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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Nov 11. 2021

화장실 옆칸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어떤 법으로 처벌할까?

집으로 가는 방법은 늘 똑같다. 1호선 지하철을 타고, 3번출구로 올라가 아파트 셔틀을 탄다.

10시가 넘으면 아파트 셔틀은 운행을 종료하기에, 2번출구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10시 44분, 마을버스 시간까지는 6-7분이 남았기에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렀다. 두 번째 칸만 빼고, 나머지 화장실 문은 열려 있어서 별 생각없이 첫 번째 칸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걸어두고 휴지를 뜯어 좌변기를 한번 슥 닦았다.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면서 어쩐지 쎄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어 좌측의 칸막이 위를 한번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앉았다 온 친구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마신 생수 한병이 그대로 빠져 나가듯 시원하게 일을 보고, 바지를 올리려던 찰나 기분이 이상해서 고개를 홱 돌려보니 좌측 칸막이 위로 빼꼼히 내 칸을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 두개와 딱 마주쳤다. 이마에서 딱 떨어지게 자른 앞머리를 한 2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니 저게 왜 저기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이런 ㄱ#@$%%#@@##$$%!!@@@#@! 머릿속이 뒤엉키는 동시에 본능적인 사자후가 쏟아져 나왔다.


야!!!!!!!!!!!!!!!!!!!!!!!!!!!!!!!!!!!!!!!!!!!!!!!!!!!!!!!!!!!!!!!!!!!!!!!!!!!!

야아!!!!!!!!!!!!!!!!!!!!!!!!!!!!!!!!!!!!!!!!!!!!!!!!!!!!!!!!!!!!!

야!!!!!!!!!!!!!!!!!!!!!!!!!!!!!!!!!!!!!!!!!!!!!!!!!!!!!!!!!!!!!!

야!!!!!!!!!!!!!!!!!야!!!!!!!!!!!!!!!!!!!!!!!!!!!!!!!!!


집에서 두 아들 앞에서 봉인해제될때 나오는 그 사자후로 완전 미친듯 계속해 소리쳤다. 밖에 누가 있거들랑 좀 잡아달라는 신호이기도 했고. 


후다다닥-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입구에 서 있던 여자분들이 뭔일이고 하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방을 챙겨 화장실을 나오니 앞에 있던 대학생 한 분(여자), 잘 차려입은 여사님 2분이 뭔일이에요? 하고 동그란 눈으로 묻는다.


어떤 남자가 옆 칸에서 훔쳐보고 있었어요. (내가 어떻게 화장실을 나온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없었다. 얼른 가서 저 인간을 잡아야하는데 싶었는데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다.)


제가 봤어요. 뛰어나가는 남자분. 하면서 나서주는 대학생 목격자(여자분)와 여사님 2분도 앞장서더니, 역무원실로 가자고 하신다. 몇 걸음 옆에 역무원실에 우르르 들어서니 왠일인고 하고 역장님과 담당자분이 일어서신다.


여자 화장실에 남자분이 들어와서 옆칸을 훔쳐보고 있었어요. 


뛰어나가는 거 저도 봤어요. 목격자분도 함께 진술을 해주시고(이런게 힘이 되었다). 


지금 10시 47분이고, 제가 44분에 카드 찍고 나왔으니, 45분부터 46분 cctv돌려보면 나올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니, cctv는 경찰 입회하에 확인 가능하다는 말과 바로 경찰에 신고부터 하셔야 한다고 알려주신다.


2번출구로 나가면 관할 지구대가 있기에 금방 경관2분이 도착하셨다.


목격자분은 귀가길이라 연락처를 적어놓고 가셨고, 나는 앉아서 진술서를 썼다.


날짜, 몇 시 몇 분, 어느 역, 하면서 사건을 적고, 다 쓴 진술서에는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심하게 동요하거나, 떨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짜증나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남자 경관 2분 앞에서 조목조목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그대로 진술을 하면서 여기는 초등학생들과 여중생들도 많이 다니는 곳이라 확실하게 처벌을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고 의견을 전했다.


여기서 이런 사건은 처음입니다. 라는 말은 변명으로 밖에 안 들렸다. (옆 칸에서 보고있는 남자를 인지한 여자사람의 등장이 처음이겠지)


불법촬영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음이라고 적었는데, 나역시 그가 내가 발견하기 전에 소리 안나는 폰카로 촬영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냥 찜찜할 뿐이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옆 칸이(사람이 있는데) 하도 조용해서 한번 위를 쳐다본 것과, 그 다음 쳐다 봤을때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이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내 불안을 잠재우려는 방어기제로 찰나의 기억이 조작된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나는 두 번을 쳐다봤는데, 앞에는 없었으니, 마지막 마주친 그 눈빛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거라고 자기 위안할 뿐이다. 


진술서를 적고 있으니, 경관 1분은 cctv를 돌려보며 신원을 파악하고, 필요화면을 저장해달라고 역무원께 요청을 했다. 이 진술서를 바탕으로 관할 경찰서에 신고가 되고, 사건이 관련 부서로 배치되면 다시 연락이 올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안심 귀가를 위해서 2번출구로 나가 지구대에 잠시 앉았다가(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괜찮다고 했으나, 원래 이런 상황에는 귀가차량을 지원한다고 하셨다.)


경찰차 안에서도 많이 놀라셨죠. 하면서 묻는 경관님들의 말에, 우리 엄마때나 있었을 사건이 지금도 있다니 놀랍구요. cctv에 다 찍힐텐데 이런 짓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게 또 놀랍네요.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집에 와서 앉으니 이미 정장바지도 옳게 입었고, 안전한 공간에 앉아 있지만, 좌측 엉덩이 반은 훤히 드러나 있는 기분이고, 아까 찰나에 마주친 그 눈빛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룰수가 없다.


불쾌하고 불편하다. 


불법촬영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는 지금, 대체 이 파렴치한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찾아보았다.


여자화장실에 침입해 몰래 훔쳐보는 행위는, 성폭렴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12조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제12조: 성적 목적을 위한 다중이용장소 침입행위

자기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화장실, 목욕장·목욕실 또는 발한실(發汗室), 모유수유시설, 탈의실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다중이용장소에 침입하거나 같은 장소에서 퇴거의 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13년 12월 19일부터 시행된 규정이다.


법이 미비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러나 이 화장실에 대한 정의도 매우 넓고 자의적이라 음식점 화장실 같은 경우는 (혹은 남녀공용화장실) 예외적 판결이 나온 사례도 있었다. (shit)


위기상황에 앞뒤없이 내지른 사자후도, 역무원실에 앉아 남자 경관앞에서 쓴 진술서도, 그나마 내가 '엄마'와 '아줌마'라는 배경 안에서 얻게 된 장점 같은 것이다(정말 찾고 찾아 발견한 장점). 만약 내가 그냥 학생이었다면? 미혼여성이었다면? 과연 이만한 태도로 이렇게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냥 역무원실에서 경찰에 신고해야한다고 말했을 때 돌아서 나왔을 것이다. 뭐 일을 키워. 찰칵. 찍은 것도 아닌데. 그러나 나는 무서울 것 없는 아줌마였고, 여기에는 나말고도 많은 여학생들과 초등생들, 여성분들이 다니는 지하철역이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그것이 더욱 두렵게 다가왔다. 그저 오늘 일은 오늘 재수가 좀 없었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술서 끝에 선처없음, 처벌을 원합니다. 라고 적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① 이 법에서 “성폭력범죄”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죄를 말한다. (제12조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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