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의 패키지를 통해 스페인을 일주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꽤 많이 아픈 뒤라 체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그만큼 한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또한 산티아고 카미노를 완주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남아있던 터라 지역은 스페인으로 결정했고 자유여행보다는 상대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적고 편안한 패키지를 선택한 것이다. 다만 스페인 일주라는 것이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하고 이동 거리가 많아서 예상했던 것처럼 쉬운 여행은 아니었다.
스페인을 일주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온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은 레알마드리드 홈구장을 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옵션투어였다. 비록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여행을 함께 했던 대부분의 일행분들은 레알마드리드 홈구장으로 향했다. 그때 나와 내 친구의 선택은 노천카페였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 와서 레알마드리드를 포기한다고? 하지만 나는 패키지여행 중의 그 귀한 자유시간을 노천카페에서 보내고 싶었다. 2월의 쌀쌀하던 날씨 탓에 그동안 조금 두터운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날 마드리드의 태양은 기대하던 스페인의 정열을 닮아 있었다. 길가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강한 햇살을 쬐이며 커피 한 잔과 맥주 한 잔 그리고 감자 스낵을 주문했다. 음식이든 커피든 맥주든 분위기로 먹는 것이 맛을 결정하는 절반은 되지 않을까? 완벽하게 행복한 맛이었다. 맥주 한 잔 추가!
그리고 엽서를 썼다. 어디를 여행하든 기간이 짧든 길든 늘 그곳 엽서를 사서 그 장소 그 시간의 느낌 그대로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것을 보면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엽서를 보낸다. 또한 나에게도 엽서를 보낸다. 여행지의 기억들이 단조로운 일상 속에 묻힐 때쯤 받게 될 그 엽서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단지 현지의 소인이 찍혀서 가볍게 나에게 날아오는 것이다. 그리움이라는 안부를 담아.
사비나에게
오늘은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함께 하고 싶었던 너를 생각하며 엽서를 샀지. 이곳 현지 가이드님은 여행을 하는 동안 하루에 하나씩 생각할 주제를 주었는데, 정열 개성 개방 행복 등이었어. 내게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을 뜨겁게 살게 하는 힘이 되리라는 믿음. 이모는 지금 1유로짜리 맥주 한 잔에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단다. 행복은 언제나 가까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사비나가 충분히 느끼며 살기를 늘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