견된다. 마이크 해머는 친구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하며 결심한다. 범인을 잡아 직접 저세상으로 보내겠다고. 현장에서 만난 동료 팻에게는 (그가 경찰인데도 불구하고) 범인을 먼저 발견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공언한다. 분노의 과장된 표현일까? 그는 실제 사적제재의 화신이 될까? 궁금함을 안고 읽게 된다. 만약 후자라 해도 해머는 처벌받지 않는다. 탐정 면허증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더티 해리'에 앞서 법보다 주먹을 가까이 둔 단독자이자 심판자였다.


한 손에는 폭력, 다른 한 손에는 섹스라는 무기를 들고 독자를 유혹하는 투박한 탐정에게 이상하리만치 많은 여자가 마음을 준다. 정신과 의사 샬럿의 구애는 특히 이해가 안 된다. 탐정 소설의 클리셰가 작동하는 걸까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는 뚝 끝나버린다. 사건 경위가 말로 다 설명되는 결말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느닷없음조차도 해머의 무소불위를 뜻하는 것 같아 매력적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가는 절정의 폭력과 섹스를 결합한다. 너무 선정적인 선택인 걸까? 하지만 세상은 욕망으로 가득하므로 이 선정성은 현실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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