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과 나비는 조금 특별한 환경에서 쓰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잡지 엘르의 전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95년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한순간에 삶이 뒤바뀐 그는 오직 왼쪽 눈꺼풀을 깜빡이는 신호만을 통해서 이 책을 썼다. 신체적 어려움이 그의 정신까지 망가뜨리지는 못한 듯 책에서는 그가 죽기 전까지 얼마나 다양한,혹은 본인다운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제목은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에 갇혀서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나비로서 존재했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책의 내용에서 따왔다.
책은 두세 페이지 정도 분량의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기억나는 글이 하나 있다. 책의 초반에 있는 글인데 어쩐지 나에겐 너무 슬프게 느껴져서 최단 시간에 눈물이 고인 책이 될 뻔했다.
글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저자는 친구들이 여행을 다녀오며 가져다준 쾌유를 비는 기념품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카메론의 한 주술사에게 자신의 완쾌를 빌어 준 친구의 성의를 봐서 자신은 아프리카 출신 수호신들에게 오른쪽 눈을 제물로 바칠 것이며, 장모님께서 교구신부님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것의 답례로 자신의 청각을 하나님에게 제공한다는 등이다.
쾌유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단순히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성의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내놓겠다는 유쾌하고 여유로운 그의 태도가 느껴지는 이 글은 이렇게 끝마무리를 맺는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신들의 철통같은 보호막도, 내 딸 셀레스트가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비한다면 한낱 종이벽에 불과하다. 그 아이와 내가 잠드는 시간이 거의 일치하므로, 나는 밤마다 나를 악몽으로부터 지켜주는 신비스러운 기도 소리와 더불어 꿈나라로 향한다”.
자신을 위해 온갖 정령들과 신들에게 가호를 빌어준 주변인들에게 느끼는 고마움 속에는 어떤 신이 되었든 자신의 장기를 떼어주어서라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존재한다. 그렇게 자기가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신들 앞에서 자신의 다짐을 얘기하다가 그가 돌아오는 곳은 딸에 대한 사랑이다. 잠들기 전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딸을 상상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서 뭉클했다.
저자는 이 책이 발간되어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몇 년에 걸쳐 눈 깜빡임만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자신의 삶 혹은 사랑을 완성된 책의 형태로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던 것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나의 감정이 아마 저자가 책을 완성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이 책을 읽을 때 우연히 대장암으로 3개월의 시간만을 남겨둔 환우 분의 글을 인터넷에서 읽게 되었다. 그 글은 죽음을 앞둔 삶에 있어서 책 ‘잠수종과 나비’와 상반되는 부분이 있어 나도 모르게 두 상황을 비교하게 되었다. 환우 분에게 도움이 되어드리지는 못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비교해본다는 점에서 염치스럽고 죄송하지만, ‘잠수종과 나비’보다 훨씬 아찔하게 다가오는 감정을 느꼈기에 조금은 적어보고 싶다.
진솔하지만 거침없고 투박한 말투로 인해 심각한 상황을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유쾌함이 느껴지는 환우분의 글은 강렬한 첫인상과 함께 계속해서 다음 글을 찾아 읽게 했다.
암 환자들이 이용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카페에 17년부터 기록된 글들은 그분이 어떻게 수차례의 수술을 견디고 지금의 상태에 오게 되었는지, 어떠한 심정으로 암과의 싸움을 해왔는지가 적혀 있었다. 3년 전 첫 수술을 이후로 열심히 싸워왔지만 몇 개월 전 결국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암세포로 인해 환자분은 의사로부터 길어야 3개월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카페에는 최근 몇 개월간 환자분이 죽음을 3개월 앞두고 어떻게 자신의 생을 정리하는지 적혀 있었다. 남은 시간을 통해 좋던 밉던 자신의 삶에 연이 닿았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씩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죽음 앞에 흔들리는 마음은 어쩐지 쉽게 가진 것을 내려놓기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그중 내가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환우 분의 가장 최근의 글들을 통해 느껴지는 씁쓸함이었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글은 본인이 올린 국민청원에 동의를 눌러달라는 내용이었다.
청원의 내용은 젊어서 부은 국민연금 26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만 60세가 되어야 돌려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금액 260만 원을 환우분은 2달 남은 인생 내 당장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다. 환우분은 그나마도 자신에게는 목돈이고 그 일부라도 수령하여 그간 신세 진 이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청원글에 적었다. 덧붙여 방탕한 삶으로 가정을 돌보지 않은 가장으로서 자식들에게 길면 세 달을 사는데 한 이백 정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카페에 남은 환우분의 3년간의 기록은 별 볼일 없다는 듯 툭툭 던지는 장난스러운 말들 속에서도 주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 따뜻했다. 더러 먼저 간 사람들에게 저승에 가면 꼭 꿈에 나타나 복권 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걸 못 보고 간다며 너스레를 떨던 사람에게서 생각지 못했던 아픔이었다.
누군가는 신체라는 감옥에 갇히더라도 스스로 마음속의 나비가 되어 주변과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면, 누군가는 돈과 사람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멀쩡한 신체로도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는 것일까. 청원은 800명쯤 되는 동의를 받고 종료되었다. 답변을 받을 수 있는 누적 동의수에 한참 모자른 수이지만 환우분은 자신을 응원하며 눌러준 800명의 사람들로부터 조금이나마 힘을 받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알록달록 물든 가을의 나무들을 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기도 잠시, 금세 낙엽으로 길가가 가득 매워지고 쌀쌀한 바람에 가을은 정말 짧구나 생각하는 요즘이다. 가을날에 물든 세상을 보며 우리도 무언가로 가득 물들고 있을 것을 생각한다. 환우분의 남은 시간이 더욱 진하게 물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