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길

우리 춤10주년

by 여란지


유명한 피카소의 일화가 있다. (디테일 토씨 하나 틀리게 기억은 못하고 핵심만 가져가시길)

노년의 피카소가 레스토랑인지 카페에서 냅킨에다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을 본 한 사람이

그림이 너무 예쁘다고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피카소가 좋다고 한다. 얼마면 좋겠냐고 묻자 피카소가

이 만 달러(한화 대략 이천만 원)라고 한다. 그 사람이 어이가 없어서, 아니 무슨 냅킨에 오 분도 안돼서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이 만 달러냐 하냐고 하자 피카소가 머라고 했게?


피카소는


"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60년이 걸렸소"라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선생님이 한 말을 기록하고 싶다.


- 참고로 지금 배우고 있는 삼고무 "운초 북놀음"은 선생님이 장구 장단을 하나하나 다 분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전에 없는 삼고무 동작들이다-


열심히 연습하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너네 그냥 공연 하나 연습한다고 생각하지 마. 공연 하나가 아니라 내 67년이라는 걸 알아라 이것들아.


티는 안 냈지만 소름이 끼쳤다.


또 뭉클해졌다. 60년을 춤 한길만 걸어오신 선생님이 만든 북가락을 내가 배우고 있구나.

그냥 배울 수가 없다.



사실 나는 무대 같은 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선생님 만나기 전에 제대로 된 무용을 배우려고 수년을 헤맸는데 그 과정에서 나도 온갖 취미생활 동호회 문화센터 같은 거 다 해봤다. 일 년마다 공연 올리고 화려하게 꾸미고 예쁜 옷에 사진 많이 남기는 것도 다 해봤다. 그런 행사는 도대체가 피곤했고 그냥 그때마다 나는 무대라는 하나의 이벤트보다 매일의 수련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깨달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나의 선생님의 무대이다. 그분의 60년 춤 인생을 자축하는 무대이다. 그래서 절대로 누가 되거나 폐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내가 연습이든 실력이든 딸려서 제대로 못해낸다면 과감 없이 하차(?) 할 생각이다.

그저 제자면 누구나 다 올라가는 기본무 무대 맨 뒷 줄에서 제일 끝에 서서 어두운 그늘 아래 가려져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선생님 무대라는 것에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다 ㅋㅋㅋ



선생님을 만나고 한 번도 칭찬을 들은 적이 없다. 선생님은 원래 그런 분이다. 절대로 칭찬하지 않는다. 욕만 할 뿐이다.

선생님을 만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역시나 그분 입으로 직접 한 것은 아니고 다른 선생님이 은희가 북을 잘 친다고 하자 선생님이 쳐다도 안 보면서 은희 잘하지? 쟤가 재능이 있어.라고 하셨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6년 동안 욕만 들어서 선생님이 노망이 들었나 의심했다.

그리고 역시 그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숨을 못쉬었다.ㅋㅋ



하마터면 춤을 포기할 뻔했다.

뭐든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등단을 하고 싶었다. 글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자꾸만 불러주셨다.

승무 법고(외북)를 가장 좋다고 하는 나에게 그럼 이번에는 삼북을 쳐보라며 전공생들만 하는 삼고무를 허락해 주셨다. 사실 이 작품 하나 배우는데 칠백만 원이다... 돈이 있을리가 없는 휴직자에게 선생님은

넌 나랑 오래 있었으니 그냥 공짜로 배워.라고 했다.

선생님께 빚만 지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은 아이 때문에 잘 못 나오는 나에게 연습실에 아기를 언제든지 데려오게 해 주신다.

어느 날 아기를 데려가서 여기가 낯선 아이가 울자 선생님이 제일 먼저 다른 회원들에게 우리 다 키워봐서 알죠? 양해 부탁해요 홍홍 하면서 챙겨주셨다. 그날 우리 클래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춤을 악착같이 추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너네 여자들은 딱 이때 포기해. 딱 애 낳고 한 십 년 들어앉아 버려. 그럼 그냥 아줌마 되는 거야.

30대 40대 때도 악착같이 춰야 해. 그래야 50살부터 멋이 나고 60살 때 이제야 좀 춤이 보인다 싶을 거고

70대 때가 전성기야. 그리고 100살 때는 움직이기만 해도 그게 춤이고 멋인 거야.



그리하여 우리 귀하디 귀한 아들은 생후 23개월에 처음으로 젤리 곰을 맛보았고

처음으로 뽀로로 영상을 대놓고 틀어주게 되었다.

남편이 독하다고 할 정도로 육아는 유난 떠는 편인데 그날 이상하게도 다 괜찮았다.


나에겐 내 아들이 제일 중요하지만 선생님에게는 내가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선생님에겐 애기가 과자 좀 먹는 거랑 유튜브 좀 보게 하고 그동안 내가 춤을 배우는 시간이 훨씬 훠얼씬 더 중요한 것이다. 너무나도 단호하게 애기 지금 잘 크고 있으니까 너는 너 할 거 해라고 했다.


나도 욕심을 부려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도 쓰고 춤도 출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어도 크게 서글프지 않은 이유가 춤에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춤이 좋아진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나이가 드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알고 보니 2021년은 한국무용을 시작한 지 딱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 제자로 들어온지는 6년이 된다.









악착같이

춤 길을 걸어야지..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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