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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환상 통증 10화

통증

by 최소망

[통증]


책상 위엔 묵직한 노트북, 반쯤 마신 커피 한 잔, 그리고 아무렇게나 적어놓은 메모들이 정신없게 늘어져있다.

창밖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반복되는 낙하운동의 내 마음까지도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몇 번이나 지웠던 첫 문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잠시 멈춘 적이 있다.’

타이핑을 마친 손이 공중에 멈췄다.

너무 뻔한가? 너무 진지한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책상 옆에 놓인 얇은 노트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몇 장 되지 않는 그 노트엔 몇 개의 이름이 정돈된 필체로 적혀 있었고, 그 옆엔 조그맣게 동그라미가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 글을 쓰는게 맞는 일인지,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쩐지 이 이야기들은 꼭, 어딘가에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증명 같은 것. 혹은 고백 같은 것.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멈춰 있었다.

어떤 이는 방 안에서, 어떤 이는 꿈 앞에서, 또 어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쉬는데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눈을 떴지만 하루가 흐르지 않았다.

그냥 ‘살아 있었다’는 말로만 겨우 설명되는 시절.

그들은 시절을 함께 견뎌냈던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한참 그들의 이름을 바라보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방금 쓴 문장을 지웠다.

그리고 천천히, 이번엔 확신을 담아 첫 문장을 다시 썼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함께 멈춰 서 있었던 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내 얘기를 글로 쓴다고요?”

전화 너머로 들려온 사장의 목소리는 살짝 높아졌지만, 그 안에 담긴 당황스러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물론 가명으로 쓸 거고, 원하지 않으면 절대 안 쓸거에요.”

사장은 일말에 고민도 없어 보였다.

“어차피 가명 써도 다 알 텐데요. 냥냥쭙쭙이잖아요.”

그 말에 나도 웃고 말았다.

사장은 요즘, 서대표님과 함께 작은 카페를 준비 중이다.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청년들이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는 곳이라고 했다.

원대한 포부는 확실했지만 고민도 많은 듯했다.

“서대표님이 자꾸 쉐어하우스처럼 룸을 나누자고 해요. 사람들이 혼자 앉을 수 있도록 조용하게. 근데 저는 창가에서 손만 쓱 내밀어 음료 주는 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알죠? 우리가게처럼요.”

사장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었다.

그 공간에서 누군가가 덜 불안하게, 덜 긴장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전화기 너머로 서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라이버시한 공간이 있어야 안정감이 딱~ 생긴다니까요?”

“어느정도는 고객을 상대해야한다니까요, 서대표님?”

두 사람의 투닥거림은 묘하게 평화로웠다.

그녀는 요새 저당 베이킹을 배워 설탕 없는 쿠키와 케이크를 굽는다고 했다.

예전처럼 커다란 텀블러에 가득 채워 마시던 바닐라 라떼도 아메리카노로 바꾼 지 꽤 됐다.

카페 오픈을 앞두고는 식단과 수면을 정돈하려고 애쓰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려는 모습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하나하나가 사장에겐 분명한 변화였다.

단순히 ‘좋은 습관’을 만든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삶을 다시 조율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다.

사장은 여전히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가끔은 당폭식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출근 외의 외출은 여전히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전화선을 타고 넘어오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강한 진동 같은 감각.

그녀가 조금씩, 확실히 나아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서대표님이 있었다.

사장의 불안과 두려움은 서대표님의 존재를 통해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감싸 안는 것도, 억지로 고쳐주려는 것도 아닌,

서로의 부족함을 조심스럽게 덧대며 함께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

그건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관계의 한 형태였다.

두려움 위에 천천히 안정을 덧입히는, 느린 마법 같은 것.

그 둘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쉬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이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미 나아가고 있고, 누군가는 아직 멈춰 있지만,

서로의 곁에서 그렇게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특히 두 사람의 이야기는,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써주세요. 제 이야기요.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누군가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서 서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 나오면 이제 SNS에 채용 공고 안 올려도 되겠네요? 광고비 줄이겠다.”

웃음 섞인 말투였지만, 그 속뜻은 나도 알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채로 누군가 손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더 많은 이들과 만날 수 있을테니까.

서대표는 사장의 옆에서 늘 그렇게, 진심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노트의 새 페이지를 펼쳤다.

가장 위에 ‘사장님’이라고 적고, 이름 옆에 조심스럽게 동그라미를 그리려던 순간—

펜 끝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그 아래, ‘서대표’라는 이름도 덧붙였다.

이번엔 둘 사이에 조그만 하트를 하나 그려 넣었다.

펜 끝이 아직 종이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윽고 집필 허락을 받을 다음 이름으로 이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띵—

갑작스러운 알림음이 작은 원룸을 가득 채웠다.

나는 펜을 내려두고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 어플리케이션 상단, 종 모양 아이콘 옆에 빨간 점이 떠 있었다.

새로운 알림이 왔다는 뜻이다.

검지 손가락으로 종을 톡하고 가볍게 누른다.

내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다.

@서늘서늘 이름은 제이로 써주세요. 뭐 원래 본명도 아니니까요.

우리 속지들, 작가님께서 저의 이야기를 써주신대요.

물론 제 채널을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대부분 저의 이야기를 아실 테지만

작가님은 제가 브이로그를 시작하기 훨씬 전, 그때의 일까지 알고 계시니까요.

책 나오면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한때 멈춰 있던 사람 중 하나.

이제는 화면 속에서,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주고 있는 사람.

책상 한쪽에 밀려 있던 노트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조심스럽게 ‘제이’라고 적은 뒤, 그 이름 옆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넣었다.

제이는 결국 아나운서 시험에 모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녀의 브이로그 영상들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제목들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아나운서 1차 탈락 원인 분석 함께해요’, ‘면접관 피셜, 아나운서 무조건 탈락하는 유형’,

‘최종 면접 탈락했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라온 영상의 제목은 이랬다.

‘내가 아나운서를 포기한 이유 열 가지’.

처음에는 그녀가 상처 받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영상을 끝까지 보니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정했고, 화면 속 웃음은 진심이었다.

“한때는 누군가의 폭력 때문에 내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열심히 했는데... 그냥 제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녀의 미소가 잠시 선명함을 잃었다.

실력으로도 닿지 않았던 현실이 씁쓸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쪽을 선택했다고.

그녀는 곧바로 평범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상상했던 조명도, 뉴스센터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이 작은 기쁨이라는 걸 왜 이제야 알았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직장인의 생활이 편안해질 무렵,

한동안 손 놓았던 유튜브 채널이 문득 떠올랐다.

예전에 찍었던 포장 ASMR 영상에 달렸던 따뜻한 댓글들이 그리웠고,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갈고닦았던 발성과 발음도 그냥 썩히기엔 아까웠다.

그날부터 브이로그라도 찍어보기로 했다.

퇴근 후 맥주 한 캔, 맛있는 저녁 해먹기, 자기 전 자기계발을 위해 영어 원서 읽기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 영상을 함께 올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그 영상들에 더 많은 반응이 쏟아졌다.

구독자들의 애칭은 ‘속지들’.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속이 여린 사람들.

댓글창에는 “잔잔한 일상 보며 힐링했어요.”, “제이님 영어 책 더 읽어주세요, 덕분에 매일 꿀잠자요.” 같은 말들이 쌓였다다.

언젠가 그가 꿈꾸던 화려한 박수갈채와는 다르지만, 잔잔한 응원의 말들은 제이의 하루 끝을 늘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제이는 카메라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속지들, 우린 다음 영상에서 또 만나요! You are not alone.” (당신은 혼자가 아니예요.)

나는 카메라를 끄고 화면을 잠시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제이는 진심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혼자라 느끼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 중에 한명이고.

기다란 동굴을 터널로 바꾸어 벗어난 제이의 모습을 보니 나머지 두 사람의 이야기도 참을수없이 궁금해졌다.

재빨리 톡 메신저를 열어 여운의 이름을 찾았다.

프로필 사진은 노을진 오후의 창가 풍경이었다.

기댈 것 하나 없는 나무 의자와 반쯤 덜어진 커튼,

그리고 바닥에 웅크리고 누운 고양이 한 마리.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조금 전까지 있었다는 기분이 드는, 그런 그림이었다.

빛은 따뜻한데 공간은 어딘가 허전했고,

고양이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를 오래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여운다운 사진이었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아도, 여운이 자신만의 안식을 잘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메시지를 입력했다.

“여운님—� 아, 아니, 이게 왜 눌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이모티콘을 황급히 지우려다 말고 화면을 보는데, 그 순간

메시지 옆에 있던 숫자 1이 스르륵 사라졌다.

“앗…”

답장이 오기까지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언니! 잘 지냈어요?”

항상 나를 선을님이라고 불렀었는데.

낯선 호칭 속에 담긴 작은 친밀감이 스크린 너머에서 슬그머니 전해졌다.

조금 놀랐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잠시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여운에게도 조심스럽게 동의를 구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책에 담아도 괜찮을지.

보통은 답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여운은 예외였다.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거의 주저 없이 “좋아요.”라는 답이 도착했다.

“이니셜은 Y로 써주세요.”

마치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말처럼 단정했고, 뜻밖에도 가볍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맙다고,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만 남겼다.

그러자 여운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입학 첫날, 여운은 강의실 문 앞에서 10분을 망설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수님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이 발끝을 무겁게 눌렀고, 열려 있는 문틈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이상하게 낯설고 날카로웠다.

겨우 발을 들인 교실은 차갑고 깔끔했다. 모두가 노트북을 펴고 있었고, 여운만이 깜찍한 고양이 수염이 달린 수첩을 펼쳤다. 그마저도 한 페이지 넘기지 못했다. 교수의 말은 너무 빨랐고, 모니터 속 영어 PPT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낯선 암호처럼 다가왔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 여운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전철에 앉아 있었다.

‘하아... 이게 아닌데.’

그 생각이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다음날 도서관에 갔을 땐, 책꽂이 사이에서 조용히 숨듯 앉아야 했다.

책이 너무 어렵다. 아니, 책보다 자꾸만 신경 쓰이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내가 여기 앉아 있는 게 부자연스러운 건 아닐까? 왠 화석이 앉아있냐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처음 받은 조별과제는 PPT 발표였다.

처음 보는 이름의 동기들과 같은 조가 되었지만, 여운은 무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단톡방에서도 늘 “넵!”이나 “좋습니다” 같은 짧은 답만 보내곤 했다.

발표 날이 가까워졌을 때, 누군가 말했다.

“그럼 여운 씨가 마지막 마무리 멘트 해주세요!”

그 말에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맡아도 괜찮을까? 어딘가에서 ‘왜 저 사람이 마무리를 하지?’ 하는 생각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누구보다 뒤처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밤마다 꾸역꾸역 외웠던 발표 멘트.

실수도 있었고, 목소리도 떨렸지만, 발표는 끝냈다.

그날, 여운은 조용히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괜한 욕심이었나.’

힘든건 만학도 생활뿐만이 아니었다.

수업이 없는 요일, 저녁 시간, 주말.

틈새같은 시간들을 모아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학비도, 월세도 스스로 감당해야 했으니까.

“경력, 나이 무관, 시간 조정 가능, 대학생 우대”

그 문장에 기대를 걸고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대부분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직접 면접을 보러 가면, 분위기는 더 묘했다.

매장 직원들이 전부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일 때, 여운의 나이는 항상 눈에 띄었다.

“대학...생이에요?”

“네, 이번에 대학 들어갔습니다.”

“아... 이번에....멋있으시네요.”

짧은 침묵과 어색한 웃음.

그 말은 곧 “저희 가게 이미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라는 결말로 이어졌다.

편의점, 카페, 레스토랑, 학원 보조 알바 등.

나이는 늘 조용히 여운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운 좋게 카페에서 주 2일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체력은 문제였다.

낯선 환경, 어색한 대인관계, 그리고 손에 익지 않는 일들.

수업 듣고, 과제하고, 알바하고 돌아오면 몸이 뻐근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졸업하면 몇 살이지? 그땐 어떡하지?’

‘정규직 면접에서도, 또 나이 얘기 듣겠지...?’

‘결혼도 해야되는데...’

뭐든 다 늦었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었겠지만,

여운에게는 세상이 하나하나 ‘넌 안 돼’라고 말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제가 생각했던 평범한 삶, 그것도 나 같은 사람에겐 환상이더라고요.”

“그래서... 아파요?”

“아뇨. 방 안에만 갇혀있던 나도, 환상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나도, 모두 나니까요.”

여운의 단단한 말에, 나는 잠시 숨을 고르지 못했다.

답장을 쓰려 손을 올렸지만,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여운의 추가 메시지가 파란 하늘에 풍선처럼 띄워졌다.

“축하해요 언니.”

“네?”

“밝은 세상으로 나온거.”

“고마워요.”

“밝다못해 너무 뜨거워서 살갗이 다 까질 수 있으니까 선크림 꼼꼼하게 바르고 선글라스 꼭 끼고 다녀요.”

여운의 우스갯소리에 우리는 한바탕 웃는 이모티콘을 주고받았다. 봄이 완연해지는 날에 밥이라도 꼭 한 끼 먹자는 약속을 하며 채팅창을 닫았다.

사장님, 제이, 그리고 여운의 이야기를 집필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속력이 붙질 않았다. 있는 얘기를 쓰는거니까 금방 끝날줄 알았건만 떠올린 감정들을 오롯히 느끼고 비워내느라 타이핑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몇 달에 걸쳐서야 겨우 그들의 이야기를 하얀 백지에 빼곡이 채울수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랑은 한 명인데...”

오늘도 석찬의 SNS 계정에 들어가 본다.

벌써 몇 달째 아무런 업로드도 답도 없는 그의 공간.

그의 SNS 계정엔 말수가 적은 사람처럼, 설명 대신 식물 사진이 가득했다.

야자, 올리느바누, 아테누아타, 마초 고사리, 자엽 아카시아…

그 이름을 하나씩 검색해보며 ‘와, 이걸 다 키운다고?’ 감탄하게 될 만큼 다양하고 무성했다.

하얗고 정갈한 벽, 아이보리 패브릭 소파, 부드러운 질감의 카펫 위에 놓인 초록빛 화분들.

계정 전체가 마치 누군가의 아주 조용하고 단정한 온실 같았다.

#플랜테리어 #나만의온실

몇 달 전, 그 계정으로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었다.

“안녕하세요 석찬님,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박선을입니다.”

답은 없었다. 읽음 표시조차 없었다.

아마 또 그 특유의 습관대로, 앱을 지우고 말았겠지.

그는 예전부터 자주 어플을 지웠다가 궁금해지면 다시 설치하곤 했으니까.

사람들이 웃고, 여행 가고, 좋은 걸 먹고, 사랑받는 걸 보는 게 어떤 날은 그냥... 너무 벅차서,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그럴 땐 그냥, 모든 걸 닫아버리는 거다.

누구 탓도 아니고, 세상에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냥, 그건 지금 나한테 과하다 싶을 때가 있다.

아마도 그런 순간과 다시 마주한거겠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마음.

답이 없는 메시지창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새로운 회색 상자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선을님,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진짜 미안했는지 석찬은 묻지 않아도 자신의 근황을 줄줄 늘어놓았다.

여전히 회사는 버겁고, SNS를 보면 가끔은 또 주저앉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요즘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식물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단다.

밤이면 식물들 사이로 희미한 조명이 켜지고, 그 불빛 사이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내리는 게 요즘의 일과라고 했다.

아무 말도 없는 시간. 아무도 모르는, 그만의 온실.

세상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그 공간만큼은 부드럽다고.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석찬은 여전히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은 그를 지치게 만든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자극적인 이미지들, 커뮤니티 속 혐오와 조롱, 억지로 웃고 떠들어야 하는 회식 자리는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종종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을 비판하며 허무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 그는 자신의 분노와 냉소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점차 알게 되었고, 그 감정들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석찬에게는 조금 더 나아간 날들이었다. 그는 다행히 신체적인 고립으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사회적인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만,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은 여전히 없는 상태다.

석찬은 여전히 혼자였다. 세상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채, 그만의 온실 속에서 식물들과 함께 지내며 조용히 커피를 내린다. 가끔은 그 공간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처럼 느껴진다. 그는 여전히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지만,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세상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더라도, 그는 적어도 자신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석찬은 고민해보겠다고 하곤, 다시 삼 개월이 지나서야 연락을 주었다. 그동안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할 수 없었던 나는 석찬의 이야기를 일단 써놓고, 최종 허락을 구했다. 예상보다 석찬은 의외로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익명 처리를 조건으로 했지만, 그도 내게 하나의 요구를 내놓았다. 사장이 석찬에게 써준 손편지의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서 책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편지 없이는 제 이야기의 서사도 없어요.”

석찬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편지는 그에게 중요한 순간을 담고 있는, 그가 지나온 길의 증거였고,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그 편지를 책에 담기로 결정했다. 석찬의 이야기는 이제 단순히 그의 과거뿐만 아니라, 그 편지와 함께 서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내 손에는 정성을 들여 쓴 원고가 쥐어져 있었다. 서점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모든 출판사의 이메일 주소를 입수해, 투고 메일을 보냈다. 짧으면 일주일, 길게는 세 달이 지나서 답변이 날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이메일 함을 열었지만, 돌아온 답은 모두 거절이었다.

“귀한 옥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는 맞지 않아 아쉽지만 반려하게 되었습니다. 눈 밝은 출판사와 편집자님을 만나 꼭 세상에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투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답변을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쓰려왔다. 정성을 들여 쓴 원고에 담긴 나의 꿈과 열정이 그저 차가운 문구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 원고가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꿈꾸던 성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공모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본가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경기도 끝자락의 원룸으로 독립을 했다. 물류센터 일용직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고를 계속 다듬어 나갔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기대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이따끔씩 찾아오는 현실과 환상의 차이, 거기서 밀려드는 통증은 나를 괴롭힌다. 그럴때면 욕조에서 뜨끈하게 목욕하고 있는 고양이 피규어를 손에 들어본다. 내 손으로 직쩝 뽑은 나만의 작은 세상이 여기에 있으니까.

뜨거운 통증뒤에 날아갈 듯한 가벼움이 기다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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