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성당 예비자 교리 때 내 옆자리 짝꿍이었다. 첫 시간에 성경책을 둘이서 함께 보는데 다음 장을 넘길 때 힘이 없다며 대신 넘겨달라고 말했고,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예비자 교리를 담당하셨던 신부님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숙제로 많이 내주셨고 연세 드신 분들께는 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중 젊은 몇 명은 숙제를 꼭 해와서 그 시간 동안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어야 했었다. 어느 날은 '나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주제를 주셨는데 그녀는 그때 자신은 '진행이 빠른 암 환자'이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마치고 방사선 치료 중이며 그 시간을 보내며 신앙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했었다. 그녀는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며 건강을 되찾았고 함께 세례를 받은 우리 동기들은 동네 친구이자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서로의 신앙 성장을 지켜봐 주는 형제자매가가 되었다.
나는 살던 동네를 떠나 청주로 왔고, 암 판정후 수술을 받을 때까지 알리지 않았으며 항암치료 때에야 소식을 전했는데 첫 항암치료를 받는 날부터 매번 그녀는 병원으로 찾아와서 그 시간을 함께 해주었다. 나조차 어디서 뭘 받는지 모르는 낯선 그 병원으로 나에게 묻지도 않고 찾아오던 그녀. 나의 청주 생활의 몇 년을 치료와 다시 기력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동안 그녀는 늘 밝고 세상 신나는 목소리로 크게 웃어주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어느 날 함께 세례를 받은 다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 갈 거냐고. 어디를? 그녀가 떠났단다. 바로 며칠 전에 통화를 했는데, 건강 상태가 좀 안 좋아졌다고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는데...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실감이 나지 않은 가운데 바로 장례식장을 찾아갔고 그동안 쌓여있던 내 안의 모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떠난 것이 슬픈 건지 나 자신의 아픔인지 알 수 없는 울음이었다. 그녀는 내가 흔들릴까 봐 자신의 소식을 내게 전하지 않게 하였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났다.
용인 천주교 묘역, 나의 대모님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녀가 있다. 대모님과 그녀는 서로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떠나며 가장 마음에 걸렸을 가족들은 그 후로 그녀와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가족 모두 세례를 받고 성실히 신앙생활 중이며 각자의 생활을 아주 잘해나가고 있다. 대학교 1학년이던 딸은 졸업을 하고 원하던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고3이던 아들은 대학에 입학을 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멋진 남자가 되어 있고, 남편은 성당에서 여러 봉사를 하며 그녀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우린 간혹 용인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가끔씩 안부를 전하며 그녀가 맺어 준 인연을 소중하게 지켜가고 있다.
이른 아침, 친구가 떠났다는 이웃님 글을 읽으며 그녀가 많이 그리웠다. 또래 친구의 빈자리는 바로 내 자리이기도 해서 가족의 빈자리와는 서로 다르다. 그녀의 크고 밝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한 눈물 나는 아침이다. 누구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데 떠나간 그 자리가 아픔보다는 남기고 간 기쁨으로 다시 채워진다면 잘 살았다 할 것이다. 그리움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