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세계를 정복하는 동안 미술은 로마에 복속된 그리스 미술가들에 의해 헬레니즘 미술에 심취해 있었고, 아울러 정치권력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시대적 과업도 주어졌다.
로마 황제들은 자신의 권력과 존재를 강화하기 위해 미술, 철학, 문학을 융합적으로 사용하였는데, 미술은 황제를 신적 존재로 묘사하거나 제국의 질서와 승리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철학은 통치 이념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문학은 이러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특히,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를 통치했기에 중앙 권력의 정당성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여 거대한 건축물, 개선문, 기념비, 동상 등을 세워 황제의 업적을 직관적으로 드러내어 로마 시민들과 속주 주민들에게 황제의 존재와 권력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로마 시대의 미술은 그리스 미술이 중시했던 이상적인 미의 추구나 극적인 표현보다는 정확한 묘사, 세부적인 설명 등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추구했다. 곰브리치는 이러한 현실주의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는 건축물, 황제의 흉상, 승전 기념비등을 통해 로마 미술을 기술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미술이 조각이라면 고대 로마 문명의 대표 미술은 건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치'라는 건축구조를 공공 건축, 토목 등에 본격적으로 사용하였고 거대한 '돔'형태의 천정 구조까지 발전시켜 향후 중세를 대표하는 교회 건축의 모태가 되었다. '아치'는 권력의 강화와 제국의 과시 등 이른바 오늘날의 전시행정에 제격인 건축 공법이었고 도시가 점점 거대해지고 인구 밀도가 증가함에 따른 효율적인 공간 활용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더불어 심미성까지 뛰어났으니 현실적인 로마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건축 공법이라 할 수 있다.
콜로세움 / 80년 경(좌), 티베리우스 황제의 개선문 / 14~37년 경(우)
로마인에 의해 지어진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로 / AD 1세기 경
"로마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치의 사용이다. 그리스 건축에서는 아치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쐐기 모양의 돌로 하나하나 아치를 쌓아 올리는 일은 토목공학이 이뤄낸 대단히 어려운 작업 중의 하나이다. 일단 이 기술을 습득하게 되자 건축가들은 더 대담한 설계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리와 수로의 기둥들 사이를 아치로 연결시킬 수 있었으며 궁륭(Vault, Dome)으로 된 천장을 만들 수도 있었다. 로마인들은 여러 가지 기술적인 고안에 의해 궁륭을 만드는 예술의 위대한 전문가들이 되었다. 이러한 건물 중 가장 경이적인 것이 <판테온>이라 불리는 만신전이다. 이곳은 아직까지도 예배의 장소로 남아있는 고전 시대의 유일한 신전이다."_P 120 / Story of Art.
판테온 내부 궁륭(좌), 판테온 외부 전경(우) / 130년 경
"내부에는 궁륭형 천장과 그 꼭대기에 하늘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는 거대한 둥근 방이 있다. 다른 창문은 하나도 없으나 실내 전체가 위로부터 풍부하고 고른 빛을 받아들인다. 이 거대한 돔은 마치 또 하나의 하늘처럼 당신의 머리 위에 자유롭게 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스 건축으로부터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따다가 그것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응용하는 것이 로마 인들의 특징이었다."_P 121 / Story of Art.
이와 같은 특징은 황제들의 초상 조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이 든 사람의 주름이나 개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가 두드러진다. 그리스인들과는 다르게 실물을 조금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초상을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로마의 오랜 관습인 '데드 마스크' 문화와 무관치 않다. '데드 마스크'란 장례식이나 기념행사에서 조상의 모습을 밀랍으로 실감 나게 재현한 가면으로, 이를 사용하여 자신의 조상을 기리는 일종의 장례 의식이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 69~79년(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 160~169년(우)
로마 권력이 미술가들에게 맡겼던 마지막 과업은 고대 오리엔트 관습의 부활로, 로마인들 역시 그들의 승전을 선포하고 그들의 전투 이야기를 널리 전하기를 원했다. 대표적인 승전비가 <트라야누스 황제 기념비>로 제국의 영토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결정적 전쟁이었던 '다키아 전투'(현재의 루마니아)의 승리를 조각 연대기로 표현한 원형 기둥의 승전 기념비이다. 수백 년에 걸쳐 그리스 미술이 이룩한 모든 기술과 업적이 압축되어 전쟁의 과정을 로마 시민들에게 보고하고 있으며, 세부적이고 정확한 묘사로 전쟁의 무훈에 대한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비와 조각 세부 / 114년 경
이렇듯 그리스의 영토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으나 로마 문화는 그리스 문화의 속주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확장될수록 그리스 미술의 영광이었던 세련미와 조화, 극적인 표현은 점차 사라지고 세부적이고 사실적 표현만을 강조하는 로마식 현실주의에 매몰되어 로마 미술은 결국 기술적 화려함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