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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여기 Apr 23. 2020

홍콩에는 할매 귀신이 산다


옛날 옛적에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해 질 무렵 산을 넘게 되었는데 산중에는 길이 여러 갈래여서 도무지 어느 방향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 계속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였다.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선비는...








오래전 사계라는 여행 모임을 함께 하던 4명의 친구가 있었다. 사계절 언제나 마음으로 함께 하자는 의미였던 우리는 4명이 각자의 계절을 선택했는데 겨울을 좋아하는 나는 '겨울이'였다. 어느 해 우리는 대만 홍콩 마카오로 여행을 갔고, 마지막 날 일정은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마카오를 다녀와서 홍콩의 랍스터 뷔페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그날 자정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일정은 순조로웠고, 저녁 식사는 미리 예약해둔 홍콩 아일랜드 샹그릴라 호텔 식당에서 했다. 식사는 최고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괜찮은 식사였고 무엇보다 그날 밤 비행기를 타야 하는 우리에게 샹그릴라 호텔은 홍콩의 지하철인 MRT 애드미럴티 역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교통이 편리했다. 애드미럴티 역에서 승차하여 MRT 침사추이 역에서 내린 후 침사추이 역에서 걸어서 8분이면 우리가 묵던 호텔까지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예상으로 총 3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래전 기억이라 역 이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글은 어딘가를 찾아가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니 읽는 분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식사를 마친 후 MRT를 이용해서 침사추이 역까지 왔고, 호텔로 가기 위한 출구는 A1(?)이었다. 침사추이 역은 생각보다 크고 복잡했지만 A1 안내 표지를 보고 찾아가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런데 A1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A1이라고 쓰여있기는 한데 안내 표지를 따라가면 출구는 없고, 다시 다른 표지를 따라가면 또 출구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면  A1이 아니고 들어오면 어디로 나갔건 다시 제자리,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4명이서 흩어져서 찾아보고 다시 모여봐도 찾을 수가 없었고, 호텔로 돌아가서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식은땀인지 진땀인지 모를 땀만 흘러내렸다.  지금이라면 구글맵이면 아주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8년 전쯤인 그때는 인터넷을 가지고 여행을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지하철 맵과 여행 책자와 미리 준비해 간 정보 등을 보고 찾아다녔었다.  거의 한 시간 가량을 헤매는 동안 방향 감각을 잃은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다. 어느 방향에서 타야 할지도 막막했으나 일단 지하철역을 나가서 가까스로 택시를 탄 후 창밖을 보니 바로 눈앞에 A1 출구가 보였고 택시는 우리가 승차한 바로 건너편쯤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대체 그날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식당에서 여유 있게 출발한 덕분에 다행히도 늦지 않게 공항까지 도착했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길을 잃은 선비는 대개는 여우에 홀려 그런 일을 겪은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리는 그날의 일을 귀신에 홀린 것이 분명하다고, '홍콩 할매 귀신'에게 당한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아직까지도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도 우리 사계는 여행의 추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삶의 계절을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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