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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있는데 굳이 책을 만들 필요가 있나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토론의 장에 뛰어들기, 재해석을 이어가기

by 정윤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토론의 장에 뛰어들기, 재해석을 이어가기


논문을 왜 굳이 단행본으로 내기로 결심했을까? 물론 논문을 책으로 내게 된 데에는 먼저 제안을 해준 출판사 루이즈더우먼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나는 그전부터 논문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논문을 책으로 내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글의 가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목차는 직관적으로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문장이나 질문으로 가다듬었고, 본문에서는 소제목을 추가해서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길을 잃지 않도록 했다. 이 외에도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에서는 연구자로서, 한 여성으로 연구를 하게 된 이유와 태도, 다짐을 담았다. 논문이 비판하는 지점과 전망을 제시하는 부분을 추가, 보완했다. 가독성을 높이려고 노력한 이유는 비전공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주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비미술인 친구들에게 연구 주제에 대해 설명해 줄 때면, 대체로 '#미술계_내_성폭력' 운동에 대해 처음 듣는 표정을 지었다. 문학이나 영화처럼 분야는 다르지만 문화예술계 미투를 함께 경험한 이들 외에는 예술계에서도 미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과학이나 의학 같은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해 디테일한 현장의 사건들을 알지 못하듯이 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계_내_성폭력' 운동에, 동시대의 페미니즘 미술에, 변곡점을 지나온 우리의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문을 책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한 제일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었었다.


논문을 책으로 내게 되면 일단 논문을 읽을 수 있는 독자층이 매우 넓어진다. 일반적인 단행본에 비해 논문은 분명 여러모로 진입장벽이 있다. 책을 만들게 되면 알라딘, 교보문고 등의 서점에 납품할 수 있고, 도서관에 납품할 수도 있다.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글을 읽어볼 수 있다.



안온하지 않은, 토론의 장에 뛰어들기 위해


글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면 글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돌아올 것이다. 논문 중에서도 석사/박사 논문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탄탄하게 보강하여 논리적 흐름과 완결성이 있는 하나의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때문에 석사/박사 논문은 '내가 주장하는 바'가 두드러지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계뿐만 아니라 세상은 매우 넓다. 내가 열심히 리서치하고 근거를 모아 제시한 글에 누군가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고, 자신의 현장과 다르다고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만약 석사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마음은 훨씬 더 편안했을 수도 있으리라. 연구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석사논문을 읽어보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딱히 논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논문을 비판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감도 비판도 없는 안온한 곳에 숨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불안하고, 낯선 질문들을 마주칠지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 현장의 예술인들의 반응을 마주할 수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학술대회에서 받는 피드백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피드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재해석을 타인과 함께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그런 과정들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재해석'을 함께하는 과정이 된다. 나는 논문에서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을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석이라는 것이 단지 나 혼자 열심히 재구성해서 '짜잔-'하고 내놓으면 끝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해석한 것'이 하나의 의미 있는 해석으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그 해석을 읽고, 공감하고, 피드백하고,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주류의 해석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백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해보는 이 도전이 또 다른 도전과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도 있다.


그렇게 책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마주한 어려움은 제목 만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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