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세기 중반(BC 146년), 코린토스 전투에서 로마가 그리스에 승리하면서 그리스 본토는 본격적인 로마의 속주가 된다.('코린토스'의 영어식 발음이 '코린트'로 건축의 코린트 양식이 이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 로마는 이후 그리스의 문화적, 예술적 유산을 흡수하면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로마의 귀족들은 그리스 조각들을 좋아하여 그들의 미술품들을 수집하였고 그리스의 고전주의 조각을 모방한 많은 작품들을 제작 의뢰 하였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스 조각품들의 대부분이 로마시대에 제작된 복제품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회화의 경우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가 많은 탓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은 18세기에 발굴된 로마의 폼페이 유적의 장식적인 벽화와 모자이크가 유일하여, 곰브리치 또한 이 당시 헬레니즘 세계의 로마 미술에 대한 설명을 폼페이의 유적을 사례로 기술하였다.
*프레스코-석회·석고 등으로 만든 벽의 덜 마른 벽면에 물로 녹인 색채 분말(or수채물감)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이나 스타비아이 같은 인접한 도시들의 화가들과 실내 장식가들은 위대한 헬레니즘 미술가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그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마치 춤을 추듯이 꽃을 꺾고 있는 4계의 여신인 아우어스 여신 <꽃을 꺾고 있는 처녀>와 목축의 신인 <목신의 머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미술가들이 표정의 묘사를 다루면서 습득한 숙련과 자유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_
P113 / Story of Art
스타비아이의 벽화 부분, 꽃을 꺾고 있는 처녀 / BC 1세기(좌), 헤르쿨라네움의 벽화 부문, 목신의 머리 / BC 2세기(우)
폼페이는 BC 6세기경부터 형성된 도시로 BC 80년 로마 공화정에 의해 식민지화된 후 번영을 누렸다. 나폴리만 근처에 위치해 해상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포도주와 올리브 재배,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로마 귀족층의 휴양지로 유명하였다. 이처럼 번영했던 도시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묻히게 되었고, 그 결과 도시와 예술품들은 헬레니즘 세계에서의 로마 미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발굴된 폼페이 전경(좌),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진 가옥 일부(우)
특히, '베티의 집'이라 불리는 폼페이 시민의 사저 유적의 벽화는 로마 미술의 다채로운 양상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다양한 장식적 패턴과 신화적 장면들이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이카로스의 추락>이나 <펜테우스의 죽음> 같은 그리스 신화 속의 비극적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귀족들의 교양과 신화에 대한 관심, 취항 등을 엿볼 수 있다.
복원된 '베티의 집' 실내와 벽화(좌), 벽화 중앙 '펜테우스의 죽음' / BC 1세기
또한, 폼페이의 벽화 중 일부는 정물화나 풍경화도 그려져 있어,당시 로마인들이 자연과 일상의 아름다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 외에 실제 생활에서의 장면이나 자연 풍경, 식물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물화는 마치 헬레니즘 시대에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세잔'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2,000년 전의 그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구도와 표현력이 뛰어나다.
폼페이 유적의 벽화 중 일부, 닭과 과일이 있는 정물(좌), 복숭아와 물병(우) / BC 1세기
폴 세잔, 테이블 위의 과일과 물병(좌), 양파가 있는 정물(우) / 19세기
"회화에 포함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폼페이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물 잔 옆에 두 개의 레몬을 놓고 그린 정물화나 동물의 그림들, 심지어는 풍경화도 있다.이것이 아마도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위대한 혁신이었을 것이다. 고대 오리엔트 미술에서는 풍경이 인간 생활이나 군사적인 원정의 배경 장면으로밖에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페이디아스나 프락시텔레스 시대의 그리스 미술에서는 인간이 미술가들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다. 테오크리토스 같은 시인들이 목동들의 소박한 삶의 매력을 발견했던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는 미술가들 또한 복잡한 도시 거주자를 위해서 전원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_P 113 / Story of Art
폼페이 벽화 중 일부 / BC 1세기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는 지중해 전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그리스 세계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을수록 그리스 문화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리스의 청동 조각과 대리석상 등을 들여와 로마 광장에 진열할 정도로 그리스적 취미에 열광하였고 그리스의 예술가, 철학자, 학자들이 로마로 유입되면서 로마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니 그리스 헬레니즘 미술의 막바지 영광을 로마가 이어받게 된다.
결국, 헬레니즘 미술은 로마 제국의 정치적 확장과 함께 로마의 미술과 문화로 흡수되어 로마 미술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력을 넓히면서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을 유럽 전역에 전파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은 이렇게 클래식(고전)의 영원한 기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