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언어치료를 시작했던 날.

2010년 11월의 어느 날.

by 말선생님

#2010.10월 초.


동기들이 삼삼오오 조기취업을 하던 시기였다. "ㅇㅇ는 사설 센터에 들어갔대.", "ㅇㅇ는 병원에 들어갔대."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교 4학년 졸업도 하기 전인데,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파워 J였던 20대 초반의 나는, 열심히 구인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아무리 보아도 내가 가고 싶은 기관은 보이지 않았다.


학부 때, 4년을 기숙사에서 보내며 공부에만 몰입했던 나였다. 그렇게 진작에 공부했으면 S대는 갔을 거라는 부모님의 흔한 그 말(진짜 가지도 못했을텐데)을 듣곤 했다. 가끔은 그런 열정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기도했다. 교직이수 신청을 하지 않고, 언어치료 한 길만 가겠노라 다짐했던 때였다. 졸업하면 대학원에 가거나 대학 병원에 취업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2010.10월 말.


중간고사를 마치고 습관처럼 들어가본 구인 사이트에서 당시 학교와 인접 지역의 센터 구인 공고를 보았다. 사회복지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밀알'. 기독교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이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직업이라는 확신에 차있었기에 더욱 이력서를 넣고 싶었다. 난생 처음 이력서라는 것을 써보았다. 알바대신 자원봉사를 하고, 실습을 했기에 이력서는 정말 처음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면접 날짜를 잡았다. '오, TV에서만 보던 면접이라니.'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 준비를 했다. 어떤 질문을 받을까?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럼 본가에 올라가서 일을 구해야하나? 서울로 다시 직장을 구할까? 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면접을 보러 기관으로 향했다.


당시 당찬 포부와 욕심이 눈에 보였을까. 언어치료학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혹시 대학원에 붙으면 퇴사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인력이 더 부족했기 때문에, 또 대상자들을 위해 그렇게 질문하셨던 것 같다. "아니요!! 저는 계속 다닐겁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양심에 찔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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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월 초.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난 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함께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오, 나도 조기취업이라는 걸 한건가?' 어린 마음에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습기간 3개월을 갖고, 정규직을 전환이 된다고 하셨다. 공무원 아빠 밑에서 23년을 살았는데, 정규직은 나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코스였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2010.11월 10일.


11월이 되었지만 날씨가 춥지 않았다. 천안에서 안성까지 나름 버스 한 번으로 갈만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실습도 열심히 했는데, 나 잘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오산이었다. 실습실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현장은 그야말로 보호자 없이 나온 오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뜨악~~'


#2010.11월 말.


- 7살 자폐아동 수업을 하는데 자폐 아동이 갑자기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 수업시간에 내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분주했는데, 아동 어머님께 아동이 '산만하다'라고 언급했다.

- ..그 외에도 어머님들이 보셨을 때 확신을 주지 못할 어떤 포인트는 다 가지고 있었다.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실습실에서 핫한 장난감을 준비했지만 아이들은 각자 다르다는걸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다. 같은 다운증후군 아이지만 선호도가 다르고, 같은 나이의 자폐 아이지만 상동행동이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번 사과를 하셔야만 했던 선임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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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


수습기간 중에 졸업식도 하고, 이사도 하고, 터전을 경기도 안성으로 옮겼다. 졸업식 날, 졸업식을 다녀왔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몇몇 부모님들께는 이제 막 졸업한 사초생이라는 티를 내지 않아야했기 때문이었다. 졸업식을 졸업식이라고 말을 못해~!!의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운 에피소드였다. 읍 단위 지역에서의 3개월간의 고군분투. 덕분에 조금은 안정적으로 정규직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근무했던 2년의 시간동안 정말 다양한 체험을 했다. 기관이 재단인지라, 보호작업장, 그룹홈, 장애전담 어린이집과 함께할 수 있었고, 특히 장애전담 어린이집은 일주일에 2번씩 오가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의 성장을 보고, 언어치료실 밖에서의 시간도 함께할 수 있었다. 순수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직원분들과 부모님들이 나를 믿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었다.


#2011.3.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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