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긴 어게인(Begain Again)'의 개봉 전 영어 제목은 ‘Can a Song save your life’(음악이 당신의 삶을 구할 수 있나요) 였다고 한다. 우연한 만남에서 이 영화는 시작되는데, 나에게도 그런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가 있었다. 그땐 편의점보다 구멍가게나 슈퍼(마켓)가 훨씬 많던 시절이었으니 일반인들에게 편의점은 지금보다 낯선 곳이었다.
그곳엔 비슷한 시기에 알바를 시작한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다. 그때까지 들었던 외자 이름 중 가장 멋진 '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이었다.
편의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판다. 알바를 하던 우리들은 거의 또래 나이여서 편의점에 진열되던 신상품들에 관심이 많았다. 새로운 먹거리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한 번씩 맛보고 다들 전문가가 된 것 마냥 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그런 수다가 영원할 것처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신상품들 중 나의 눈을 끄는 건 단연 음반이었다.
당시 발매되던 음반의 종류는 크게 LP, CD, 카세트테이프였다. 물론, 리어카에서 녹음된 카세트테이프. 소위 길보드 차트가 있던 시절이라 정품 음반 테이프는 그것과 비교해 두 배 이상 가격이 비쌌던 터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우리들은 길보드 음반을 선호하기도 했다.
오후 1시. 근무 교대시간이 되어 편의점에 도착하면, 난 항상 카운터와 가까이에 있던 음반 코너를 제일 먼저 살폈다. 오늘 어떤 가수의 신고가 들어왔는가를 살피며 시작하는 아르바이트. 그건 나의 루틴과도 같은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한때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레코드가게 사장이 되고 싶을 정도였던 내게, 정품 음반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던 그 시간은 편의점 알바의 특권 중 하나라 생각하던 때다.
학교 앞편의점엔 학생 손님이 많은 법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몇 무리의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바쁘게 다녀갔고 또 몇 무리의 학생들이 방문했다.
문제는 두 녀석이 다녀간 뒤에 생겼다. 방금까지 보이던 음반, 카세트테이프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돈을 모아 사려던, 그래서 신보들 중 특별하게 모셔 놓았던 곳. 그곳이 휑하니 빈 공간이었기에, 난 형에게 오늘 음반을 판 적이 있냐고 물었다. 형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직감적으로 그 녀석들. 방금 편의점을 나간 그 녀석들이 범인이라는 수상한 낌새가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잡아야 해!’
머리에서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두 다리는 충실히 즉각 실행에 옮기고 있었으니. 난 쏜살같이 편의점을 박차고 나와 두리번거리며 녀석들의 행방을 찾았다. 저만치 걸어가는 두 녀석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뛰는데, 바람을 타고 내 앞으로 날리는 얇은 비닐... 그것은 바로! 카세트테이프 포장 비닐이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그런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걷던 녀석들을 드디어 따라잡아,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방금 편의점에 들렀던 녀석들이 맞다. 한 손에는 비닐이 뜯긴 카세트테이프가 들려있는 것이아닌가.
긴 말을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왜 그냥 가져갔냐고 물으니, 듣고 싶어서 그랬단다.
그래서 테이프를 압수하며, 내일 돈 갖고 와서 찾아가라고... 아니면 학교에 찾아가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