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클래식의 기원, 그리스 미술(BC 4세기)
기원전 5세기말, 고대 그리스 세계는 또다시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년)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패배한 아테네는 해상제국의 패권을 잃고 정치적, 군사적 힘이 크게 약화되었고 승리한 스파르타는 잠시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으나 강압적 통치로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전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테베(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에 패배하면서 급격히 쇠퇴하였다. 아테네와 그리스 세계는 이렇게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황폐화 그리고, 철학적 발전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기원전 4세기를 맞이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 지도자들의 무지와 오판을 비판하며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해야 한다고 주창했으며, 민주주의 체제하에 다수의 무지가 집단적인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전문성과 지혜를 가진 자들이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철인 정치'라는 정치이념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전쟁은 또한, 경제의 중심이었던 농업과 해상 무역을 황폐화시켰고 패배한 아테네와 친아테네 도시국가들에게 큰 부채를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그리스 세계의 경제 회복은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이 틈을 타 마케도니아가 점차 그리스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혼란은 그리스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신전 건축이나 공공건물 프로젝트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불안정속에서 활기를 잃어갔다. 특히, 신화적 영웅이나 신들의 이상적 표현 양식은 전쟁 이후,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점차 변모하게 된다. 기원전 350년 경, 이러한 분위기 속에 고대 그리스 미술의 고전기 후기를 대표하는 천재 미술가가 출연하는데 그의 이름이 '프락시텔레스'이다. 그는 신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여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로 그 대표작이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이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미술사에서 신화 속 여신을 나체로 표현한 최초의 조각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성에 인간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결합시켜 표현한 최초의 작품으로 이후 서양 미술에서 '비너스 포즈(Venus Pudica)'라는 전형적인 포즈의 창시자가 된다.
곰브리치는 프락시텔레스에 대해 기원전 4세기 최대의 미술가로 그의 작품은 감미롭고도 매력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특성을 가졌다고 찬양하였으며, 또 다른 대표작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켜세웠다.
"<두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과 비교해 보면 그리스 미술이 200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발전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에 딱딱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 중 략 ~ 그리스 조각상들처럼 이토록 균형 잡히고 잘 생기고 아름다운 살아 있는 듯한 육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인물의 외모를 조심스럽게 모사하면서 완벽한 인체라는 이념에 일치하지 않는 불규칙성이나 특징들을 제거함으로써 인체를 미화시켰다고 생각한다."_P 103 / Story of Art
프락시텔레스 시대의 고전기 후기 미술은 고전기 전기의 이상적 조화와 비례를 유지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정과 자연스러운 표현을 더 강조하는 시기였다. 특히, 프락시텔레스는 인간의 감정과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신들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켜 이후 헬레니즘 미술로 이어지는 훌륭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헬레니즘 미술은 고전기 후기 미술의 감성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더욱 발전시켜, 더 극적이고 동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