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환상 통증 02화

1. 침대에서 두 발을 내려놓는 순간

by 최소망

[침대에서 두 발을 내려놓는 순간]


밖에서 문이 잘 보이지 않는 가게에 들어가는 방법은 뒤로 돌아가면 있는 고양이 꼬리에 있었다. 굴뚝처럼 하늘로 높이 솟은 이 것의 정체는 사실 환풍구였다. 가게 정면에 있는 아치형 창문외에는 별도에 문도, 창문도 없는 건물 구조상 공기를 순환 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을 것 같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말려있는 꼬리 모양으로 할 것 까지야.

엎친데덮친격으로 들어가는 지문 시스템은 더욱 기괴하다. 꼬리가 달린 시멘트 벽쪽을 미세하게 살펴보면 고양이가 할퀸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섯 손가락을 오무려 고양이처럼 벽을 할퀴면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다. 할퀴는데 지문 인식이 된다고? 별 게 다 최첨단이다.

미닫이식 문이 자동으로 스르륵 열리면 작은 응접실이 나타난다. 둥근 원형 테이블과 간이 의자가 몇 개 놓여 있고 한쪽엔 차와, 커피, 그리고 주전부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

“안녕하세요. 선을님 맞으시죠?”

여운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큰 키에 짧은 숏커트 머리. 익숙한 듯 공간에 스며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고인물의 체취가 났다.

“사장님은 곧 오실거예요. 일단 여긴 점심도 먹고 차나 간식도 먹는 탕비실이에요. 어제처럼 면접 보는 용도로 쓰기도 하고요. 가끔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오실때도 있는데 그때는 응접실이 되기도 해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요?”

“걱정마세요. 거의 안오는데 정말 어쩌다 가끔씩... 알고만 계세요. 어? 혹시 우셨어요?”

으악.

갑작스런 그녀의 밀착에 순간 눈 앞이 어질해졌다. 그녀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려 가까이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얼른 눈을 피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아...아니에요.”

“죄송해요. 눈이 빨갛길래...”

“잠을 좀 못자서요.”

“저도 첫 출근날 그랬어요.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6년만에 밖에 나왔거든요.”

그녀는 쉽게 할 수 없는 얘기를 점심 메뉴 결정하는 것처럼 가볍게 꺼냈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나름 공부도 잘했고, 친구 관계도 큰 문제없이 지냈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잘못 엮인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학폭 트라우마로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 대인기피증과 실어증까지 생겼고, 남들의 시선을 병적으로 신경 쓰다 보니 결국 중증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현실이 괴로워질수록 게임과 커뮤니티에 도피했고, 그와 함께 공부도 손에서 놓아버렸다.

부모님의 권유로 재수를 준비했지만, 이미 공부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몇 번을 떨어지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악화됐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20대 후반, 몸에서 이상한 신호가 왔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재발 가능성이 높은 암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세상은 왜 나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수술을 받은 후, 반년 동안 방 안에서 무기력하게 지냈다. 처음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결심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이 가게였다.

“처음엔 하루 이틀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3년이 되었네요.”

여운의 말을 든는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괴롭힘, 암, 6년간에 운둔 생활. 단어 하나하나가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대인기피증에 실어증이라니 저렇게 잘 웃고 말도 잘 하는데... 밴드를 떼어난 곳에 여드름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 같이 그녀의 상처는 흔적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난... 뭐지?

“나는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런데도 힘들다고 했었잖아.”

갑자기 배속에서 나방 몇 마리가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움직임과 그로인한 불순물들이 온 장기를 헤집어놓는 끔찍한 느낌. 메스꺼웠다.

남이 나보다 더한 불행을 겪고 있다는 수치스러운 안도감, 갑자기 내 상황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묘한 자괴감. 내가 했던 고민들이, 내가 힘들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한없이 사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배부른 소리 같았다. 나는 정말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혼자 힘든 척하고 있었던 걸까?

내 불행의 씨앗은 애매하게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었다.

팔방미인, 다재다능, 올라운더,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잡탕, 계륵, 어중이 떠중이, 사자성어로는 박이부정(博而不精).

어설프게 잘하는 건 많지만 정작 뭐 하나 특출난 게 없다는 말이다.

시작은 노래였다.

엄마가 녹음 해놓은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듣기 전까진 나도 믿지 않았었다.

오디오 플레이어 넣고 재생 버튼을 누루자 중앙에 릴 두 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네 살짜리 아기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테이프엔 소리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녹음되었나보다. 어렸을 때 살았던 반지하 방에서 나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네온이 꽃피능 강나의 바거리~”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꼬맹이가 트로트 가사를 줄줄 읊어대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갑자기 노래가 멈춘다. 드르륵― 오래돼서 테이프가 늘어졌나 싶은 그 순간 어린 내가 말한다.

“엄마, 아빠능?”

“아빠 조금 있으면 올거야.”

“언제?”

“얼른 노래해. 테이프 돌아가고 있어.”

“응. 장미 한소이 손에 드고서 노래하는 강나 멋짜이.”

많은 엄마들이 하는 착각이있다. 내 자식이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망상.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오판이 내려지면 의레 어디다 자랑을 하고 싶기 마련이다. 시장에서 참기름집을 하던 부모님, 어느날부터 엄마는 나를 가게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깻가마니 위에 올려놓고 노래를 시켰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동네 한정 스타가 되었다.

시장 할머니들은 과찬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아이고마. 천상 가수네.”

“아가 가사를 저래 잘 외우노. 똑똑한갑다. 교수시키라.”

어린 아기가 예뻐서 하는 말을 엄마는 진짜로 믿어버리고 말았다.

그날부터 엄마는 이런말을 하기 시작했다.

“커서 교수되면 엄마 호강 시켜줘야지.”

“얼른 성공해서 키워준 값 2억 갚으렴.”

엄마는 나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그 사랑은 끊임없이 조건을 달고 있었다.

농담조로 그냥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쌓여만 가는 채무에 압박감을 느끼는 나는 웃을수가 없었다. 너는 똑똑하니까, 너는 재능이 많으니까, 너는 장녀니까 우리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해. 이것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받은 교육의 중심이었다.

물론 나쁜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습관적으로 엄마를 이해하려고 한다. 돌아서 당연한듯 내 탓을 한다.

엄마도 주변에 오지랖 넓은 설레발 때문에 그랬을거야. 애초부터 내가 노래를 잘 못 불렀어야 했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사랑과 이별 노래를 줄줄 외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똑똑하다 소리 말고 덜 떨어졌다, 바보 같다, 생기다 말았다 같은 소리를 들었으면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텐데...

엄마의 말 속에는 가스라이팅이 숨어 있었는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 어쭙잖은 재능이 조금 나올때에는 뭐든 당신의 공으로 돌렸다.

“네가 이만큼이라도 된 건 다 내가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다.”

“네가 그걸 잘하는 건 다 엄마한테 물려 받은거야.”

노래를 잘 하는 것도, 피아노를 잘 치던것도, 그림도, 글솜씨도.

아무리 씨앗이 좋아도 좋은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경제적으로 지능적으로 척박한 가정환경 그 와중에서 심지어 그렇게 좋은 씨앗도 아니었던 나. 어리고 무지하여 내가 열심히만 하면 금방 성공할 줄 알았으나 현실의 벽은 높은 정도가 아니라 그 너머가 보이질 않았다.

가수가 되려 봤던 오디션에 줄줄이 떨어지고,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을 실패하고, 미대 입시에 떨어지고, 문학상 공모에 연이어 낙방한 후 들은 말은 이거였다.

“너한테 기대가 컸는데, 너무 실망을 많이 해가지고.”

어떻게든 개천에서 용나보려고 노력했는데, 황무지에서 쭉정이로 풍년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반복되는 말은 두 단어 실망. 나는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갔고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 쓸모없는 인간아.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결혼과 자녀를 갖는 것, 그시절 단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했다. 가정이란 것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전혀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사랑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생일날 포장지에 예쁘게 쌓인 작은 선물을 주는 일도 없었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교외로 나들이를 계획하면 억지로 따라가긴 했지만,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엄마와 나를 그곳에 남겨두고 말 경주에 돈을 걸어 돈을 따고 잃는 그 곳으로 떠나버렸다. 우리는 도박이라 불렀고 당신은 레저활동이라 불렀다. 아버지에게 가족은 그저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사랑이 없었고, 따뜻한 관심도 없었다. 차라리 거기까지만이었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무관심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자주 보였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였다. 아버지는 염세주의자였고 그 사상을 온전히 자식에게 투영했다. 내가 무언가에 도전하려고 할 때마다, 그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얼마나 어려운건데.”

“어차피 해도 안 될 거 뭐하러 해. 하지마.”

내가 가진 작은 재능과 성취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가수가 되려고 했을 때, 그 꿈을 비웃었고, 내가 디자이너와 작가가 되려고 했을 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며 내 반짝이는 꿈과 희망을 꺼버렸다.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도 모자른 아버지의 비관적인 말들은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매일같이 도둑맞아 창고가 텅 비었다.

어떻게든 이 비관적인 태도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기어코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실패하지 않겠다고, 나를 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더욱 열심히 꿈을 쫓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재능은 있었지만, 아주 조금이었을뿐 빼어나질 못했다.

무엇을 해도 결과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그 틈 사이에서 나는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꿈을 좇으려는 열정은 그저 공허한 환상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 나가 노래하길 좋아했던 나는 점점 내향적으로 변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그들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의 세계는 점점 좁아져 3평 남짓한 내 방이 전부가 되었다.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음식으로 그것들을 눌러야했다. 계속 살이 찌고, 창의적인 생각은 멈추고 무의한 것들에 하루종일 시간을 썼다. 어느날 본 거울속의 내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아니 창피하고 혐오스러웠다. 두툼해진 턱, 파묻힌 눈코입, 사막같은 피부, 실타래처럼 엉킨 머리, 나무늘보의 그것처럼 몇 달을 깎지 않은 손톱과 발톱, 백수, 도태녀, 똥 만드는 기계, 그리고 실패자. 아버지의 말처럼, 나는 결국 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히키코모리 생활이 본격화된 것은 코로나 시기부터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외출을 삼가고 사람들을 피했다. 하루 이틀을 넘어서 일주일, 한 달이 지나자 격리생활은 점점 습관이 되었다. 밖에 나가는 것이 불편해졌고, 사람들과의 만남은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모든 사람의 시계는 멈춰있어. 나만 그런게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갔다.

시간이 지나도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코로나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방역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 훨씬 더 편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밖에 나가지 않고도 모든 생활이 가능한 것도 한 몫했다. 생필품이며 배달음식이며 검지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윽 끌어당기기만 하면 1초만에 결제가 완료되고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세상아닌가.

집 안에선 불을 켤 필요도 없었다. 형광등에서 새어나오는 밝은 빛이 싫어 화장실에서도 불을 켜지 않은 채 볼 일을 보고 샤워를 했다. 환한 곳은 내 쓰레기같은 모습을 숨길수가 없으니까. 밖에 나가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직해.

거긴 실내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밝고 환하거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야하거든.

깊게 패인 내 흉짐을,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내 팔다리를.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을 몰랐던거였다.

축축한 어둠속에 숨어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지.


처음에는 히키코모리 생활이 어느 정도 정신적 안정에 도움을 줬다.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으니까. 내 방 안, 안락한 공간에서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누워서 도파민을 풀충전했으니까. 그때의 나에게 방은 도피처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안에서, 나는 세상의 압박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일시적인 안락함은 점점 더 무겁게 다가왔다.

급작스런 체중증가로 인해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발목은 작은 충격에도 삐걱이며 저릿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허리는 무너지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어깨는 구부러졌고, 목은 거북이도 질색할만큼 휘었다. 허리와 어깨의 통증은 일상적인 움직임까지도 어렵게 만들었다. 밤마다 나를 감싸는 통증 때문에 자려고 눕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찌릿찌릿 느껴지는 다리는 혈액순환이 되지 않음을 알렸고 깊은 잠에 들수 없게 몇 번이고 나를 깨웠다.

의사는 나를 쳐다보며 당뇨 전단계라고 말했다. ‘당뇨?’ 그 말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바로, 동그란 통에 담겨 오던 떡볶이와 마라탕이었다. 매운 양념이 입 안에서 퍼지고, 그 강렬한 맛이 고통을 잊게 만들어 주어서 그만한 절친도 없다고 생각했다, 혈관마다 차곡차곡 요새를 쌓아놓고 내가 무너지길 기다리는 천적인줄은 까마득히 모른채.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다는 걸 나는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내 몸을 소홀히 한 결과, 정신은 더욱 아마득한 심해 속으로 끝도 없이 파고들었다.

죽고 싶었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내 머릿속을 스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아픔에는 공감했으나, 이해는 하지 못했다.

‘죽긴 왜 죽어, 아까운 목숨 살아야지, 나는 죽기 싫어.’

깊은 바다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높아지는 수압 때문에 잘못하면 고막이 터질수도 있다.

저 거만하고 오만방자한 확언은 심해로 내려가자마자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들이 보일 때, 이성의 끈을 잡을 새도 없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부딪히면 많이 아플까? 가족들이 심각하게 훼손 된 내 시신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울긴하겠지? 충격받고 상처받겠지. 혹시 후회도 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건 안되겠다.

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건 싫어. 살아있을 때도 보여주기 싫었는데.

그냥 고통없이 흔적도없이 가루가 되어 소멸되고 싶다.

살고 싶지 않아. 어차피 나는 실패했으니까 삶, 목숨 그것 또한 실패할래.

얇디 얇은 내 각막에서, 그보다 몇 배 더 큰 부피의 물방울들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눈물이 아니라, 고통이 전해질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번아웃인지, 폐쇄 공포증인지, 대인기피증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우울증인지 알게 뭐야. 그게 뭐던간에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그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떠돌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화장실에서, 욕조에 기대어 꺼이꺼이 목 놓아 절규했다.

축축한 어둠이 나를 완전히 집어 삼켰다.

3년이 지나자 집도 더 이상 온전한 피신처가 되긴 힘들었다.

만나면 잔소리만 늘어놓는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하루를 계획했다. 가족들이 출근하는 아침에는 숨소리마저 죽이며 이불 속에 파묻혔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야만 방을 나왔다. 텅 빈 거실에서 혼자 있는 동안에야 숨을 쉬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다시 은신해야 했다. 부엌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생수와 전기포트를 방에 구비해뒀다. 퇴근한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TV를 보는 동안엔 화장실조차 가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을 땐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었고, 물소리를 감추기 위해 변기 물조차 내리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면 배가 요동쳤다. 점심때 과식했던 배달음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속이 텅 빈 것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그러나 부엌은 위험한 장소였다. 작은 소리와 약간에 냄새로도 자고 있는 가족을 깨우기 십상이었다.

어느 날 밤, 참기 어려운 배고픔에 몰래 부엌에 나왔다. 불을 꺼두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슬며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불을 끈 채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희미한 냉장고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안쪽을 드러냈다.

반쯤 남은 김치찌개, 기름이 굳어 허옇게 뜬 제육볶음, 어제 저녁 먹다 남은 생선구이가 랩에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손을 뻗어 무엇이라도 집으려던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버지였다.

“야! 뭐하는 거야 또!”

아버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나는 허겁지겁 음식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버지는 내게 배고픈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또 뭐하는 거냐고! 일도 안하고 집에 쳐박혀서는 살은 돼지같이 뛰룩뛰룩. 근데 또 뭘 쳐먹어! 어? 언제까지 이 따위로 병신같이 살거야?”

쩍 벌어진 그에 입에서 멸치 젓갈과 버무려진 알콜 냄새가 스쳤다.

그럼 그렇지. 또 술. 아무리 화가나도 맨정신엔 이렇게 급발진 할 수가 없지.

아버지는 손에 잡히는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청소기, 선풍기, 핸드폰 가릴 것 없었다.

또라이, 병신, 시발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반복해서 소리치듯 내뱉었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망명하듯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궜다. 아버지는 방까지 쫓아와 문을 부실 듯 흔드며 고함을 질렀다.

“열어! 안 열어? 깨 부셔버리기 전에 당장!!!”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온 엄마가 눈동자가 완전히 돌아버린 아버지를 말리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렸다.

“선을이 아빠. 그만해요, 당신이 참아요.”

“당신은 비켜. 야 박선을 당장 안 나와?”

“아이참, 옆집에서 신고 들어온다니까?”

두 사람의 몸이 문 앞에서 부딪히고 엉켜 붙었다. 엄마가 밀어내면 아빠가 다시 밀고, 아빠가 뿌리치면 엄마가 다시 붙잡았다. 그때마다 문에선 쿵! 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복도에서 서로를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부딪히는 몸과 엇갈리는 목소리들이 점점 희미해지며, 발걸음이 안방 쪽으로 멀어졌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 뒤로도 낮게 깔린 말다툼이 계속되었다.

나도 안다.

내가 지금 얼마나 한심한지...

그렇다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발로 꾹꾹 밟고 침을 칵 뱉을 필요는 없잖아.

종량제 봉투에 들어있는 쓰레기 부피줄이듯.

울지 않으려 꾹 참았다.

모른척하자. 모른척 해야해. 넌 슬프지 않아. 넌 상처 받지 않았어.

“왜 저래. 분노 조절 장애인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듯 툭 내뱉어 봤지만 그런다고 없던일이 될 순 없었다.

어쩌라고 생각하고 세상 편하게 대자로 뻗어서 쿨쿨자고 싶었지만 잠이 올리 없었다.

아무리 무시하고 잊어보려고 해도 뇌라는 놈이 강렬한 자극의 기억을 쉽게 놓아줄리 없었다. 그 놈은 일 분에도 몇 번식 나를 거실로 다시 끌어다놓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끊없이 뇌놈과 싸우고 있을 때였다.

똑똑똑.

“엄마야. 문 좀 열어봐.”

“싫어. 말하고 싶지 않아.”

“아이 그러지 말고 선을아. 응? 엄마가 우리 딸 얼굴만 좀 보게.”

“괜찮아?”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지못해 문을 열고나선 나는 얼른 침대위로 올라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으면 엄마도 금방 나가겠지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침대 옆에 털썩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빠가 좀 쌓인게 있었나봐...” 엄마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너랑 아빠랑 이러면 엄마 정말 힘들어.”

순간, 그 말이 귀에 가시처럼 박혔다.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사실 많이 힘들어. 내가 어떤 생각까지 드냐면 죽...”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정신적 병명을 찾기 위해 무수히 보고 또 본 유튜브 영상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힘든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으세요. 그리고 도움을 받으세요.”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단호한 엄마의 대답은 어딘가에 닿으려 말랑말랑하게 흘러내리는 젤라틴이 일순간에 굳어버린 것 같았다. 내 표정도, 내 마음도 그와 함께 단단히 문이 잠겼다.

“솔직히 너도 좀 문제야. 아빠가 괜히 화내는 거 아니잖아.”

엄마가 거기까지만 하고 나가줬더라면 내가 그렇게 패악을 부릴일은 없었을 것이다.

굳세게 입까지 다문 나에게 엄마는 쉴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네가 힘든거면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네 할아버지 딴집 살림 차려서 집 나간 이후론 장녀라고 공장다니면서 월급 나오면 너네 할머니한테 다 보냈어. 거기다 너는 동생 하나지만 엄마는 넷이야. 넷. 동생들 똥귀저기 갈고 업어 키우느라 난 학교도 못 갔어. 너네만은 그렇게 안 키우려고 했어. 돈 벌어서 엄마 가져다 주라고 하길 했니. 너보고 동생을 기르라고 했니.

서른이 넘도록 시집도 안가고, 일도 안하고, 엄마아빠 집에 얹혀 살면서. 뭐가 힘들어! 생각해 보니 괘씸하네. 너 다음달부터 방세 내. 독립을 하던지. 잘데도 없고 굶어봐야 그딴 배부른 소리를 못하지.”

엄마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고 했는데, 엄마는 또 자기 얘기만 하고 있었다.

“듣고 있어? 왜 대답이 없어.”

“나가. 혼자 있고 싶어.”

내가 이불을 뒤집어 쓰자, 안되겠다 싶었는지 억지로 달래려 엄마 특유의 연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스스로를 배우라고 표현하곤 했다.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맞춰서 곰도 됐다, 여우도 됐다, 박쥐도 됐다. 특출난 연기력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꾸려나가는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심지어 특출나게 잘한다고도 생각하더라. 물론 우리 가족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거짓 연기는 누구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몸에 부드럽게 손을 얹고 토탁이며 말했다.

“그래, 네 마음 알아 엄마도.”

“아니, 몰라.”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엄마는 몰라.”

“왜 몰라, 우리 딸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거 다 알지. 엄마 위해서 성공하려고 얼마나 애쓰는데.”

엄마는 내 얘기를 들어주려고 온 게 아니었다.

위로하는 척, 이해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해 온 거였다.

손이 떨렸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리고, 결국 터져버렸다.

“지긋지긋해. 성공, 성공. 엄마는 맨날 그 소리야! 그래 엄마 말대로 성공하고 싶었어.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가수도, 디자이너도, 돈 많이 버는 작가도 안 돼. 이게 안 돼서 다른 길을 뚫어봐도 안 된다고. 맨날 내 하찮은 능력에 비참해야했고, 쫓아오는 초조함과 압박에 발버둥치며 뛰어대느라 숨이 찼어.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돼. 어? 엄마아빠가 나한테 물려준 거라곤 이 가난한 집구석과 차고 넘치는 무식함뿐인데! 근데 내가 어떻게 성공을 하냐고!”

엄마는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정지된 화면처럼 눈만 껌벅거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썼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 몸은 점점 더 무겁고, 공기가 부족해진다.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풍덩!

거센 파도가 치고 비가 내리는 바다 한가운데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헤엄치는 중이다. 팔과 다리가 아프고, 물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떠나온 배가 점점 멀어지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멀리 왔나? 조난당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과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이쯤이면 잘한 거 아닐까? 최선을 다했는데.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얼굴을 들어올려 수면을 뚫었다.

이럴수가.

내가 떠 있는 곳은, 출발지점에서 불과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온 힘을 다해 헤엄쳤는데, 자유영, 접영, 잠영,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썼는데... 결국 도착한 곳은 그저 출발점인 배의 앞이었다.

배위에서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린다. 선상 파티라도 열렸나. 사람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귓가를 울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지?'

고글에 낀 습기와 물방울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고글을 벗어보려고 했지만, 물에 젖어 엉킨 머리카락 때문에 벗겨지지 않는다. 그들이 웃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겨우 고글을 벗고 눈가에 남은 물기를 닦자, 그들의 픽셀이 서서히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갑판을 가득 매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가라앉지 않으려 쉴 새 없이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면서.

내가 그들을 향해 물었다.

왜 날 보면서 그렇게 웃는 거예요?

그들의 말소리가 하나로 모여 내 귀에 들어왔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듯 들려온다.

“왜 저래, 지 주제를 알아야지.”

“고작 저거 해놓고 좋단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냉소가 내 안으로 파고든다.

장면이 바뀌듯 군중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먼저 한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난다.

“거 봐. 내가 너 못할 거라고 했지? 내가 예전에 다 해봤다니까.”

남자의 얼굴이 익숙하다.

그가 옆에 서 있는 여자를 쳐다보며 저기 좀 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옆에 있는 여자는 깔깔거리며 웃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아니야, 한참 더 가야 돼. 착하지, 어서 더 가렴. 저기 저 끝까지.”

여자의 얼굴을 보인다.

“엄마...?”

이제 됐어, 다행이다.

나는 배쪽으로 헤엄치며 손을 뻗었다.

“엄마, 나 좀 구해줘. 너무 힘들어. 더 이상 헤엄칠 힘이 없어.”

처—얼썩.

거대한 파도가 내 머리 위를 덮쳤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어푸어푸, 다시 물을 헤쳐 엄마를 찾았다.

뭔가 이상하다. 파도가 가져가버렸나?

엄마의 얼굴엔 표독한 눈빛과 일그러진 입꼬리만 남아 있었다.

“너만 힘들어? 다 힘들어. 그러니까 제발 좀 그만 징징거려, 이 철딱서니 없는 년아.”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차게 돌아가는 엔진의 물살이 나를 서럽게 밀어냈다.

“엄마, 엄마 제발... 제발...”

나는 멀어져가는 배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그리고 처절하게 헤엄쳤다.

몸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었다.

“엄마! 엄마!”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얇고, 떨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얼굴은 점점 멀어져 간다.

배도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나는 아직도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떠 있다.

다시 한 번, 거대한 파도가 몰아친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덮치고, 숨이 막혀온다. 시야는 점점 어두워지고,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듯한 감각.

숨을 못 쉬겠어...

퍼뜩 눈을 뜨며 이불을 걷어낸다. 축축한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눈이 부셨다.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눈치 없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밤새도록 이어진 싸움과 꿈속에서의 몸부림이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또 보란 듯이.

가족들은 이미 출근한 모양이었다.

집 안은 조용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어제의 기억들로 시끄러웠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도, 다시 방 안에 틀어박혀도 괴로움은 달라지지 않았다. 온 집안 구석구석이 어제 일의 잔상으로 가득했다.

3년만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가고 싶다. 홧김에라도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백수에다, 친구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그냥 핸드폰을 켜고 무기력하게 화면을 올렸다 내렸다. 더 이상 볼 컨텐츠가 없다는 팝업창이 나올때까지. 몇 번이고 스크롤을 아래로 잡아 당겨 새로고침을 명령했다.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던 그때였다.

화면이 깜빡이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게시물이 튀어나왔다.

말랑한 고양이 발자국이 콕 찍힌 구인광고였다.

분홍색 젤리가 또렷한 발도장이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눈에 띄게 반짝이고 있었다.

고양이 소품샵 ‘냥냥쭙쭙’에서 함께 일할 직원을 모집합니다

원하는 날 출근, 15분 단위 유연근무

운둔 생활 경험자 100% 합격 보장

내가 기나긴 생각에서 빠져 나왔을 때, 여운은 계속해서 가게 내부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자 이쪽으로, 여기가 우리가 일하는 공간이에요.”

여운이 응접실 한 쪽에 걸린 담청색 커튼을 걷자 생각보다 더 넓은 실내 공간이 펼쳐졌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선반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소품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문구 용품인 볼펜, 리무버블 스티커, 떡메모지는 물론, 접시와 컵 같은 식기류부터 양말과 잠옷 같은 의류까지 종류도 수량도 어마어마했다.

위이잉— 찰칵.

한쪽에선 프린터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송장을 출력하고, 따뜻한 종이가 트레이에 내려앉는다. 작업실에는 분홍색 택배 상자와 포장지가 가득하며, 벽에는 오늘 발송할 주문 목록이 정리되어 있다.

“여긴 이렇게 정리돼 있고, 이쪽은 주로…” 여운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옆 벽에 걸린 고양이 모양의 시계는 1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출근한 지 겨우 1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긴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그 모든 시간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다. 내 마음은 과거와 현재가 엉켜버린 채 점점 더 무거워졌다. 앙큼함 표정의 고양이 시계의 초침은 여유롭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제 겨우 10분?

순간적으로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나 싶었다. 낯선 가게의 온도, 공기, 냄새에 적응이 안됐다. 불쾌하고 불편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일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괜찮아, 첫 날이라 그런거야.”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였다.

한 번 시작된 불안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고, 더더욱 몸집을 키워나갔다.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12분, 손끝이 시리더니 온몸이 점점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지난 밤 꿈속에 바다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그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13분.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거지. 여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14분.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절정에 달했다. 발끝까지 차가운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운의 목소리가 더 이상 나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나의 시선은 멀리 떠나갔다.

마침내 시계는 11시 15분을 가리켰다.

“저...저기...”

목소리가 떨렸다. 고개를 떨구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었다.

여운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괜찮아요, 가도 돼요. 전혀 걱정 하지 말고 편하게 가요. 사장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여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운이 나를 살펴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집까진 갈 수 있겠어요? 눈이 정말 빨개요.”

“괘...괜찮아요.”

그 말을 끝으로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조금만 더 있다간 울렁거리는 속이 무언가 보기 흉한 것을 게워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깥 공기는 시원했고, 그 공기가 내 몸에 닿자마자 마음속의 무언가가 조금씩 내려갔다.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나는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가 쉴 수 있는 산소는 우리 집, 내 방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내 숨통을 트이게 하다니.

이렇게나 별 일 아닌일인데. 어쩌면 숨통이 트여지는 일인데.

오늘 아침엔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밤낮이 바뀐지 오래인 나에겐 오전 9시 반에 울리는 알람도 식은 죽 먹기는 아니었다.

핸드폰이 첫 출근이라는 글자를 띄우며 시끄럽게 울어대자, 도저히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날 볼텐데. 사람 눈도 못 보는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불을 덮어쓰고 한참을 고민했다. 못 간다고 전화할까. 첫날부터 그래도 되나. 그래도 된다고 했잖아. 아, 그래도 그건 좀…

결국 한 시간을 누워서 버티다 어제의 끔찍한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잘못도 있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고.

우선 나가보자. 나라는 존재를 밖으로 끄집어내 보자.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힘차게 이불을 걷어찼다. 두 발을 오른쪽으로 모아 침대에 걸터앉아 바닥에 놓여있는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

그저 내가 한 것은 그 뿐이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두 발을 내려놓는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어지러움이 밀려와 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누군가 내 가슴과 영혼을 움겨잡고 쥐어짜는 듯했다.

갑자기 목 안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은 강물처럼 쏟아졌고,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소리내었다.

침대에서 겨우 한 발자국 내딛였을 뿐인데.

겨우 이 3평 남짓한 방에서 나가는건데.

지독하게도 성공이라는 울타리에 날 가두는 이 집에서 나가는건데.

그 작은 한걸음이 만근처럼 버겁다, 지금 내겐.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