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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대로 18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은 누구일까요?

by 망초

제가 읽은 책에 의하면 신라의 고승(高僧) 혜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불법을 구하러 중국(당나라)에 갔다가 배를 타고 천축(天竺, 인도)으로 향한 혜초는 인도양을 건너서 동천축을 시작으로 남, 서, 북, 중천축까지 다섯 개의 천축국(그래서 책의 제목이 ‘다섯 개의 천축국을 가다’라는 뜻의 ‘往五天竺國傳’입니다), 이어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아랍, 그리고 중앙아시아까지 여행한 혜초를 『실크로드 문명기행』의 저자 정수일 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혜초보다 앞서 인도에 가서 길게는 10년 이상씩 머무르면서 불법을 구하고자 한 스님으로는 신라의 법현, 현장, 의정, 그리고 백제의 스님 겸익도 있으나, 혜초는 천축국 즉 인도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순방하여 723~727년의 4년 동안 서역을 여행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동안 가서 어디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포함한 여행기록을 남겼으며, 도착한 지역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아이고! 망측해라, 이보시오, 어찌 그리 발가벗고 다니시오? 옷이 없으신가요?”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이나 식물을 살생해야 하지 않소, 우리는 살생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지낸답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동천축(동인도)에 도착한 혜초가 그곳의 사람들을 묘사한 부분으로 혜초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혜초가 여행한 경로(추정경로 포함).jpg


‘혜초(704?~787년?)는 한국의 첫 세계인이며, 문명교류의 거룩한 선구자다. 내로라하는 현장을 비롯한 그 누구도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하고, 더욱이 그 서쪽 끝까지 다녀와서 불후의 현지 견문록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위의 책 225쪽)


두루마리 형태의 왕오천축국전.jpg


그의 여행 기록은 『왕오천축국전』으로 1900년대 초반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 Pelliot)에 의해 중국 둔황 막고굴에서 필사본 두루마리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펠리오는 7,000여 점의 다른 문헌과 함께 프랑스로 반출하였고, 지금은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아쉽게도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부와 끝부분이 훼손된 형태로 남아 있는데, 글자의 수는 6천여 자이다.


왕오천축국전 본문.jpg


왕오천축국전 국내 전시 기록.jpg

4년여에 걸친 순방을 마친 혜초는 신라로 돌아가지 않고 당나라에 남아 불교의 중흥에 이바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 있던 『왕오천축국전』이 2010년에 우리나라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혜초의 사향시로 달래어 본다.


月夜瞻鄕路(월야첨향로)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浮雲颯颯歸(부운삽삽귀) 구름 시원스레도 흘러가는구나.

喊書參去便(함서참거편) 소식을 그 편에 전할 수도 있건만

風急不廳廻(풍급불청회) 빠른 바람결은 아랑곳도 않누나.


我國天崖北(아국천애북) 내 나라 하늘은 먼 북쪽 끝

他邦地角西(타방지각서) 이곳은 남의 땅 서쪽 모퉁이

日南無有雁(일남무유안) 무더운 남방엔 기러기도 없으니

誰爲向林飛(수위향림비) 뉘라서 계림을 향해 날아가 줄까

(https://m.cafe.daum.net/)

(부운표표귀를 부운삽삽귀로 바꿈-필자)



-참고자료-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지음, 한겨레출판, 2006.

우리역사넷(신범식)

YouTuve 해얼


2015.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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