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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대로 제9화

<채식주의자>의 한국어 문장이 아름다운가요?

by 망초

한국어 문장이 아름다운가요? 한국어 알파벳 자모는 몇 개가 있나요? 한국에서는 딸이 채식을 고집할 때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만류하나요? 당신의 피부관리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남북한의 통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시리아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나요?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랍어를 배우실래요?


한국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시리아인 A 씨를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나서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우즈베키스탄 국내선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인연, 히바라는 도시에서 도보 여행 중 또다시 만나서 나눈 인사, Nice to meet you, again!


A 씨와 필자 일행은 미리 학습해 간 히바 성 안에 있는 주마 모스크를 둘러보면서 나무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정교한 조각을 한 213개의 기둥들 사이를 1,000년의 세월과 함께 거닐었다. 지진과 해충으로부터 나무 기둥을 보호하기 위하여 말똥, 목화씨 기름, 양털 등이 사용되었다는 사전 학습을 확인하던 차에, 기둥을 받치고 있는 양털을 발견하고, 필자는 A 씨에게 '이것이 지진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 양털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뿌듯함! 아날로그식 공부를 미리 해 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즈벡_히바_주마모스크_기둥_위키피디아.jpg 사진 위키피디아_히바성 주마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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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이미 비행기 옆좌석에 앉아 한국어 책을 읽고 있던 아름다운 여성, 필자와 Are you Korean? Yes!라는 간단한 대화가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국적을 알고 있었지만, 필자는 그의 국적을 이 사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온라인 독서클럽에 한국인이 없어서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와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에 대하여 궁금증을 마구 쏟아놓는 시리아인 A. 필자도 나름 문학도이고, 한국문학의 성취,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 소설가들의 문학적 성취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번역기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너무 빈약한 영어 실력 때문에 진짜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말이 되든 안 되든 침까지 튀기며 설명하느라, 친구와 나는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A 씨는 시리아인이지만 10여 년 전부터 독일에서 살고 있으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 사진, 시, 건축 등등에 관심이 있고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일에도 연관이 된다고, 그리고 몇 달 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홍대 앞, 동대문 DDP, 경복궁 등 고궁들을 둘러보았고, 가이드와 함께 DMZ에도 가보았다고 했다.


비행기 옆 좌석에 앉아 있을 때 A는 묵주 비슷한 구슬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은 현지인 가이드의 설명을 참고해 보니, 메카를 향하여 절을 하면서 하루 5번의 예배 시간을 꼭 지키려 하는 무슬림이었던 것 같다.


한국의 10월 하늘이 매우 높아 보였다, 혹시 스트레스가 없어서 당신의 피부가 좋은 것이냐는 등의 이야기를 부담 없이, 가끔은 파안대소하면서 주고받기도 했다. 한국인 상대를 만난 A 씨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궁금증 외에 또 하나의 질문을 조심스럽게 해 왔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질문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북한 문제, 한국의 통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되는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외국에 나가서 내가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받게 되는 질문인데, A는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이야기할까 하는 의문은 다음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해소되었다.


시리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도 조심스럽게 해 왔는데, 필자가 시리아에 대해 아는 것의 거의 전부는 내전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시리아의 어린이 사체가 지중해에 떠밀려 온 것 등이었는데, 그냥 "Civil War" 정도로 대답했더니, A는 즉각적으로 내전이 아니고, 비민주적 정부군과 민주적 정부군과의 싸움이고, 비민주적 정부군은 김정은의 무기 지원도 받았고, 지금은 민주정부가 정권을 잡았다는 말을 했다.

시리아의 상황이 세계적으로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 현실, 현재 시라이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우연히 만난 한국인을 통해서 확인하고 상당히 마음 아파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시 그는 <채식주의자>의 한국어문장이 아름다운가를 물어왔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을 영어로 읽었을 그가 채식주의자의 영어 문장이 아름다워서, 아니면 아시아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번역 문장이 아니어서 이 질문을 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외국인으로 한국의 노벨상 수상작품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질문으로 평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작의 한국어 원어 문장이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이 시리아인, 시리아는 지금 내전 상태가 아님을 단호히 말하는 A 씨의 조국, 시리아의 국내 문제가 해결되고, 또 시리아에 대한 세계인들이 인식이 제대로 되어, 편안하게 각자의 조국과 상대방의 조국 이야기를 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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